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27일. 당시 모 언론사의 사회부 기자였던 나는 새벽에 다급한 전화를 받고 허둥지둥 회사로 달려갔다. 예기치 않았던 대통령의 유고 소식에 편집국은 초긴장 상태였고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모두들 외신 기사를 지켜보며 정부의 공식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날이 내근 당번이라 편집국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취재기자가 밖에서 전화로 불러주는 기사를 원고지에 옮겨 데스크에 넘기는 일을 맡고 있었다.
이윽고 정부 당국의 공식 발표가 기사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요즘처럼 노트북이나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잘 들리지 않는 전화기로 기사를 받는다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전화기를 한쪽 귀에 걸고 기사를 받아 적던 나는 ‘시해’라는 단어가 낯설어 기사를 불러주는 후배 기자에게 몇 번이나 확인했으나 ‘민비 시해(弑害) 사건’ 할 때의 ‘시해’라는 대답이었다.
봉건 왕조시대의 용어를 사용
나는 물론 시해라는 용어의 뜻을 몰라서 되물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아는 한 시해라는 용어는 왕조시대에 왕이나 왕비가 살해되었을 때 사용하는 것이므로 대통령에게 시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어색하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비록 정부의 발표문에는 시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하더라도 인용문이 아닌 기사 본문이나 제목에 시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부모나 임금을 죽임”이라는 국어사전의 뜻풀이까지 보여주며 ‘시해’보다는 ‘암살’이나 ‘피살’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나의 주장을 데스크는 마감시간도 다 됐는데 그런 걸 따지고 있을 겨를이 없다는 이유로 묵살해버렸다.
시간을 다투는 사건기사일수록 마감시간과 다른 언론사와의 경쟁 때문에 기자의 독자적이고 객관적인 판단보다는 당국의 발표를 그대로 옮기는 것은 지금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우리 언론의 관행이었다. 더구나 오랜 유신체제 아래서 대부분의 언론은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어 전달하는 일에 길이 들어 있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단순히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라기보다는 왕이나 군주처럼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존재였기에 ‘시해’라는 왕조시대의 용어가 사용되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유신시대가 끝난 지 30년이 가까운데도 ‘시해’라는 용어는 아직도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5·16도 ‘혁명’이 아닌 ‘쿠데타’로 공식 명칭이 바뀌었지만 10·26만은 여전히 ‘박대통령 시해사건’으로 표기되고 있으니 이상한 일이다.
용어 사용은 의식수준의 반영
단순히 윗사람에 대한 예우나 존경의 차원에서 시해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김구선생이나 링컨, 케네디 대통령의 경우에는 왜 시해라고 쓰지 않는지 묻고 싶다. 이 문제에 관해서 역사학자나 언론인들도 입을 닫고 있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허기야 ‘대권’이니 ‘킹 메이커’니 ‘가신’이니 하는 말을 언론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상당수의 재벌과 교회가 세습을 당연시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의식은 아직도 봉건 왕조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쓴이 / 정지창
· 영남대학교 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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