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포럼 제 846 호
3·1절 98주년, ‘민국’의 꿈은 얼마나
김 태 희 (다산연구소 소장)
3·1운동은 ‘대한민국’의 출발점이었다. 3·1운동 이후 상해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했다. 다른 이름으로 ‘조선공화국’ ‘고려공화국’도 있었다. ‘대한’이란 이름으로 결정하기까지 상당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대한·조선·고려에 대해 저마다 느끼는 바가 달라서였다. 이보다 더 주목할 것이 ‘민국’이다. 왜 ‘민국(民國)’이었을까?
‘민국(民國)’, 백성의 나라, 국민의 나라
왕국도, 제국도 아닌 민국이란 이름은 당시 다른 나라에서 혁명으로 새롭게 탄생한 ‘민주공화국’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1912년에 ‘중화민국’의 선포가 있었기에 그 영향도 거론된다. 하지만 민국이란 단어는 이미 전통시대에 사용되기 시작했고, 대한제국기에 많이 사용된 익숙한 단어였다.
전통시대 ‘민국’이란 단어는 ‘민(民, 백성)’과 ‘국(國, 나라)’의 병렬적 결합이었다. 17세기 과거시험에 “백성과 나라 사이에 어느 쪽이 우선인가”라는 문제가 있었듯이 일찍이 양자의 관계를 고민하고 있었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民惟邦本]”이라는 민본주의적 전통이 깔려 있었다. 탕평군주 영조, 정조가 ‘민국(民國)’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점차 일체화된 뜻으로 굳어져 ‘백성의 나라’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군주의 나라’도, ‘양반의 나라’도 아닌‘백성의 나라’인 것이다. 왕조시대 군주조차 존립 근거를 백성에게서 찾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그러나 19세기에 나라가 제 구실을 못하고, 백성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나라의 권력은 소수의 벌열가문이 장악하고, 백성의 저항은 민란으로 규정되었다. 고종 때엔 민국이란 단어가 더욱 빈번하게 사용되지만, 견딜 수 없어 들고 일어난 자국의 백성을 군란이다 민란이다 하여 청과 일본의 군대를 끌어들여 진압하는 상황이었다. 나아가 ‘대한제국’을 세웠지만, 백성과 왕실이 따로인 나라가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나라가 망한 날 너무 조용했다는데, 이미 모든 정치세력이 내부와 외부의 힘에 의해서 각개격파당한 후였고, 실의한 백성은 나라 지킬 의지를 결집할 수 없었던 것이다.
10년이 채 되지 않아, 후발 제국주의의 가혹한 무단통치를 겪은 나라 잃은 백성은 스스로 일어나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지도자의 한 사람이었던 손병희(1861~1922)는 독립운동의 대중화, 일원화, 방법의 비폭력 등 세 가지 원칙을 들었다. 비폭력 저항권 행사였다. 2개월여 동안에 200만 명 이상이 만세 시위에 참여하고 7천 500여 명이 죽었다. 독립선언을 일제가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3·1 독립선언과 만세운동을 통해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은 탄생했다. 나라 잃은 백성이 조선왕국의 백성이 아닌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탄생한 것이다.
삼일절 100주년엔, 국민통합과 도의의 시대가
삼일절 98주년을 맞이해 국민과 국가를 다시 생각해본다. 국민은 국가의 주인노릇을 제대로 하고, 국가는 제구실을 하고 있는가?
국민이라 통칭하지만 그 개별 구성원인 국민은 균일하지 하지 않다. 국민의 의사는 다수성으로 결정하곤 한다. 프랑스 정치학자 모리스 뒤베르제(1917~2014)는 다수의 법칙과 최강자의 법칙을 대비하면서, 토론과 투표에 의존하여 다수의 지지를 얻으려는 것이 설득에 호소하고 폭력적이지 않아 더 낫다고 했다. 다수의 약자가 소수의 강자에 맞설 수 있는 점도 장점이다. 다만 소수 약자의 보호와 수효로 평가할 수 없는 가치의 보호가 남는 과제일 것이다.
국가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가 폭력을 관리하는 것이다. 국가가 물리적 강제력을 전유하고, 미리 규정된 신중한 절차(헌법질서)에 따라 행사하는 것이다. 폭력성을 제거하고 공동체의 질서와 평화를 지키는 방식이다. 만일 국가권력이 헌법질서를 유린하고 폭력을 행사한다면, 국민의 저항권 행사가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될 것이다. 폭력을 마구 부추기는 발언은 양식 있는 시민들이 경계해야 할 것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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