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가라고 등을 떠민 것은 아니지만" 성우제(44)씨는 나이 마흔에 물 설고 낯선 캐나다로 떠났다.
13년 봉직한,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에 사표를 내고
아내와 어린 아들 손을 잡고 불안하게 새 땅에 뿌리를 내렸다.
대학 시절 부르던 '흔들리지, 흔들리잖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이민 1세의 두려움을 삭이던 이 남자가 "지극히 주관적인" 수기를 썼다.
대학원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시사저널' 문화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친형인 소설가 성석제씨 못지않은 문청(文靑)인 그가 쓸 수밖에 없는 캐나다 통신이다.
이방인이 되어 바라본 한국과 캐나다는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은 처지 덕에 그의 눈을 더 선명하게 해 주었다.
청각장애를 지닌 아이를 토론토 어린이 병원에 데리고 가
사랑과 감동 속에 수술을 받게 한 일,
개화기에 걸출한 풍속화가로 활동한 김준근의 그림을 온타리오 왕립박물관에서 발견한 사건,
마음 속 스승인 전신재.강성욱.김화영 교수를 기리는 추억 등
'느리게 가는 버스'에서 바라본 세상은 따뜻하고 따끔하다.
언론인 감각에 작가 정신을 접붙인 그의 버스에 올라타면
우리가 다시 보인다. "이민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라는 그는 말한다.
"정체성에 관한 문제는 아무리 긁어내려 해도 좀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가마솥에 눌어붙은 누룽지이기 때문"에.
중앙일보 정재숙 기자
안녕. 나는새.
저도 이민에 대해 찬성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서 안되기에 간다는..말에
어느 정도 이제 이해를 합니다.
잠시간..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었기에.
남들은 모르죠.
그러한 처지에 놓이게 되지 않으면.
죽게 맞고온 아이를 다시 그 소굴로 밀어넣어야 할때.
돌아서 나오면서 내 이곳을 꼭 뜨고 말거야..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누구도 보호해 주지 않고
스스로만이 지켜가야 하는데
나 혼자 지켜내는것도 위법이 되는 상황이고 보면
사라져야 한다는 결론인데
인간의 한계가 거기까지.
사라질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 보면
이민이 떠오르고..
친구가 유학중에
거의 죽음 직전에서 살았어요.
말기암을... 수술로 견뎌냈거든요.
우리나라에선 유학생에겐 말도 안되는 신속한 처리가.
외국에서는 되더라구요.
그리고 잠시 귀국해서
이곳에서 다시 다른 수술을 하게 됐는데
외국에 나가있는 이에겐
전혀 도움이 되는일이 없더라구요.
죽을 고비를 두번 넘긴 친구는..
자신의 조국에서 받은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더라구요.
아마도..
그렇게 나가는가 봅니다.
그래도 견뎌내고 끝가지
붙박이이고 싶습니다.전.
제가 태어난 이곳이 제일로 ..좋습니다.
떠나는 이에게 또 다른 용기가 필요한듯..
그들을 위해..
진정한 의미있는 떠남이기만을 바랄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