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정신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작다고 말할 수 없는 유교에 대한 고찰이 있어 가져와 본다.
학문(學問)으로서의 유교(儒敎)와 유학(儒學) |
이 광 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
한반도 2천년 정신사의 저변에는 때로는 풍류(風流)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 그러나 정체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힘든 고유한 어떤 사상의 맥(脈)이 관류하고 있다. 나는 이를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전통이라고 표현하고 싶을 때가 가끔 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보면 우리의 정신사는 외래사상인 불교가 천년을 주도하고, 불교와 유교가 함께 오백년을 주도하고, 유교가 오백년을 주도하고, 기독교가 백년을 주도하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서구 종교인 기독교와 서구의 학문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 결과 서구의 학문이 유일의 보편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많다. 서구의 ‘science'에 대한 번역어로서의 학문이라는 개념이 있기 2천여 년 전부터 유교에서는 학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
‘배움[學]’과 ‘가르침[敎]’, 두 글자의 어원이 동일하다 |
유교는 종교인가? 학문인가? 유교라는 명칭이 맞는가? 유학이라는 명칭이 맞는가? 최근에는 임계유 주편의 『유교는 종교인가』1,2(금장태·안유경 역, 지식과 교양)라는 책이 출간되기도 하였지만 유교연구자로서 흔히 이러한 질문을 받게 된다. 어떤 사람은 유교라고 부르면 종교이고 유학이라고 부르면 학문을 가리킨다고 한다. 한자에서 ‘교(敎)’라는 글자와 ‘학(學)’이라는 글자는 어원이 동일하였다. 『서경』「설명하(說命下)」편에는 “가르침은 배움의 반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배우기를 염두에 두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덕이 닦이게 된다[惟斅學半 念終始典于學 厥德修罔覺]”고 나온다. 가르침을 의미하는 ‘효(斅)’자는 ‘학(學)’자에 ‘복(攴)’부가 추가된 것을 알 수 있다. 백천정(白川靜)의 『자통(字統)』은 ‘학(学)’, ‘학(學)’, ‘교(斅)’는 원래 동일한 글자라고 밝히고 있다. ‘교(敎)’자가 ‘학(學)’자에 ‘복(攴)’부를 붙여 독립하며 두 글자는 가르침과 배움의 의미로 분리가 되었다고 한다. 가르침과 배움은 동시에 같은 장소에서 실시되었기 때문에 ‘학(學)’자의 원래 의미는 가르침과 배움이 동시에 실시되는 학교를 의미하였다는 설명까지 더하고 있다. ‘교(敎)’와 ‘학(學)’은 어원이 같은 글자로서 선생의 입장에서 보면 가르침이며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배움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유교는 가르치는 입장에서의 개념이며 유학은 배우는 입장에서의 개념이다. |
육경(六經)엔 가르침[敎]이, 사서(四書)엔 배움[學]이 |
가르침과 배움으로서 유학이 지향하는 것은 무엇인가? 도(道) 곧 인간다운 삶에 대한 가르침과 배움이다. 인간이 인간다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구에게 배우는가? 선생에게 배워야 한다. 그러면 최초의 선생은 누구인가? 유학은 육경의 내용을 삶의 길에 대한 스승으로 존중한다. 육경은 요순(堯·舜)으로부터 서주(西周) 말기까지의 고대의 정치와 역사와 점술과 시와 음악과 역사에 대한 기록이다. 유학은 이를 고대 선왕의 가르침이라고 한다. 육경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에 대한 기록인 『상서』와 음악의 집대성인 『시경』이다. 『상서』에는 ‘교(敎)’자가 24회, ‘학(學)’자가 7회 나오며, 『시경』에는 ‘교(敎)’자가 10회, ‘학(學)’자가 1회 나온다. 『주역』에도 ‘교(敎)’자는 5회, ‘학(學)’자는 1회 나올 뿐이다. 제왕의 정치를 기록한 육경의 내용은 가르침이 중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교와 유학을 굳이 구별한다면 육경의 내용은 유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논어』에는 ‘교(敎)’자가 7회, ‘학(學)’자가 65회, 『맹자』에는 ‘교(敎)’자가 35회 ‘학(學)’자가 33회 나온다. 왕으로 삶을 산 것이 아니라 학자와 선생으로서의 삶을 산 공자와 맹자의 경우에는 유교는 배움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가르침으로서의 유교가 배움으로서의 유학으로 정립되는 것은 공자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好]”로 시작되는 『논어』는 공자의 삶과 가르침을 통한 학문의 즐거움과 성취를 보여주는 책이다.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吾十有五而志于學]”으로 시작하여 “70세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는 공자의 삶은 도를 알고, 좋아하고, 즐기면서 “공부에 분발하여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즐거워 근심도 잊고 늙는 줄도 몰랐다[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는 배움의 삶이다. 공자에 의하여 유학이 학문으로 정립되지만, 『논어』에는 아직 ‘학문(學問)’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
학문(學問), 인격완성과 이상적 천하 건설을 목표로 |
학문이라는 단어는 공자를 가장 존경한 두 인물인 맹자(孟子)와 순자(荀子)의 저술에서 처음 등장한다. 『맹자』에 2회, 『순자』에 4회 나온다. 맹자 순자를 거쳐 유학은 제자백가의 사상을 능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맹자』에는 이렇게 나온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따라가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고 찾지 않으니 슬프다. 학문의 방법은 달리 없다. 그 놓친 마음을 찾는 것일 따름이다[仁 人心也 義 人路也. 舍其路而弗由 放其心而不知求 哀哉! 人有雞犬放 則知求之 有放心而不知求. 學問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已矣]” 공자의 가르침을 인간의 본성의 측면에서 계승함을 알 수 있다. 『순자』는 「勸學篇」으로 시작되며 『맹자』에서 보다도 학문이 더욱 강조된다. 순자는 “선왕이 남긴 가르침을 듣지 못하면 학문의 위대함을 알지 못한다[不聞先王之遺言 不知學問之大也]”고 하여 선왕이 남긴 말과 업적이라는 객관적인 유물을 강조하였다. 맹자와 순자 이후 유학은 학문으로 계승 발전되며 동아시아 사회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예기』 학기편에 나오는 “배운 뒤에 부족함을 알고 가르친 뒤에 곤란함을 안다[學然後知不足 敎然後知困]”는 말을 음미하며 유학자들은 교학을 통하여 자신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리를 터득하고 힘을 얻었다, 교학의 체계로서의 유학이라는 학문은 인간의 인격완성과 이상적 천하의 건설을 학문의 목표로 삼았다. 유학의 이와 같은 과제가 자연과 인간의 진리에 대한 인식과 무관할 수 있겠는가? 과학에 의해서 획득되는 진리가 자연과 인간의 유일한 진리일 수는 없다. 유학자들은 유학이라는 학문을 통해서 인간은 지혜가 밝아져 진리를 인식하게 되고, 기질은 강건하게 되어 진리를 실천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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