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중앙대학교 대외협력부장 황윤원님의 글을 허락없이 전재했습니다.
2003년 이맘때는 정부혁신과 관련해서 정부와 학계, 특히 행정학계가 함께 참으로 분주했던 것 같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은 4월 9일 발표된 인사개혁 로드맵을 시작으로 7월 지방분권, 행정개혁, 재정세제개혁에 관한 로드맵이 연이어 발표되는 숨 가쁜 한해였다.
이어 8월14일 발표된 전자정부 로드맵을 마지막으로 참여정부 5개년 정부혁신 구상이 완성되었다. 국경 없는 무한경쟁과 급증하는 사회적 갈등에 대응하고자 효율적 행정, 봉사하는 행정, 투명한 행정, 함께하는 행정, 깨끗한 행정을 표방하는 ‘국민과 함께하는 일 잘하는 정부'를 구현하기 위한 정부혁신의 기치를 내걸었다.
정부혁신의 추진방법은 종전과는 달리 공무원을 개혁대상이 아닌 개혁주체로 참여시키고 분권적 · 하향적 개혁, 상시적 · 내실 추구형 개혁, 일방적 · 주입식보다는 자기학습적 개혁, 공급자인 관(官)보다는 수요자인 민(民을) 위주로 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를 위해 정부혁신의 내부동력 네트워크인 각 부처 업무혁신팀, 정부개혁 주관부처, 정부혁신위원회를 체계적으로 연계시키고자 하였다.
참여정부의 정부혁신 로드맵은 1단계 첫해에는 혁신기반 구축단계로써 정부혁신 추진체계 구축과 행정시스템 진단과 분석에 역점을 두었다. 2단계 개혁확산 단계인 2004년과 2005년에는 기존 시스템 개선과 새로운 시스템 도입으로 목표를 정했다. 마지막 단계인 금년과 내년에는 혁신의 제도화를 이루어 종합평가 및 피드백을 확인하고 시스템의 내실화를 기하고자 했다. 말하자면 금년과 내년에 향후 지속적인 정부혁신의 기본 틀과 인프라를 완전히 구축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3년 전의 정부혁신에 관한 장밋빛 로드맵을 새삼스레 정리하는 것은 보기에 따라 진부하고 부질없는 논의일 수도 있다. 정부는 당초에 그려진 로드맵에 따라 혁신업무를 잘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구태여 거론할 필요성이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업계획의 진척도를 확인하는 작업은 모든 사업의 기본이며 이를 위해서 민간기업에서는 오래전부터 과학적 관리 기법의 하나인 PERT/CPM(사업진척도평가기법)을 실용화시켰다. 그런데 여기서 유사한 내용을 가진 로드맵과 퍼트차트를 굳이 구분하려는 것은 양자가 지닌 암묵적 속성의 차이 때문이다.
로드맵은 그려진 지도에 따라 길을 찾아나가는 수동적 · 소극적 성격이 강하다. 반면에 퍼트는 공정단계마다 최종 목표치를 향해 진행하면서 예기치 못한 돌발환경이 야기되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 크리티컬 패스(Critical Path)를 찾아 주어진 기간 안에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 지향적 강제성이 강하기 때문에 로드맵보다는 훨씬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혁신은 참여정부만의 고유한 사업이 아니다. 역대정부 모두가 행정개혁, 행정쇄신, 정부개혁 등 명칭만 다를 뿐 수많은 행정현장의 혁신 작업을 시행해 왔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 행정은 상당한 정도의 선진화를 이루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고유의 현실에 적합한 모델 개발에 소홀했거나 혁신집행과정에서 야기된 문제로 인해 실패한 혁신도 적지 않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특히 혁신 대상 집단을 마치 폐기물인 듯 간주해 단순히 법규개정만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시작했다가 낭패를 겪은 경우도 있다.
말하자면 권위적 · 폐쇄적 · 무사안일적 혁신대상 공무원들을 적발하기만 하면 혁신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비록 이들이 누구나 공감하는 혁신 대상자들이라고 하더라도 이들을 한꺼번에 몰아 동해바다에 버릴 수가 없다는 현실적 여건을 고려한 혁신이어야 한다.
성과 없는 공무원을 가차 없이 적발해 집으로 보내는 것보다는 이들이 혁신적 공무원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미국의 오클랜드 프로젝트(Oakland Project)가 현실적 집행 여건을 무시한 혁신정책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실패 사례로 두고두고 학계의 연구대상이 된다는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무릇 혁신이란 명시적 수혜집단 규모보다는 묵시적 피해규모가 더 크기 때문에 보다 철저한 현실적 여건 분석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부분의 혁신 작업은 왜 혁신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리의 결여(Why Innovation?), 혁신주체세력의 부족(Who Innovates?), 시기선택의 오류(When Innovates?), 혁신범위의 모호성(How Much Innovate?), 혁신방법상의 오류(How Innovate?) 등 고려해야 할 점이 허다하다.
그 중에서 혁신논리의 결여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혁신에 대한 국민적 동의가 충분한지에 대한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혁신의 주체이자 객체인 공무원들이 먼저 자발적으로 그 혁신논리에 동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이들이 스스로 발 벗고 나서 혁신주체세력의 외연을 확산시키고 나아가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참여정부의 혁신내용 중 하나인 팀제 도입의 경우, 우선 담당부처인 행정자치부 내의 절대다수가 논리적으로 이를 수용해야 한다. 만약 장관을 비롯한 일부 혁신주관부서만 적극적으로 수용, 참여하고 여타 부서는 수수방관한다면 부처 내에서도 혁신집행이 어렵게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전 정부적으로 확산시키기 매우 힘들고, 국민적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팀제 도입에 있어서는 행정자치부 뿐 만 아니라 여타 부처에서도 이미 도입했거나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행이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행정현장, 특히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현실적 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논리적 수용에 인색하다는 지적이 없지 않기 때문에 향후 제도정착에는 이점을 보다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혁신시기 선택의 문제나 혁신범위 문제도 지속적 혁신을 위한 중요한 고려요인이다. 2004년 IBM 사무엘 팔미사노(Samuel J. Palmisano) 회장의 주선으로 전 세계 유력한 선도적 사상가들이 모여 다양한 분야의 혁신논리를 개발하고자 마련된 GIO(Global Innovation Outlook)회의 결과도 이러한 혁신시기와 범위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했다.
근본적으로 정부와 비즈니스는 다르기 때문에 혁신 시기나 범위도 비즈니스와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로 뽑힌 공직자가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는 혁신적 개혁을 상대적으로 짧은 재임기간 내에 착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동시에 전 부문에 걸치기 보다는 특정부문에 한정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전 방위적 혁신이나 시기를 무시한 혁신은 진정한 의미의 혁신으로 보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것은 국민을 대신해서 행동해야 하는 정부는 비즈니스와 달리 스스로 고객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요자인 국민은 정부혁신의 고객이지만 이 고객은 주어진 조건인 종속변수일 뿐,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독립변수가 아니다.
정부혁신의 밑그림은 이미 완성돼 지금은 제도화 내지는 정착단계에 접어들었다. 진정한 정부혁신의 제도화는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되 수동적 로드맵 안내 작업이 아닌 보다 적극적인 PERT/CPM 확인 작업으로 전환시킬 때가 지금이라는 생각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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