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丁石

지성유인식 2007. 1. 5. 01:05
며칠 전에 국무총리를 지낸 어떤 정치인을 만났더니 다음 주말에는 가족들과 함께 강진의 다산초당을 찾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니, 아직까지 그곳을 찾은 적이 없나요?”라고 물었더니 마음은 항상 간다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되었다며 이번에는 꼭 찾아가겠다고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늦게라도 찾아간다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다산초당」, 그곳이 어떤 곳입니까. 이른바 ‘다산학’의 보금자리요, ‘다산’이라는 호(號)가 나오고 정약용의 학문과 사상이 완성되어 조선학(朝鮮學)과 한국혼(韓國魂)이 무르익었던 바로 그곳인데, 그렇게 잊고 지낼 곳이 아닙니다. 18년의 귀양살이에, 8년을 강진읍내를 중심으로 생활하다가 8년째의 봄에 만덕산 자락의 다산(茶山)에 있는 다산초당으로 옮겨 사족(士族)의 자제들을 가르치고 거듭되는 연구결과로 ‘다산학’을 완성했던 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다산초당에는 사경(四景)이라는 네 가지 경물(景物)이 있습니다. 현재까지 전하는 다산 친필의 ‘사경첩(四景帖)’에서 유래합니다. 초당 앞마당의 차 끓이는 부엌이라는 바위인 ‘다조(茶 )’, 초당의 서북쪽 모퉁이에 있는 샘물인 ‘약천(藥泉)’, 초당의 서쪽 바위절벽에 새긴 글씨인 ‘정석(丁石)’, 그리고 마지막의 초당 동편의 연못과 석가산(石假山)이 바로 네 가지 경치였습니다.

네 가지 경물에 각각 시를 지어 친히 쓴 글씨가 그대로 전하지만, 그 중에서도 서쪽 돌병풍인 절벽에 쓴 두 글자 ‘정석’은 그 의미가 너무 어려워 설명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정씨(丁氏)인 자신의 바위라는 뜻도 있겠지만, 친히 쓴 글씨에 석수(石手)로 하여 새기게 했으니 다산초당의 모든 유적에서 진짜는 바로 그 두 글자입니다.

중국의 고사(故事)에 정씨(丁氏)의 많은 사람이 신선이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져 소동파(蘇東坡)·미불(米 )·도잠(陶潛) 등의 시문을 인용하여 ‘정석’이라는 글자를 새겼으며, 거기에는 신선이 학으로 변해 그 바위로 날아와 앉았다는 뜻으로 정씨가 바위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초가이던 초당도 새로 기와로 바꿔 지은 것이니, 다산초당에 있는 진짜 다산의 흔적은 바로 석벽에 새긴 ‘정석’ 두 글자일 뿐입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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