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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 "정운영"

나는 새 2006. 10. 26. 09:39
다시 읽는 정운영의 글


경제학자 정운영의 1주기에 맞춰 나온 두 권의 책,「자본주의 경제산책」과「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를 구해 읽었다. 앞엣것은 현실 자본주의의 역사를 분석한 연구서고, 뒤엣것은 2002년 이후 중앙일보에 실은 칼럼들이다.

아무래도 칼럼집에 더 마음이 갔다. 이번이 아홉 권째라고 하는데,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듯 깔끔한 문체에 언제나처럼 끌렸다. 맛이 여전히 차지고 칼칼했다.

그래서 경제학자 정운영보다 문장가 정운영을 따로 생각하게 만든다. 보라는 달은 안 보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처다보는 격이겠으나 그건 독자의 자유다. 80년대말 수삼 년을 그와 함께 한겨레신문 객원으로 지낼 때부터 나는 그런 오독(誤讀)에 익숙했다.

‘문장가’ 정운영을 생각하다

그는 경제를 말하되 논(論)하지 않았다. 재미진 동서양의 예를 이리저리 들어 독자의 시선을 집중시키다가, 용 그림에 마지막 눈동자를 찍는 수법으로 당대 경제의 초점을 딱 짚었다.

누구는 안 그런가. 나름대로 다들 개별화된 보편성 획득에 열심이지만, 그의 글은 늘 공부하는 자세로 독특하여 후줄근하지 않았다.

그의 초기 저서인「광대의 경제학」이나「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를 보면 경제를 이처럼 쉽게 풀이하는 데 대한 회의와 고뇌가 애초에 컸던 모양이다.

원고지가 칠판보다 넓다는 혹독한 사실을 체험했다고 한다. 난해한 언어와 난삽한 부호로 오염된 경제학을 구해내기 위해 동원한 자신의 ‘잡식성 잡식(雜識)’을 일단 발명하면서도, 그것이 경제학을 타락시키지나 않을까 염려했다. “하고 싶은 얘기만 딱 부러지게 하면 됐지 무슨 놈의 잔소리가 그리 많으냐는 타박도 없지 않으리라”는 술회가 그만큼 진지하게 들렸다.

하지만 ‘펜보다 무거운 것을 들어보지 못한’ 그는, 벽돌을 찍는 사람에게 이론적 실천 노력을 장황하게 강의할 자신이 서지 않아 책을 썼다. 경제학이 요구하는 암호 해득에 질려 일상적인 관심마저 포기하려는 이들에게 다소 유익한 안내자가 되기를 기대했다.

그만한 연유 덕일 게다. 이번에 출간된「자본주의 경제산책」도 연구서치고는 읽기가 퍽 수월하다. 그의 말을 그대로 빌리건대, ‘무슨 놈의 경제 논문’에 조지 오웰이니 어니스트 훼밍웨이니 피카소가 등장하여 담론의 오지랖을 넓히는가 싶다. 이병주의 단편소설 ‘아무도 모르는 가을’과 조정래의 대하소설 ‘한강’은 또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 같은 경제 무식장이는 물론 혹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도 각주(脚註)가 거의 없어 좋다. 어떤 계제에 무슨 논문을 읽다가 너무 많은 각주에 질린 적이 한두 번 아니다. ‘각주의 숲’에 갇혀 미아가 된 기분으로 회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의 디지털시대에도 논문쓰기 구조는 반석 위에서 끄떡 없는가. 인문학의 위기와는 무관한 격절의 세계인가. 주제넘은 걱정까지 하게 된다. 쉽게 써야 한다는 강박에 휘둘리는 것도 곤란하되 서로 피곤한 노릇이다.

쓰는 자는 고단하다, 하긴 그게 곧 글쓰기의 힘

그와는 다른 차원에서 ‘논객’ 또한 이제는 걸맞지 않는 칭호라고 생각한다. 칼럼니스트 이전의 우리 말로 그냥 둔들 상관 없다면 그만이다. 그만이다만, 삶의 요소요소에서 터저나오는 프로페셔널들의 적절한 탁견과 정보가 한층 긴요한 마당에, 논객은 에헴 하고 앉아 별무신통한 고담준론이나 펴는 이미지를 풍기기 알맞다. 유효기간이 끝났다고 본다.

하긴 글을 쓰는 주체를 어떻게 부르느냐는 따위 문제가 뭐 그리 대단하랴. 중요한 것은 내용이고 정운영은 그걸 위해 힘껏 쓰다 갔는데, 나는 그가 부수적이라고 여겼을 표현을 중심으로 이 말 저 말 늘어놓아 민망하다.

하지만 그것도 사람이 사람에게 다가가는 방편의 하나로 중요하다. ‘나라 위해 우리 변절합시다’라는 글에서 그가 토로한 역지사지 사고의 당위를 절감한다. 칼럼니스트 처지를 아무도 제편으로 끼워주지 않는 광대의 고독에 비유한 그의 ‘탄식’을 아울러 떠올린다.

어디에 서 있건, 세월이 어떻게 뒤바뀌건 간에 쓰는 자는 그렇게 고단하다. 하긴 그게 곧 글쓰기의 힘이다. 싫으면 못하는 짓이다. 정운영의 유서 같은 두 책을 읽으며 재삼 통감한다. 

 

글쓴이 / 최일남
· 소설가
· 前 동아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
·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
· 작품: <흐르는 북> <서울사람들> <누님의 겨울> <석류>
           <어느 날 문득 손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