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지난번 3·1절에 태극기가 바람에 날아갔잖아. 이번에는 단단히 매어 놓을게. 아참, 나라를 위해 일하다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날이니까 태극기를 조금 밑에 달아야지.”
현충일인 6일 오전 10시 반경 제주시 외도동 모 아파트. 이하늘양(9·제주 외도초등학교 3년)은 유난히 부산을 떨었다. 의자를 옮기고 태극기를 깃대에 단단히 붙이기 위해 셀로판테이프를 챙겼다. 어머니 장모씨(45)는 늦은 아침식사를 준비하느라 주방에서 채소를 다듬고 있었다. 하지만 한순간 아이는 눈에서 사라졌다.
의자를 아파트 베란다에 놓고 올라선 하늘이는 11층에서 곧장 바닥으로 떨어졌다. 밑에는 벚나무, 단풍나무가 있었지만 떨어지는 하늘이를 막아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19 차량이 출동하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하늘이는 이미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다. 7일 오후 하늘이는 제주시 화장장인 양지공원으로 향했다. 어머니 장씨는 붉은 원피스를 단아하게 차려입은 하늘이 영정을 부여잡고 몇 번이나 혼절했다. ‘못된 꿈’이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못된 현실’이었다.
하늘이를 기억하는 이들은 ‘똘똘하고 밝은 아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늘이는 어머니와 단둘이 42.9㎡(약 13평)의 임대아파트에서 생활했지만 주위에 어두운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외도초등학교의 한 교사는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해서 항상 돋보이는 학생이었다”며 “봉사활동을 자주 하는 엄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남을 돕는 데 앞장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하늘이는 평소 국경일마다 아파트에 걸리는 태극기 수가 너무 적은 것을 아쉬워했다고 한다. 7일 하늘이가 떠난 아파트 베란다에는 한쪽 끈이 떨어진 태극기가 황망히 바람에 펄럭거렸다. 셀로판테이프는 고스란히 깃대에 붙어 있었다.
하늘이의 꿈은 의사였다. 담임교사 김모씨(25)는 “부디 하늘나라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이들을 고쳐주는 의사가 되길 바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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