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물으시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면서 때로 짐승만도 못한 짓을 하고, 자연을 보다 아름답게 가꿀 수도 있으면서 또한 지구를 가장 못살게 구는 역할도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본능과 함께 인간은 이성을 부여받았고 인간의 도리라는 가르침도 받았다. 그것은 다른 생물들에 비해 엄청난 특권인 동시에 그만큼 커다란 책임을 의미함으로 두려운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동식물들은 본능대로 살아도 자연의 이치를 따라 조화로운 삶을 이어갈 수 있지만 인간이 본능을 앞세웠다가는 자연을 망치고 인류 스스로를 망치고 결국은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을 자초하고 만다. 1․2차 세계 대전, 핵 공포, 지구 환경 오염… 그 결과들을 열거하기도 끔직하다. 조물주가 필요 없는 일을 하셨을 리가 없다.
괜히 이성을 부여하셨을 리 만무하고 이유도 없이 수고스럽게 인륜과 도덕을 가르쳐 주셨을 리 없다. 그러므로 인류는 이성이 본능을 잘 다스리고 인간의 도리를 잘 따라야만 비로소 살 길이 열리게 되어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성이 이끌어 주는 바, 도덕이 가르치는 바를 따른다는 것은 그 근본적인 핵심에 있어서 황금률로 표현된다고 믿는다.
자기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마라, 남이 자기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바대로 남에게 하라. 다른 생물은 본능이 그들의 한계이지만 인간은 그것을 뛰어넘어 나의 본능이 이러하므로 남의 본능도 그러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준중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과 다른 생물과의 근본적인 차이라고 생각한다. 표범은 자기 새끼를 먹여 살리겠다고 어미가 보는 앞에서 영양 새끼를 죽일 수 있지만 ‘참된’ 인간이라면 차마 그렇게는 못한다. 자기가 중하면 남도 중한 줄 알고 자기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손도 귀한 줄을 헤아리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류 구원의 길이 있지 않을까. 내 나라가 나에게 소중하니 남의 나라도 그들에게 그만큼 소중하다. 그래서 자기만, 자기 나라만 살 궁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살아갈 도리를 연구하고 생각한다. 여기에 사회, 국가, 세계의 평화가 있고 인류는 그것을 이루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때때로 난 신(神)께 이렇게 묻고 싶을 대가 있어요. 가난과 기아와 불의에 대해 뭔가 하시려면 하실 수 있는데 왜 그냥 두시는 겁니까? 하고 말이에요”
“그럼 왜 물어 보시지 않나요?”
“신(神)께서 그와 똑같은 질문을 나에게 하실까 봐 겁이 나서요”
황금률을 가르쳐 주신 신(神)이 당연히 인류에게 되물어 보실 질문이 아니겠는가.
피자와 빈대떡
무한경쟁 시대라고 하지만 그 말은 달리 보면 이제 앞으로는 우물 안 개구리식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이든 세계 속에서 최고가 아니면 존재하기가 힘들고 그 가치를 인정받기도 어려운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능력과 창의성, 인류 사회에 대한 봉사가 최대한으로 요구되고 발휘되는 세상이 되어간다고도 보여지는 것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우리도 세계 속에서 어떻게 하면 최대의 공헌을 해 낼 수 있느냐의 문제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은 참으로 적절하고 의미가 깊은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국에서 이미 창조, 개발되고 발달된 것은 우리가 그 동안의 그들의 수고를 누릴 수 있는 것이지 우리가 세계에 기여하고 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는 있겠지만 세계 속에서 최고가 아니면 그 가치를 점점 잃어가는 세상에서 그 정상을 가고 빛을 보기는 힘든 일이다. 자기 나라의 것을, 그것도 이미 상당한 발전을 이룬 바탕 위에서 그들은 가속이 붙는 연구와 개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피자나 햄버거나 콜라를 세계가 즐기게 되기까지 그것들은 참으로 이태리적인 것이었고 미국적인 것이었으며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세계적인 것이 되게 하였던 것이다.
이것을 굳이 금전적인 이해득실로만 말하자면 큰 돈벌이가 되었다고 할 것이나 작은 부(富)가 아니고 세계적인 상품의 거대한 매출을 의미할 때는 수익만 버리고 노력했다는 말이 통용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판매 성공의 비결은 물건이 아니라 신념을 전달하는 데 있다는 말도 있듯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각광받는 물건은 그것에 대한 각별한 자부심, 세계를 향한 자신감 등을 가지고 일한 사람들의 신념의 소산이 아닐 수 없다고 여겨진다.
음식으로 시작한 이야기이니 계속 그 분야에서 말해보자면 과학적으로도 그 유익함이 증명되고 있는 우리의 고유한 한국 음식은 세계가 우리로부터 기여 받아야 할 몫이다.
오늘과 같은 흐름 속에서 이것을 세계적으로 만들지 못함은 조상에게 부끄러운 일이며 세계인으로서의 우리 의무를 저버리는 일이다. 즉, 우리의 게으름이며 무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최고를 꿈꾼다지만 - 그것은 세계를 향한 최고의 기여와 봉사를 지향함인데 -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다른 나라들을 앞설 것인가. 다른 나라의 것을 가지고?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는 마땅히 개방적인 자세로 세계를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 못지않게 가장 한국적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고층 건물을 구경하고 햄버거를 먹으로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관광 오지는 않을 것이다. 굳이 하와이까지 가서 신혼여행을 즐기고 싶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기 나라에서 얻을 수 없는 분위기와 즐거움을 하와이는 줄 수 있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화, 세계화란 세계를 자기가 속한 사회의 테두리를 보는 관점과 사고의 전환이 아닌가 생각한다. 유형, 무형의 상품 개발에서 뿐만 아니라 생각과 행동이 모두 세계인으로서 걸맞아야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남이 못 듣고 못 볼 테니까, 우리끼리니까 하면서 비합리적이고 부조리한 일도 부끄러움이나 거리낌 없이 하던 세상은 지나갔다는 느낌이 든다. 세계 그 어디서 바라보아도 떳떳하고 수긍이 갈 수 있는 사고와 행동이 요구되는 세상이 된 만큼, 예를 들면 그들은 안 볼 것이니까 하면서 다른 나라를 마구 얕잡아보는 글을 지상(紙上)에 함부로 써서도 안 돌 것이라는 생각이다.
결국 어떻게 하자는 뜻인가. 세계가 필요로 하는 국가가 되자는 것이다. 우리에게서 세계가 뭔가 다른 것을 보고 또 배우고 취할 것이 있어야 한다. 남이 필요로 하고 아쉬워하는 존재가 되지 못하고서 어찌 환영받는 세계의 일원으로 행세할 수 있을까. 그것은 ‘봉’이 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공생 공영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듯이 남을 잘 위함이 바로 나를 위함이다.
널리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한다는 단군 할아버지의 건국이념을 이제 최대한 발휘해야 할 새로운 한국인의 시대는 이미 시작된 것이 아닐까?
동동주와 초롱박
‘그 땅이 자기의 조국이 되려면 그 곳에 조상의 뼈가 묻혀야 한다’고 아버지는 생전에 말씀하신 적이 있다. 거의 반만 년의 역사를 지닌 이 나라 이 땅, 그 어느 곳인들 한줌의 흙으로 돌아간 선조들의 자취와 무관할 수 있을까.
분석을 하자면 여러 가지로 설명될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조국이 마치 자석과 같이 우리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외국에 나가 그 곳 땅에서 자리 잡고 아무리 오랜 세월을 살아도 자기가 태어난 땅, 조국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와 같은 이야기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적인 것은 이상하게도 한 해 한 해 나이를 더해 갈수록 나의 마음을 끈다. 주거환경으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온돌 방바닥에 앉아 생활하기보다 의자 생활을 주로 해 온 탓에 지금도 나는 방바닥에 그냥 앉는 것이 편하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회식 모임이 있을 때 의자보다는 상을 가운데 놓고 바닥에 둘러앉는 것을 더 좋아한다. 비록 다리는 불편해도 그렇게 앉아야 오붓하고 친근하고 정다운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또 나이와 더불어 우리나라 음식, 향토 음식의 참다운 맛도 깊이 알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어린 시절 어머니가 가죽(가죽나물에 찹쌀 풀과 고추장을 섞어 바르고 참깨를 뿌려 말린 것을 기름에 튀긴 것)을 즐겨 드시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는 먹기는 했어도 그 참맛을 몰랐었는데 이제야 그것이 왜 맛이 있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빈대떡이나 수수부꾸미 같은 것도 참 맛있는 음식이라는 사실을 느낀 것도 불과 몇 년 전부터이다. 동동주를 내놓는 음식점이 있었다. 우리나라 항아리에 담은 동동주 위에 초롱박을 띄워 가져온 것이 인상적이고 반갑게 느껴졌었다.
시내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피자나 햄버거점들을 보면서 저러한 스낵점들과 더불어 우리의 향토적인 음식으로 간편하게 잠시 들러 먹고 쉬어 갈 수 있는 아담한 장소들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아쉬워하게 된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외국 관광객들에게 더 인기가 있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서양 철학보다도 우리 선조들의 정신적 양식이었던 동양 철학에 더 마음이 끌리고 더욱 푹 잠길 수가 있게 되는 것도 자석같이 우리를 끌어당기는 조국의 영향일까? 조국이란 이런 것일까? 그 어떤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강한 감정이요,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바로 그것인 것이다.
- 박근혜님의 “결국 한 줌, 결국 한 점”중 일부(출판:부일, 19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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