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의 투쟁과 공존을 그린 ‘괴물’
영화
‘괴물’에 대한 뜨거운 반응으로 연일 매스컴이 삼복더위만큼이나 달아오르고 있었지만 필자는 한국에 있지 않은 관계로 9월 2일이
되어서야 일본에서 개봉되는 영화를 겨우 볼 수 있었다. 가장 한가하리라 여기고 낮 시간대를 택하였으나 길게 늘어선 줄 때문에 좌석번호도 없는
구석자리를 겨우 차지하고 힘들게 영화를 보아야 했다. 일본에서도 ‘괴물’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영화
‘괴물’에 일반적으로 붙은 수식어는 ‘반미성향을 지닌 민족애’, ‘약자의 연대’, 그리고 ‘가족애’와 ‘환경오염’, ‘부조리한 현실’ 등이다.
이 말들은 ‘괴물’이라는 영화의 성격을 규정짓는데 있어서 필요하며, 타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영화를 좀 더 심도 있게 살펴보면 ‘괴물’에는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위의 수식어 보다 더 크고, 더 일반적인 내용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환경오염, 약자의 연대, 가족애 등이 단순하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일정한 이념 아래 명확한 구도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에서 말한 ‘괴물’에 대한 수식어들은 일정 부분 타당하지만 그것이 중심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이 작품에 접근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면서 작품의 의미를 되새겨 보도록 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영화는 가족애와 약자의 뭉치기를 표면주제로 하면서 유산계급(有産階級)과 무산계급(無産階級)의 투쟁과 공존을 이면주제로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접근할 수 있는 흥행성과 깊이 있는 성찰을 필요로 하는 작품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 된다.
영화
‘괴물’이 모든 기록을 단숨에 갈아치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보는데, 이 영화에 대한 이해를 좀 더 깊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표면주제에 대한 것은 생략하기로 하고 이면주제인 두 계급의 투쟁과 공존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고자 한다.
1.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의 투쟁과 공존
수천
년에 걸친 인류의 역사를 보면 생산수단을 가진 유산계급과 노동력만을 가진 무산계급으로 나뉘어져 대립과 공존을 계속해왔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현상은 현대사회도 마찬가지인데,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와 권력자인 유산계급과 노동력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와 서민이 중심을 이루는 무산계급이 바로
그것이다.
오랜
동안 지속되어 왔고 현재와 미래에도 영원히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두 계급간의 대립과 공존에 대한 논의는 세계 모든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주제임이 분명하다. ‘괴물’을 만든 감독은 바로 이점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작품의 구조와 등장인물의 성격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군은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무산계급을 대표하는 아버지와
자식들을 중심으로 하는 서민층이고, 다른 하나는 유산계급과 권력층을 대표하는 의사, 경찰, 언론매체, 공무원 등이다.
작품의
주인공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의 가족들은 가난한 생활이지만 행복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약간 어리석어 보이고
때로는 한심한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를 그런 그룹이다.
그러나
경찰이나 의사, 공무원 등을 비롯한 유산계급과 그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거짓말을 잘하고 뇌물을 밝히며, 못된 짓을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들로 그려진다. 그들은 감독에 의해 철저하게 희화화된 인물 그룹으로 설정되어 지고 있다.
한강에
등장한 괴물을 중간에 놓고 이 두 계급은 첨예하게 대립한다. 권력과 유산계급의 앞잡이인 경찰, 의사 등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바이러스 공포상황을
조장하여 사람들을 묶어두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있어서 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괴물 잡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괴물의 출현상황을 이용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 된다. 따라서 이들은 사람들을 가두어두면서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계속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바이러스를 있는 것처럼 꾸며서 발표함과 동시에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는 약품을 한강의 괴물에게 뿌린다. 이들이 하는 행동은 모두
희화화 되어 있으면서 옳지 못한 일을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손녀와 딸, 그리고 조카를 잃은 아버지 가족은 괴물에 대처하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이들은 괴물의 출현을 이용하려는 그런 입장이 아니라 자신들의
소중한 가족인 현서를 구하려는 목적만을 가지고 행동한다.
그러므로
이들의 행동은 거짓됨이 없으며, 순수하고 인간적이다. 자신의 위험 따위보다 사랑하는 가족의 안위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장비는 첨단이 아니지만
의지만큼은 최고의 첨단을 달리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무시무시한 힘과 잔인함을 가지고 있는 괴물과 직접 맞닥트리는 행동으로 일관한다. 아버지 가족에게 있어서 괴물은 자신들의 삶을 흔들어놓는
파괴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한강에
출현한 괴물에 대응하는 방식이 두 그룹에게 확연히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권력과 힘을 가지고 있는 유산계급은 외세를 등에 업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하기 때문에 괴물을 이용하여 무산계급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괴물을 통해 사람들이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바이러스를 찾아내려는 시도를 계속할 뿐이다.
그러나
한강에 놀러 나온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팔아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버지 가족에게 있어서 괴물은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리는 약탈자가
된다. 괴물이 나타나 강변을 뒤흔들어 놓는 바람에 아버지 가족은 생계유지가 어렵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이 사랑하는 손녀딸까지 잡아갔기
때문에 괴물은 반드시 처치해야 할 철천지원수가 되어 버리고 만다.
이와
같이 두 그룹이 괴물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완전히 반대이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는 방식 또한 정반대로 나타나고, 영화는 두 그룹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중심으로 이끌어나가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괴물’ 은 외세와 결탁하여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유산계급과 그들의 하수인 그룹 그리고 자신들이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언제 삶의 터전을 빼앗길지 모르는 무산계급간의 갈등과 대립, 그리고 공존을 기본 구성으로 한 것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괴물’은 민족감정에 호소하는 반미영화도 아니며, 가정을 중시하는 가족애를 다룬 영화도 아니다. 약자의 연대를 보여주면서 현실을 고발하는 그런
영화는 더욱 아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오랜 동안 존재해왔으며, 현재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재할 수밖에 없는 계급간의 투쟁과 공존의 현실을
가족애와 현실고발이라는 표면적 소재로 포장한 그런 영화가 바로 ‘괴물’이 되는 것이다. 이제 아래에서 등장인물의 성격 분석을 통해 작품의 성격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2.
등장인물의 성격분석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괴물’의 기본 구성은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의 투쟁과 공존이라는 거대한 인류 역사의 흐름을 핵심주제로 하고 있다. 작품이 지니고
있는 이런 성격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을 분석해보면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1)
아버지(희봉)
무산계급의
대표자이지만 부인이 없는 상태에서 자식을 키우는 재미로만 살아온 사람. 부인이 없는 상태에서 아들 둘과 딸 하나를 키워 교육시킴으로서 영화를
보려 하지만 뜻대로 되는 것이 없어 한강변에서 장사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무산계급이 지닌 정직성과 순수성을 간직하고 있기는 하지만 오랜
삶을 살아오면서 세파에 찌들대로 찌들어서 돈으로 유산계급과 타협하는 방법을 터득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감독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아버지는 끝까지
살아남아서는 안 되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따라서 그는 가족 중 가장 첫 번째의 희생자가 된다.
(2)
큰아들(강두)
좀
어리석게는 보이지만 무산계급이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순박함과 가족애, 그리고 어려움을 헤치며 나아가는 용기 등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존재다.
영화에서 현서의 아버지인 강두는 다른 주인공에 비해 유난히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바이러스
보균자로 지목되어 병원에 갇히기도 하고, 도망하면서 수배범이 되기도 하는데다가 급기야는 바이러스 검출을 위해 뇌수술까지 받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는 마취주사를 놓아도 마취가 되지 않으며 어떠한 고통과 핍박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딸을 찾기 위한 목적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그러므로
감독이 볼 때 강두는 무산계급의 영원성을 나타내기에 가장 적합한 존재가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었듯이 추운 겨울날에도 구닥다리 총을 들고
한강을 지키는 강두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어떤 난관도 헤쳐 나갈 수 있는 우리의 진정한 이웃이라는 점을 감독은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3)
현서
현서는
엄마가 없는 상태에서 온 가족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면서 무럭무럭 자라는 아버지 가족 모두의 희망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에도 불구하고
현서는 마지막에는 죽음을 맞이한다. 언뜻 바라보면 가족의 희망인 현서는 결코 죽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감독은
현서를 죽음으로 몰고가게 되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현서는
무산계급의 집안에서 태어나 중학생이 된 순 토종 무산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유산계급의 이념에 물들 수밖에 없는 학교에 다니고 있는
존재이다. 헨드폰이 구닥다리라서 정말 짜증난다고 아버지에게 푸념을 하는 현서의 모습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계급투쟁과 공존이라는 인류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기본 틀로 하고 있는 감독의 입장에서는 현서가 끝까지 살아남아서는 무산계급의 순수성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교생활을 하면서 유산계급에 어느 정도 물들어버린 현서는 세주를 살리면서 무산계급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으로 그 역할을 마감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4)
삼촌(남일)
아버지
가족의 첫째 희망은 현서의 삼촌인 남일이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했으며 민주화 운동을 위해 온몸을 불살랐던 열혈청년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를
수용하지 않았고, 술과 탄식으로 세월을 보내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대학이라는
먹물까지 먹은 남일은 이념적으로는 투철한 무산자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유산계급의 논리에 물들어 있는 존재이다. 화염병을 만들기 위해
노숙자에게 술병을 돈 주고 사려다가 노숙자에게 얻어맞는 장면에서 남일의 이런 성격은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남일은 어디까지나 순수무산자 계급인 강두의 보조자 구실을 하는 존재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영화의 핵심을 보여주는 처음과 마지막에는
남일은 나타날 수가 없게 된다. 남일이 지닌 이러한 성격은 그의 여동생인 남주에게도 그대로 나타난다.
(4)
고모(남주)
학교를
졸업하고 수원시청에 근무하는 현서의 고모인 남주는 가족의 희망을 가슴에 품은 채 양궁선수로 출전하여 우승을 노린다. 그러나 마지막에 집중력이
떨어져서 삼등 정도에 머무른다.
남주
역시 감독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순수한 무산자 계급이 될 수 없는 존재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유산계급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존재로 변해버릴
수도 있는 사람이 바로 남주인 것이다.
그러므로
남주는 조카인 현서를 구출하는 행동에서도 적극적이지 못하다. 그녀의 화살은 늘 빗나가고 괴물에게 맞아서 실신하기까지 한다. 무산자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노숙자에 의해 휘발유를 뒤집어쓴 괴물에게 화살을 날려서 불을 붙이는 정도가 바로 남주가 이 작품에서 해야 하는
역할이다.
(5)
세주
부모도
없고, 집도 없는 상태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형제 중 동생으로 등장하는 존재이다. 먹을 물건을 훔치는 것은 절도가 아니지만 돈을 훔치는 것은
절도라는 생각을 지닌 세진과 함께 살아간다.
떠돌이
형제의 이러한 행동은 무산계급의 성격을 아주 잘 보여주는 것으로 파악된다. 소유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두 소년의 대사와 행동이야말로 무산계급에 대한 감독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보아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동생인 세주는 현서의 도움으로 살아남아서 강두가 지닌 무산계급의 순수성을 이어가는 존재로 부각되는 것이다. 따라서 세주는 강두와 함께 추운
겨울에 한강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6)
도날드 하사
한강변에
나타난 괴물과 싸우다가 한쪽 다리를 잃고 수술의 충격으로 인하여 끝내 숨지고 마는 도날드 하사는 독극물을 한강에 버린 주범인 미국의 군인이다.
그렇다면 이 미군의 성격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한강에
등장한 괴물이 바로 미군이 버린 독극물에 의해 생긴 돌연변이라는 설정을 해놓았던 감독이 왜 갑자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괴물과 싸우는 미군병사를 등장시켰을까 하는 점이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도날드
하사의 행동과 죽음이 갖는 의미가 바로 이 영화가 반미영화 수준을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된다. 도날드 하사는 미군의 병사이지만 전 세계
무산계급을 대표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가 장교가 아닌 하사라는 계급이었음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도날드
하사는 민족보다는 인류 역사 전체를 관통하여 존재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무산계급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기 때문에
짧지만 작품 속에서 하는 역할이 대단히 크다는 것이다. 도날드 하사는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마음 속 메시지를 담아내는 세주
형제와 함께 강두의 무산계급성을 보여주는 보조자인 셈이 된다.
(7)
공무원, 경찰, 의사, 미군장교, 미국의사
작품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희화화 되어 있다. 괴물이 나타나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힌 급박한 상황에서도 뇌물을 바라는 존재가 공무원이며, 괴물의 출현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상부의 지시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면서 강두의 진실을 귀담아 듣지 않는 바보 같은 존재가 의사와 경찰이다.
미군장교와
미국의사 역시 그 나라의 지식인이겠지만 작품 속에서는 형편없는 짓을 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한강이 크기 때문에 마음을 넓게 가지고 독극물을
버리라는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리는 존재가 미군장교이다.
또한
수술 도중 자신들의 실수로 인해 미군병사가 죽었지만 그 진실을 은폐한 채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바이러스의 존재를 증명해내려고 강두의
머리에서 세포를 추출하는 미국의사 역시 바보 같은 존재이다. 아버지 가족의 반대편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웃기는 존재로 성격규정이 된
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계급투쟁과 공존을 그린 작품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8)
괴물
독극물로
인해 돌연변이가 된 한강의 괴물은 폭력적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그 동안 보아왔던 할리우드의 괴물과는 상당히 다르다. 할리우드 영화에 비해 볼 때
우선 폭력적 잔인성이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을 피투성이로 만들어버리고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할리우드의 외계 괴물과는 달리 사람을 삼켜서
소화시키는데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리는 존재가 한강의 괴물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목적인 것처럼 보여주는 할리우드 영화의 괴물과는 달리 한강의 괴물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설정이다. 그러므로 이
괴물은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유산계급이 언제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괴물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강에
나타난 괴물은 번식을 하여 인류를 전멸시키려 하는 것도 아니고 고질라나 용가리 처럼 도시를 마구 파괴하지도 않는 그런 존재다. 사람을 잡아먹는
정도의 소란을 일으켜서 무산계급의 터전을 빼앗는 정도의 일만 하는 존재가 바로 한강의 괴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캐릭터를 통해 감독이 하고 싶었거나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괴물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으며, 늘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의 삶을 위협한다.
그러므로 권력과 힘이 없는 우리 무산자계급은 일치단결하여 이러한 괴물을 퇴치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일 것으로
생각된다.
3.
영화 ‘괴물’이 주는 메시지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진정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인류사회의 토대를 이루는 무산계급의 투쟁성과 영원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무산계급에
의해 만들어지며 그들에게 의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유산계급과의 공존을 함께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강두는 무산계급으로서 자신이 가진 정체성을 혈육인 딸을 통해 찾는 것이 아니라 떠돌이 아이인 세주를 통해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괴물’이란 영화를 가족애, 민족애, 반미, 환경파괴 등을 넘어 세계인 모두가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작품으로 승화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이 영화 전체를 통해 감독은 유산계급이야말로 무산계급을 모태로 하고 있으며, 무산계급이 없으면 유산계급 역시 생존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함과
동시에 공존이라는 관점에 있어서 본다면 무산계급의 행동방식 또한 투쟁과 대립으로만 일관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보여주고 있다.
무산계급은
유산계급을 낳고 기르는 어머니요. 사회를 만들고 발전적으로 이끌어가는 토대인 만큼 유산계급과의 대립과 공존을 함께 모색하는 변증법적인 삶의
방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바로 감독이 보여주려는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따라서
이 영화는 예술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작품성과 엔터테인먼트가 가지는 오락성인 흥행성도 함께 가지게 됨으로서 세계의 모든 관객들이 어떤 시각에서
보더라도 만족하고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작품이
지니고 있는 이런 이중성 때문에 이 영화는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개방성을 갖춘 작품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의 성공이 ‘괴물’이란 영화가 지닌 이런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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