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민환<고려대 교수 (1992-현재)>
대학 4학년 때 일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길을 트기 위해 공화당 정부가 개헌을 시도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3선 개헌 반대운동이 대학가를 휩쓸었다. 나는 취직 준비를 해야 한다며 한동안 발을 빼고 있다가 뒤늦게 그 운동의 한 구석에 서게 되었고, 그 죄로 시위가 한 풀 꺾일 무렵에 6개월 정학처벌을 받았다. 1학기 말에 6개월 정학을 맞아 꼼짝 없이 1년을 더 다녀야 했다. 그러나 나만 당한 것이 아니었다. 모두 열 두 명이 퇴학에서 정학에 이르는 징계를 받았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게 고려대 역사상 가장 가혹한 처벌이었다.
이듬해 연초에 무슨 일론가 처벌을 받은 열 두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야기를 마치고 헤어지려 하는데 어느 학생이 학생처장께 세배 드리러 가자고 했다. 한 학생이 이 제의에 강하게 반발했다. 무더기 징계를 내린 처장에게 세배를 가다니 말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다른 학생도 거들었다. 세배 가는 것은 투쟁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징계의 정당성만 인정하는 행위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내린 결론은 가자는 쪽이었다.
처장이셨던 윤 아무개 교수댁을 찾아가 열 두 명이 넙죽 큰절을 하는 바로 그 찰나에 나는 당혹감 같은 걸 느꼈다. 최고 학년인 내가 선생님께 무슨 말씀인가를 드려야 하는데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곤혹스러움은 퇴학 처벌을 당한 1년 후배가 단숨에 풀어주었다.
“4·19 때 조지훈 선생님께서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는 시를 남기셨습니다. 선생님, 어찌 선생님만 학생들 마음을 알겠습니까? 저희도 선생님 마음을 압니다. 저희들에 대해 부담 느끼지 마십시오.” 지금은 장관이 되어있는 이상수 군이 그렇게 말했다. 그야말로 명언이었다. 깜짝 놀라며 얼굴을 활짝 펴시던 선생님의 모습을 나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90년대 초반 어느 날이었다. 나는 학교 연구실로 가다가 복도 벽면에 붙은 벽보 하나를 발견했다. 총장을 험악하게 비난하는 대자보로, 내가 소속한 단과대학의 학생회가 붙인 거였다. 내용은 뭔지 모르겠으나 제목에 저질스런 낱말이 여럿 들어 있었다. 나는 연구실로 가 단과대 학생회로 전화를 걸었다. 내 신분을 밝히고 대자보를 떼라고 말했다. 학생이 왜 떼야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간단하게 답했다.
“학생운동의 품격을 위해 떼 내게.”
10여 분 뒤 수업을 하러 가며 보았더니 대자보가 붙어 있던 벽면은 말끔해져 있었다. 조지훈 선생이 가르치고 이상수 군이 배운 그런 학교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그 자랑스러운 후배 학생들에게 그 때 자장면이라도 몇 그릇 사주지 못한 아쉬움을 지금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몇 주 전에 학교에서 일이 터졌다. 학생들이 보직교수 여러 분을 감금한 바 있는데 학교에서는 주동 학생 여러 명을 처벌한 것이다. 출교 처분을 받은 학생만 일곱이란다. 요즘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얼마나 못 된 짓을 했는지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고, 학생들은 학교 처사가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만을 강변하고 있다. 교수가 학생들 마음을 알고, 학생들이 교수들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이제 옛 이야기일 뿐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게 어디 학내문제에 머물 일인가? 대쪽같이 편이 갈린 우리 사회가 이런 걸 가만 둘리 없다. 보수 신문은 학교를 싸고돌면서 다른 대학도 학생운동에 강경 대응하도록 부추긴다. 진보 매체는 반대로 학생들을 편든다. 온통 나만 있지 너는 없다. 세태는 조지훈 선생과 이상수 후배를 다시금 그리워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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