삶이란

일, 시간, 삶의 조화로 행복을 찾자

나는 새 2018. 1. 2. 07:42

김 태 희 (다산연구소 소장)

 

지난해 말 취업포털들의 신조어 소개가 흥미롭다. ‘직딩이(직장인)’들의 고단한 ‘직장살이’를 엿볼 수 있다.

 

‘다사다망(多事多忙)!’ 일은 많고 시간은 없다. 오늘 제때 퇴근할 수 있을까? 답변은 ‘야근각’. “아마 야근하게 될 것 같다”는 뜻이다. 휴식을 포기한 족속이며(‘쉼포족’), 땅에 묶인 혼령처럼 사무실을 떠나지 못한다(‘사무실 지박령(地縛靈)’). 회사에서 가축처럼 지낸다(‘사축’). 정말 시간이 없다(‘타임 푸어 time poor’). ‘과로사[死]회’다.

 

그런데 돈도 없다. 월급이 통장에 들어오는 대로 카드빚 정산과 세금으로 빠져 나가니(‘월급로그아웃’), 순식간에 텅 빈 통장(‘텅장’)이 되고 만다.

 

일하기 싫다(‘일하기 실어[싫어]증’). 상사에게 시달려 스트레스다(‘상사병(上司病)’). 퇴근해도 끝은 아니다. SNS를 통해 상사의 업무지시가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든다. ‘메신저 감옥’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그냥 ‘네’도 아닌 “넵!”이라고 반사적으로 답변하게 된다. ‘넵병’이다.

 

그래도 직장인은 다행이다. 구직자(취준생)는 입사지원서를 이곳저곳 열심히 내지만, 빛의 속도로 탈락하여(‘광탈’), 멘탈이 찢어진다(‘멘찢’). 면접에 가서도 병풍처럼 들러리만 서고(‘병풍’), 탈락의 쓰라림을 마치 재미있는 오락하듯 겪는다(‘탈락잼’). 그러다 보면, 어느덧 장기 미취업족(‘장미족’)이 된다. 그들에게 세상은 ‘고목사회(枯木死灰)’다.

 

이제 직장은 평생직장이 아니다. 저임금으로 직장에 젊음을 바치고, 나이 먹어 연공서열로 보상받던 시대는 지났다고 봐야 한다. 40대에겐 조기퇴직 후 제2의 직장을 찾는 ‘반퇴세대’가 화두다. 모두 ‘각자도생(各自圖生)’을 꿈꾼다. 충동적으로 사표를 내는 게 아니라, 더 나은 회사로 옮기기 위해 현재의 직장에서 착실하게 퇴사를 준비한다. 바로 ‘퇴준생’이다. 취업준비의 ‘취준생’에 비견된다. ‘워라밸 세대’의 대두는 자연스런 반발 현상이다.

 

워라밸(Work-Life Balance, WLB)이란 일과 개인생활의 균형을 중시한다는 뜻이다. 최근에 더욱 주목받는 이 단어는 1970년대 말에 영국에서 등장했다고 한다. 처음엔 일하는 여성의 직장과 가정의 양립이 문제였는데, 그 의미가 점점 확장되었다. 이를 위한 근무시간 자율제(flexi-time), 보육 지원 등이 각국에서 시행되었다. 북유럽에서는 1970년대부터 국가의 복지정책 차원으로, 미국에서는 1980년대에 기업에서 인재확보 차원으로 시행되었다.

 

우리나라도 뒤따르고 있다. OECD의 Better Life Index에 나오는 Work-Life Balance 항목을 보면, 우리나라는 아직 아주 낮은 순위에 머물러 있다. 현재 고용노동부에서는 ‘일·가정 양립’ 캠페인으로, ‘정시퇴근’, ‘퇴근 후 업무연락 자제’ 등을 제시하고 있다.

 

나이절 마쉬(Nigel Marsh)는 일과 삶의 균형에 관한 테드(TED) 강연(“How to make work-life balance work”, 2010년 5월)에서 충고했다. 첫째, 정부나 기업의 여러 프로그램(근무시간 자율 선택제, 금요일 캐주얼 복장 출근, 남성의 육아휴가 등)이 아주 피상적인 것일 수 있다. 둘째, 이 문제는 정부나 기업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통제하고 책임질 각자에게 달려있다. 셋째, 균형을 판단할 기간을 너무 짧게 잡아도 비현실적이고 은퇴 후까지 잡으면 너무 늦다. 넷째, 균형이란 것이 직장 끝나고 헬스장에 등록하는 따위나 특별한 그 무엇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신 그는 가족과 함께 평범한 하루를 보낸 경험을 소개했다. 평범한 일상에 소중한 삶이 있다는 의미다.

 

그는 또한 인생의 거창한 변동이 아니라 알맞은 곳에 최소한의 투자를 함으로써 관계의 질과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죽을 때 돈이 많은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잘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에 관해 사려 깊고 균형 잡힌 정의로 성공을 규정함으로써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삶의 균형엔 돈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돈은 일의 대가이면서, 삶을 위한 소비를 가능하게 한다. 돈이 있어야 시간이 유효하게 되고, 돈의 액수에 따라 노동 시간과 여가 시간의 분배 기준을 정할 수 있다. 결국 일-돈-시간의 균형이라는 문제로 볼 수 있다. 인생의 시간(life time)을 보내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번다. 한편 시간이 있어야, 일도 하고 돈도 쓴다. 일은 생계수단(돈)의 의미가 있으며, 자기 삶을 실현하는 의미도 있다.

 

일만으로도, 돈만으로도, 시간만으로도 삶은 온전하지 않다. 세 가지를 모두 적절히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일과 돈과 시간의 질이 높아진다. 균형이 필요하다. 그 비율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쏠림현상에 쏠리고, 위계적 지위를 누리고 과시하려는 문화에 젖어서는 균형을 고려하기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일-돈-시간의 균형을 이루고, 평범한 삶을 소중히 여기고, 평생 일하고 배우면서, 팀플레이를 할 수 있는 자세가 확산된다면, 사회적으로 배려하고 나누는 문화로 나타날 것이다.

 

국민경제적 차원에선 어떠한가? 노동시간이 단축됨에 따라 일자리가 늘어났다는 실증적 연구가 있다. 일과 돈 사이에 비례관계가 성립해야, 다시 말하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현재의 노동자간 격차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 신분상승투쟁과 같은 방식보다는 공정한 룰과 공정한 보상체계(임금체계)가 해법이다. 일-돈-시간의 질이 향상하면, 노동생산성이 향상되고 소비수요가 확대되어, 경제성장 내지 경제발전으로 귀결될 것이다.

 

새해를 맞아 결심해본다. 올해는 나도 일-돈-시간의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해야겠다. 독자 여러분에게도 기원한다. 새해에 소중한 일과 돈과 시간이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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