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곧은 사람은 곧바로 가버린다. 굽은 길을 따라가지 않고, 자기의 뜻을 꺾어 가면서 무슨 일을 하지는 않는다. 한마디 말에 의견이 합해지지 않는 것은 남이 그를 이간질시켜서가 아니라, 제 스스로 앞길을 막은 셈이다. 그래서 속담에도 이르기는 “열 번 찍어서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다” 했는데, 일을 두고 한 말이다.
아첨하는 데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자기 몸을 가다듬고, 얼굴을 꾸민 뒤에 말씨도 얌전할뿐더러 명리에 담백하며, 다른 사람들과 사귀기를 싫어하는 척해서 자기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것이 상첨(上諂)이다.
둘째, 곧은 말을 간곡하게 해서 자기의 참된 심정을 나타내되, 그 틈을 타서 이 편의 뜻을 이해시키는 것이 중첨(中諂)이다.
셋째, 말발굽이 다 닳고 자리굽이 다 해지도록 자주 찾아가서 그의 입술을 쳐다보며 얼굴빛을 잘 살펴서, 그가 말하면 덮어놓고 칭찬하며 그의 행동을 무조건 아름답게 여긴다면, 저편에서 들을 때는 기뻐한다. 하지만 오래 되면 도리어 싫증나고, 싫증나면 더럽게 여기게 된다. 그때서야, “저 놈이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게 되는 법이니, 이는 하첨(下諂)이다" 박지원의 <마장전>에 실린 글이다.
나의 결함을 이런 저런 사람들을 통해서 가끔씩 듣는다. ‘남을 칭찬하지 못하는 것이 제일 큰 결함이다’ 고. 나의 변명은 이렇다. 칭찬도 마음으로 하거나 그윽한 눈빛으로 하는 것이지 어디 꼭 얼굴을 맞대고 말로 해야 하는 것이냐. 내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말로 해야 알아듣고 행동으로 해야 알아듣는다‘고.
나는 말로도 못하고 행동도 못하는데 하물며 어떻게 칭찬도 아닌 아첨을 하겠는가. 그런데 아첨을 잘 하는 사람치고 나중에 뒷통수 안치는 사람 별로 없다.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나와 함께 걸어야겠다고 말은 잘하지만 나와 함께 걷는 사람은 가뭄에 콩 나는 것처럼 극히 적다. 중요한 것은 아무도 나를 대신해서 안 걸어주며, 누구도 대신해서 건강을 챙겨주는 사람도 없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정작 걷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은 바쁘다는 것과, 잘 걸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나서지 못하는 마음 탓이다.
“도보로 큰 길을 갈 때는 반드시 가장 자리로 가라. 한가운데로 가다가 거마를 이리저리 피하지 말고, 빨리 걷지도 말고, 너무 천천히 걷지도 말고, 팔뚝을 흔들지도 말고, 소매를 드리우지도 말며, 등을 굽히지도 말라. 가슴을 툭 튀어 나오게도 말고,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무엇을 가리키지도 말고, 좌우로 흘끗흘끗 보지도 말며, 느리게 신을 끌어 뒤축을 흔들지도 말고, 해가 얼마나 남았는가를 보아서 걸음의 완급을 조절하라. 길을 가다가 떨어진 불을 발견하거든 반드시 끄고, 엎어진 신짝을 보거든 뒤집어 놓고, 떨어진 종이쪽을 보거든 줍고, 흘린 쌀을 보거든 반드시 쓸라. 입으로 방향을 가리키지 말고, 발로 물건을 옮기지 말라"‘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의 사소절 2편의 한대목이다.
그는 "군자君子는 행동거지에 있어서 온아해야 하기에 출입할 때나 진퇴할 때 소나기나 회오리바람처럼 행동해서는 안 되며 부채를 휙휙 휘 젖지 말고, 신발을 직직 끌지 말라"고 덧붙였다.
길은 이리 저리 펼쳐져 있고, 그 길을 걸어가거나 차를 타고 가거나 그것은 저마다의 자유다. 어떠한 길을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사람들과 어떤 자세로 걷다가 사라져 갈지 모르지만, 걸어야 할 길이 많다는 것, 그것이 마음 속 유일한 기쁨이다. 아첨도 할 것도 없고 받을 것도 없이 그저 묵묵히 걸을 뿐이다.
/신정일 문화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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