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지의 국가기록물 관리 방안 |
김 문 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 |
양성지(梁誠之, 1415~1482)는 세종 대부터 성종 대까지 국가에서 주도한 편찬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학자였다. 그는 15세기에 『고려사』『고려사절요』『동국통감』『동문선』『동국여지승람』과 같은 주요 서적을 편찬하는데 모두 참여했고, <팔도지도>나 <동국지도>와 같은 지도를 작성하기도 했다. 양성지의 뛰어난 경륜은 국왕들의 인정을 받아 문종은 ‘그의 애국심이 변계량과 같다’고 했고, 세조는 ‘자신의 제갈공명’이라고 평가했다. 양성지는 40년간 중앙 관리로 활동하면서 정치, 경제, 국방,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국가 정책을 제시했다. 특히 그는 서적을 출판하고 국가기록물을 관리하는 방안에 대해 중요한 제안을 했고 그중 일부는 실제로 시행되기도 했다. 양성지는 세조에게 고려시대의 서적 관리법을 설명하면서 국왕의 시문을 별도로 보관하는 ‘규장각’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국왕인 세조의 권위를 높이는 방안으로 국왕의 글만 보관하는 도서관을 만들고 전담 관리를 두어 서적을 출납하도록 하자는 견해였다. 이에 세조는 경복궁에 서적을 보관하는 홍문관을 건설했고, 전담 관리까지 둔 규장각은 훗날 정조에 의해 실현되었다. 양성지는 실록을 복수로 인쇄하여 분산 보관하자고 제안했다. 당시 태조에서 태종까지의 실록은 4건을 만들어 춘추관과 충주, 성주, 전주사고에서 보관했지만, 세종과 문종의 실록은 1건만 작성하여 춘추관에 있는 상황이었다. 양성지는 새로 주조한 활자로 3건의 실록을 추가로 인쇄하여 지방의 3개 사고에서도 보관하자고 했다. 양성지는 지방의 사고가 도심의 관청 가까이에 있어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고 외적의 침략을 받을 수도 있으므로 3개 사고를 청풍의 월악산, 선산의 금오산, 남원의 지리산 같은 산속으로 옮기자고 했다. 양성지의 우려는 임진왜란 때 현실이 되었고, 조선후기의 사고는 깊은 산 속으로 이동했다. 복수의 기록물을 만들어 분산시키자는 제안은 계속되었다. 그는 국가에서 편찬하는 주요 서적은 반드시 10건을 만들어 홍문관과 춘추관, 지방의 3개 사고에 각각 2건씩 보관하자고 했고, 『삼국사기』나 『동국사략』같은 우리나라 역사서, 『훈민정음』『동국정운』『동문선』『경국대전』과 같은 주요 서적, 호적이나 군적, 토지대장, 조세대장 같은 주요 문서들은 반드시 4건을 만들어 춘추관과 3개 사고에 보관하자고 했다. 이처럼 사고에 보관해야 하는 기록물이 늘어나면 사고의 공간도 협소해지게 마련이다. 이에 양성지는 사고에 보관된 서적 가운데 긴요하지 않은 잡서를 추려내어 예문관, 성균관, 전교서 같은 기관에 나눠주자고 했다. 그에게 있어 서울의 춘추관과 지방에 분산된 3개 사고는 국가의 주요기록물을 보관하는 가장 중요한 서고였다. 양성지는 국가 기밀이 담긴 기록물의 관리 방안도 제시했다. 양성지는 고려시대 이래로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지도와 외국에서 입수한 지도를 일일이 열거하면서, 이런 지도는 국가기관에서 보관하고 민간에 흩어 두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긴요한 지도는 반드시 홍문관에서 보관하고, 나머지 지도들도 모두 거둬들여 의정부에서 보관하는 것이 국방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총통등록(銃筒謄錄)』은 화포 제조법이 기록된 비밀문서였다. 양성지는 이 책이 춘추관에 1건, 융문루와 융무루에 21건이 소장된 상황을 언급하면서 간첩이 이 책을 훔쳐 이익을 노린다면 국가에 막중한 피해가 있을 것이라 걱정했다. 그는 『총통등록』을 한글로 베껴 춘추관과 3개 사고에 1건씩 엄중하게 보관하고, 화포를 제작하는 군기시(軍器寺)에는 1건만 배포하여 관리들이 지키며, 나머지 한문본은 모두 불태우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이 책이 중국이나 일본으로 넘어갈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양성지가 제시한 관리 방안은 주요 기록물을 복수로 제작하여 분산 보관함으로써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비밀문서는 이용자를 극도로 제한하여 철저히 관리하자는 것이었다. 정보화시대에 보안문제를 우려하는 우리들은 양성지의 방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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