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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불교 혁신론(朝鮮佛敎革新論)
[주] 圓紀 20년 4월에 발표된「朝鮮佛敎革新論」은 大宗師와의 의견 교환을 거쳐, 鼎山宗師가 圓紀 5년경부터 草案되기 시작하여 15년 뒤에 대종사의 親鑑을 거쳐 발간되었다. 이때에는 총부에 대각전이 준공되고 불단에 心佛 一圓相을 봉안함으로써 새 회상 신앙의 대상을 공식적으로 선포한 것과 때를 같이하여 혁신론이 발간된 것이다. 혁신론 맨 마지막에 심불 일원상 조성법을 발표하여 그 재질과 형태 등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여기서는 내용을 생략하였다.‘혁신론’은 일제의 강압에 의해 1943년「불교정전」간행 시에‘개선론’으로 제목이 바뀌어 수록되었다.
총론(總論)
불교로 말하면 노대 종교로서 세계적 종교가 되었는지라,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넓은 세상에 있는 불교를 다 말할 것은 없으나, 조선 불교에 있어서는 폐단을 대강 알고 발전을 하기로 하는지라, 외람되이 이로써 혁신의 내력을 말하자면, 외방의 불교를 조선의 불교로, 과거의 불교를 현재와 미래의 불교로, 산중 승려 몇 사람의 불교를 일반 대중의 불교로 혁신하되, 부처님이 설하신 무상 대도는 변치 아니할 것이나 세간(世間) 출세간(出世間)을 따라서 세간 생활에 필요한 인생의 요도를 더 밝혀야 할 것이며, 모든 교리를 운전하는 제도와 방편도 시대와 인심을 따라서 쇄신하여야 할 것이다.
이 불교가 우리 조선에서 생겨났다 할지라도 교리를 운전할만한 인물이 나고 보면, 발전을 위하여 보충할 것은 보충할 수가 있고 장해될 일은 혁신할 수가 있는데, 겸하여 이 불교를 말하면 인심 풍토가 다른 외방의 종교로서 중국을 경유하여 조선에 온 후 근 이천년 역사를 가졌으니, 그동안 정치 변동과 인심 변천을 따라서 혹 배척도 받았을 것이며 혹 환영도 받았을 것이며 혹 폐단도 주었을 것이며 혹 도움도 주었을 것이니, 그 많은 파란을 지날 때에 불교라는 이름과 주체되는 교리는 옛날 부처님이 설하신 그대로 남아있을지라도, 소소한 교리와 제도만큼은 변동이 있을 것은 누구나 물론하고 잘 알 줄로 믿는 바이다.
1. 과거 조선 사회의 불법(佛法)에 대한 견해
불교는 조선에 인연이 깊은 교로써 환영도 많이 받았을 것이며 배척도 많이 받았을 것이나, 환영은 여러 백 년 전에 받았고 배척받은 지는 오래지 아니하여, 유교의 세력에 밀려서 세상을 등지고 산중에 들어가 유야 무야 중에 초인간적 생활을 하고 있었으므로 조선 사회에서는 그 법을 아는 사람이 적은 지라, 이에 따라 혹 안다는 사람은 말하되, 산수와 경치가 좋은 곳에는 사원이 있다고 하며, 그 사원에는 승려와 불상이 있다고 하며, 승려와 불상이 있고 보면 세상에 사는 사람은 복을 빌고 죄를 사하기 위하여 불공을 다닌다 하며, 그 승려는 불상의 제자가 되어가지고 처자 없이 독신생활을 한다 하며, 삭발을 하고 머리에는 굴갓을 쓰고 몸에는 검박한 옷을 입고 목에다는 염주를 걸고 손에다는 단주를 들고, 입으로는 염불이나 송경을 하며 등에는 바랑을 지고 밥을 빌며 동냥을 하며, 혹 세속 사람을 대하면 아무리 천한 사람일지라도 문안을 올린다 하며, 어육(魚肉) 주초(酒草)를 먹지 아니한다 하며, 모든 생명을 죽이지 아니한다 하나, 우리 세상 사람들은 양반이든지 부귀를 한다든지 팔자가 좋은 사람이든지하면 승려가 아니 되는 것이요, 혹 부모 없는 불쌍한 아이나 사주를 보아서 단명(短命)한다는 아이나 죄를 짓고 망명하는 사람이나 혹 팔자가 사나운 사람이나 의식 없이 걸식하는 사람이나 이러한 류가 다 승려가 되는 것이라 하며, 혹 승려 중에도 공부를 잘하여 도승(道僧)이 되고 보면 사람이 사는 집터나 백골을 장사하는 묘지나 호풍환우와 이산 도수하는 것을 마음대로 한다고도 하지마는, 그런 사람은 천에 일이요 만에 일인이 되는 것이니, 불법이라 하는 것은 허무한 도요 세상 사람은 못하는 것이라 하며, 우리는 돈이 있다면 주륙(酒肉)과 음악 기구를 준비하여 가지고 경치 찾아서 한 번씩 놀다 오는 것은 좋다고 하며, 누가 절에 다닌다든지 승려가 된다든지 하면 그 집은 망할 것이라 하며, 시체를 화장하니 자손이 도움을 얻지 못할 것이라 하며, 불법을 믿는 승려라면 사람은 사람이되 별 동물과 같지 아는 것이 조선 사회의 습관이 되었나니, 이와 같은 조선에 어떠한 능력으로써 불교를 발전시키며 불법에 대한 호감을 갖게 하리오.
2. 조선 승려의 실생활
이 말을 하고자 하는 이 사람도 과거 조선 사회의 한 사람으로, 불교에 대한 상식이 없다가 어떠한 생각 어떠한 인연으로 불교를 신앙하는 동시에 불교에 대한 약간의 상식이 있게 됨으로써 조선 승려의 실생활을 말하게 되었다.
그 생활을 들어 말하자면 풍진 세상을 벗어나서 산수 좋고 경치 좋은 곳에 청결한 사원을 건축하고 존엄하신 불상을 모시고 사방에 인연 없는 단순한 몸으로 몇 사람의 동지와 송풍나월에 마음을 의지하여 새 소리 물소리 자연의 풍악을 사면으로 둘러놓고, 세속 사람이 가져다주는 의식으로 근심 걱정 하나도 없이 등 따뜻하게 옷 입고 배부르게 밥 먹고, 몸에는 수수한 수도복 흑색 장삼을 입고, 어깨에는 비단 홍가사(紅袈裟)에 일월광(日月光)을 흉배(胸背)로 놓아 둘러메고, 한손에는 파초선 또 한손에는 단주, 이와 같은 위의(威儀)로 목탁을 울리는 가운데 염불이나 혹은 송경이나 혹은 좌선이나 하다가, 수목(樹木)사이에 있는 화려하고 웅장한 대 건물 중에서 몸을 내어놓고 산책하는 것을 보면, 조선 사람의 생활로서는 그 위에 더 좋은 생활은 없을 줄로 알았다.
그러면 승려가 되어서 다 이와 같이 생활을 하였는가? 조선 일반 승려가 다 그러한 것은 아니나, 일반적으로 본다 하더라도 반수 이상은 이와 같은 생활을 하는 줄로 안다. 그러나 내면으로 들어가서 심리 생활하는 것은 잘 알 수 없지마는, 불교의 교리와 제도된 것이 세간 생활을 본위로 한 것이 아니라 출세간 생활을 본위로 하였나니, 출세간 생활이라 하는 것은 대개는 세간 생활과 같이 하는 것이 없으므로, 심리 생활도 또한 세속 사람과는 차이가 있을 줄로 안다.
세속 풍진 중에 사는 사람은 혹 만석(萬石)을 받는 사람이나 혹 재상(宰相)이나 이러한 부귀(富貴)를 하는 사람이라도 그와 같이 한가한 생활 청결한 생활 취미 있는 생활은 하지 못할 것이요, 아무리 못난 승려 빈천한 사람이라도 속가(俗家)에 일 이 백 석 받는 사람보다는 취미 있는 생활 한가한 생활을 한다할 것이다.
우리 세간 농촌 궁민(窮民)의 생활하는 것을 보면, 두 줄 사이에 목을 넣고 팥죽 같은 땀을 흘려가며, 여름이 되고 보면 보리밥 삶아 먹은 더운 방에서 모기 빈대 뜯겨가며 잠을 자고, 밥은 꽁보리밥에 된장 간장이 반찬이요, 그도 못 먹으면 혹은 보리죽을 먹으며, 자리는 갈대나 밀대 방석을 사용하며, 몸에는 거친 무명베로 검박한 옷을 해 입고, 삼복 시절 더운 날에 쉴 틈 없이 노력하여 겨우겨우 농사라고 지어놓으면, 빚 받을 사람은 성화같이 달려와서 다가져 가고 보면 먹을 것이 없게 되어, 필경에는 부모처자 식구들까지라도 서로 싸우고 원망하며 이러한 세상 어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나니, 이에 비하면 산중 승려 수도 생활은 천상(天上) 선관(仙官)의 생활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세속 사람으로 이만한 생활을 알고 보면 그 어찌 승려 되기를 원치 아니 하리오.
3. 세존의 지혜(智慧)와 능력(能力)
우리는 모든 중생이 생사 있는 줄만 알고 다생이 없는 줄로 아는데 부처님께서는 생사 없는 이치와 다생 겁래에 한없는 생이 있는 줄을 더 아셨으며, 우리는 우리 일신의 본래 이치도 모르는데 부처님께서는 천지 만물의 본래 이치까지 더 아셨으며, 우리는 선도가 무엇인지 악도가 무엇인지 구별이 분명치 못하여 우리가 우리 일신을 악도에 떨어지게 하는데 부처님께서는 자신을 제도하신 후에 시방 세계 일체 중생을 악도에서 선도로 제도하는 능력이 계시며, 우리는 우리가 지어서 받는 고락도 모르는데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지여서 받는 고락과 우연히 받는 고락까지 아셨으며, 우리는 복락을 수용하다가도 못하게 되면 할 수 없는데 부처님께서는 못하게 되는 경우에는 복락을 또 오게 하는 능력이 계시며, 우리는 지혜가 어두웠든지 되는대로 사는데 부처님께서는 지혜가 어두워지면 밝게 하는 능력이 계시고 밝으시면 계속하여 어두워지지 않게 하는 능력이 계시며, 우리는 탐심이나 진심이나 치심에 끌려서 잘못하는 일이 많이 있는데 부처님께서는 탐심 진심 치심에 끌리는 바가 없으시며, 우리는 천지 만물 허공 법계 있는 것에 끌려서 천지 만물 허공 법계 없는 것을 모르는데 부처님께서는 있는 것을 당할 때에 없는 것까지 아시고 없는 것을 당할 때에 있는 것까지 아시며, 우리는 천도․ 인도․지옥․아귀․축생․ 수라 이 육도(六途)와 태란습화 사생(四生)을 알지도 못하는데 부처님께서는 이 육도 사생의 변화하는 이치까지 아시며, 우리는 다른 물건을 해(害)하여 다가 우리를 좋게 하려고 하는데 부처님께서는 사물을 당할 때에 자리이타로 하시다가 못하시게 되면 이해와 생사를 불고하시고 타물을 이롭게 하는 것으로써 당신의 복락을 삼으시며, 우리는 몇 십만 석을 받는다 하더라도 사방 주위 몇 천리 안이 자기의 소유가 될 것이요 집으로 말하더라도 몇 백간 몇 천간 밖에 자기의 소유가 아닐 것이며 권속으로만 말 하더라도 몇 십 명 몇 백 명밖에는 자기의 권속이 아닐 것인데 부처님께서는 시방 세계가 다 부처님의 소유요 시방 세계의 모든 건물이 다 부처님의 건물이요 시방 세계의 일체 중생이 다 부처님의 권속이라 하셨으니, 이런 말을 보고 들을 때에는 이해 없는 사람은 부황한 말이라 할 것이나 아는 사람에 있어서는 자자 글귀가 다 금언 옥석으로 알 것이다.
이 부처님의 지혜와 능력을 어리석은 중생의 입으로나 붓으로 어찌 다 성언하며 기록하리요마는, 대략을 들어 중생 제도하는 그 교리를 말하자면 높기로는 수미산 같고, 깊기로는 항하 수 같고 교리 수효로는 항하사 모래수와 같고, 넓은 크기로 말하자면 천지 만물 허공 법계를 다 포함 하였나니, 우리 불법 신자는 이와 같은 부처님의 지혜와 능력을 얻어가지고 중생 제도하는 데에 노력하기 바라는 바이다.
4. 외방(外防)의 불교를 조선의 불교로
인도의 불교가 중국을 경유하여 조선에 왔는지라, 조선 사람으로는 그 경전을 볼 때에 사람 이름이나 땅 이름이나 물건 이름이나 일에 대한 말이나 이치에 대한 말이나 인도 숙어와 명사가 많아서 혹은 중국 숙어와 명사도 있으며 또는 조선 사람이 일반적으로 배우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려운 한문으로써 경전이 대개 되어 있는 고로 그 경전을 조선 사회에 내어놓고 유무식 남녀노소를 망라하야 가르쳐주기가 어려울 것이니, 우리는 인도 불교에도 끌리지 말고 중국 불교에도 끌리지 말고 조선 재래 불교에도 끌리지 말고 오직 부처님의 무상 대도의 요지와 시방 세계 일체 중생을 자비로 제도하시던 강령을 들어 조선 명사와 숙어와 조선 문자에 혹 한문을 가하여 교리와 제도를 정선하여 이로써 초등 교과서를 정하고, 부처님의 무상 대도의 이치와 자비 사업의 대의를 깨치게 한 후에 과거 경전은 참고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좋을 것이니, 불법의 대의를 쉽게 알고자 하는 사람은 이 불법의 혁신 내용을 잘 알아 가지고 부처님의 지혜와 능력을 속도로 얻어야 할 것이며, 이상에 말한 과거 경전을 자기가 임의로 부처 보도록 까지 배우기로 하면서 시일이 근 십년이 걸릴 것이며 또 부처님의 진리를 배워 알기로 하면 한없이 시일이 걸릴 것이니, 우리 조선 빈한한 사회에서 분망한 생활을 하는 사람은 여가를 따라서 속도로 하는 방법을 취하여야 할 것이니, 이에 환희 심을 발하여 이상에 말한 교과서로써 세간 출세간을 물론하고 잘 배우기를 바라는 바이다.
5. 소수인(小數人)의 불교를 대중의 불교로
재래 조선 불교는 배척을 받을 때에 소수인의 종교로서 세간을 버리고 출세간 생활하는 승려를 본위 하여 교리와 제도가 조직되었으므로, 세간 생활하는 속인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서로 맞지 아니하고 반대같이 되었으며, 또는 세간 생활하는 속인의 신자가 있다 할지라도 주체가 되지 못하고 객관적이므로 그 중에서 특수한 사업과 특별한 공부를 한 사람이 있다면 이거니와, 그렇지 아니하고 보통 신자에 있어서는 출세간 생활하는 승려와 같이 부처님의 직통 제자로나 불가의 조상으로 들어가기가 어렵게 되었으니, 어찌 그 교리 그 제도로써 대중화가 되리오.
또는 이상에 말한 출세간을 본위 한 교리와 제도가 세간 생활에 맞지 않는 내력을 대강 들어 말하자면, 교(敎)라 하는 것은 사람을 가르치는 것인데, 인간이 없는 곳에 교당을 두었으니 세간 생활에 분망한 그 사람들이 어느 여가에 인간을 벗어나서 그 가르침을 받을 것이며, 의식 생활에 있어서도 사농공상의 원(元)직업을 놓아버리고 불공이나 시주나 동령으로써 생활하였으니 어찌 대중이 다할 생산이며, 또는 결혼 생활에 들어가서도 출세간 공부하는 사람에 있어서는 절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생활이 또한 넓다하지 못할 것이며, 교리로 말하여도 세간 생활하는 교리가 구체적으로 되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 법이 넓다 할 것인가?
그러면 어찌하여야 할 것인가 하면, 세간 공부하는 사람이나 출세간 공부하는 사람에 대하여 주객의 차별이 없이 공부와 사업의 등급만 따를 것이며, 계통(繼統)하는 데에도 차별이 없이 직통(直統)으로 할 것이며, 수도하는 처소도 신자를 따라서 어느 곳이든지 건설하여야 할 것이며, 의식 생활에 들어가서도 각자의 처지를 따라서 하게 할 것이며, 결혼 생활에 들어가서도 자의(自意)에 맡길 것이며, 재가출가를 하는 것도 특별한 서원은 말할 것이 없으나 정식에 들어가서 유년기에는 문학을 배우게 하고 장년기에 있어서는 도학을 배우며 제도 사업에 노력하게 하고 60이 넘어서는 경치 좋은 산중 사원에 들어가서 세간의 애착 탐착을 다 여의고 생사 대사를 연마하며 불한불열한 춘추 6개월이 되고 보면 세간 교당을 순회하여 모든 신자로 하여금 선도(善道)에 나아가도록 하며, 동하(冬夏) 6개월이 되고 보면 출입을 중지하고 산중 생활에 들어가서 물소리 새소리 자연의 풍악을 둘러놓고, ‘이 뭐꼬’ 도리와 ‘나무아미타불’로 벗을 삼아 여년을 마치고 보면 일생 생활에 결함된 점이 없을 것이며, 또는 세간 출세간을 물론하고 대중화하기로 하니, 교리에 있어서도 견성 양성만 주체로 할 것이 아니라 솔성을 가하여 삼대 강령을 주체로 하여야 할 것이므로 출세간 공부하는 공부의 요도를 만들어야 할 것이며, 세간 생활하는 인생의 요도를 만들어야 할 것이며, 세간 출세간을 물론하고 공부에 대한 훈련의 과목을 만들어야 할 것이며, 기관에 있어서도 시대와 인심을 따라서 이 교리 이 제도를 운전하는데 결함이 없도록 조직하여야 할 것이니, 우리 일반 신자는 이에 노력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6. 분열(分裂)된 교화 과목(敎化科目)을 통일하기로
재래 불교에서 신자에게 가르치는 과목은 혹은 경전을 가르치며 혹은 화두(話頭)들고 좌선하는 법을 가르치며 혹은 염불하는 법을 가르치며 혹은 주문을 가르치며 혹은 불공하는 법을 가르치는데, 그 가르치는 본의가 모든 경전을 가르쳐서는 불교에 대한 교리나 제도나 역사를 알리기 위함이요 화두를 들어서 좌선시키는 것은 경전으로 가르치기도 어렵고 말로 가르치기도 어려운 현묘한 진리를 깨치게 함이요, 염불과 주문을 읽게 하는 것은 번거한 세상에 사는 사람이 애착 탐착이 많아서 정도(正道)에 들기가 어려우므로 처음 불문에 오고 보면 번거한 정신을 통일시키기 위하여 가르치는 법이요, 불공법은 승려의 생활에 도움을 얻기 위하여 가르치나니, 신자에 있어서는 이 과목을 한 사람이 다 배워야 할 것인데, 불법에 대한 이해가 적은 사람은 이 과목 내에 혹은 한 과목이나 혹은 두 과목을 가지고 주장하며 하는 말이, ‘내가 옳다!’, ‘네가 그르다!’ 시비가 분분하며, 각자가 서로 당파를 모집하여 초입자의 신성을 방해하며 신자의 통일을 방해하며 일반 불교의 위신을 타락케 하여 발전에 대한 장해가 있게 되므로, 이 과목을 통일하여 선종(禪宗)의 천만(千萬) 화두(話頭)와 교종(敎宗)의 모든 경전을 단련하여 번거한 화두와 번거한 경전은 다 놓아버리고, 그 중에 제일 강령(綱領)과 요지(要旨)가 많은 화두와 경전으로 일과 이치에 연구력 얻는 과목을 정하고, 염불 좌선 주문을 단련하여 정신 통일하는 수양 과목을 정하고, 모든 계율과 과보 받는 내역과 네 가지 중대한 은혜를 단련하여 세간 생활에 적절한 작업취사의 과목을 정하고 모든 신자로 하여금 이 삼대 과목을 병진하게 하되, 연구 과목을 단련하여서는 부처님과 같이 이 무애(理無碍) 사 무애(事無碍)하는 연구력을 얻게 하며, 수양 과목을 단련하여서는 부처님과 같이 사물에 끌리지 않는 정력(定力)을 얻게 하며, 취사 과목을 단련하여서는 부처님과 같이 불의와 정의를 분석하여 실행하는데 취사력을 얻게 하여, 이 삼대력으로써 일상생활에 불공하는 자료를 삼아 모든 서원을 달성하는데 보감을 삼게 되면 교리가 자연 통일이 될 것이요 신자도 또한 통일이 될 줄로 믿는다.
7. 등상 불 숭배를 불성 일원상(佛性一圓相)으로
등상 불을 숭배하는 것이 교리 발전에 혹 필요는 있으나, 현재로부터 미래사를 생각하면 필요는 고사하고 발전에 장해(障害)가 있을 것이다. 그 증거를 들어 말하자면 농부가 농사를 지어놓고 가을이 되면 뭇 새들을 방지하기 위하여 인형 허수아비를 만들어 모든 새 오는 곳에 세워두면 그 새들이 그 인형 허수아비를 보고 놀라며 며칠 동안은 오지 않다가 저희들도 또한 여러 방면으로 시험을 보았는지 작성을 얻었는지 필경에는 달려들어 농작물을 작해(作害)하며 주워 먹다가 그 인형 허수아비 위에 올라앉아 쉬기도 하고 혹은 똥도 싸며 유희장 같이 사용하니, 이것을 본다면 그런 무식한 새 짐승도 인형 허수아비를 알거든, 하물며 최령(最靈)한 사람으로 저 동작이 없는 인형 등상 불을 근 이천년 모셔 보았으니 어찌 각성이 없으리오.
만일 각성이 생겨난다면 무상 대도(無上大道)의 교리는 알지 못하고 다만 그 한 방편만 허무하다 하여 이해 없는 여러 사람에게 악선전하는 사람이 많이 있게 된다면 어찌 발전에 대한 장해가 없을 것이며, 또는 존엄하신 불상을 방방곡곡에서 여러 사람이 직업자의 간판같이 사용하여 이로써 각자의 생활을 도모하니, 수도자의 입장에서 저 직업 자와 같이 불상을 모시고 불공을 받고 보면, 이해 없는 방관자로써 직업 자와 같이 취급할 것이며 또는 음식 불공이 많이 들어올 것이니, 이렇게 된다면 수도인 사는 처소에 위신만 없어질 것이 아니라 수도하는 사람까지 오지 아니할 것이며, 이에 따라서 불법에 대한 공부는 차차 없어지고 다만 영업집이 되고 말 것이다.
현재에도 일반 사회가 염불이나 하고 불공이나 하는 그 사람들을 불교 신자로 인증하는데, 그 사람들에 있어서는 부처님의 정법이 무엇인지 일체 중생 제도가 무엇인지 선도 악도가 무엇인지 모르는 그 사람들이 불교 신자로 인증을 받을 때에는, 그 교리와 제도를 운전하는 사람들까지 같은 층으로 취급할지도 모를 것이라 그 어찌 발전에 장해가 없으며, 또는 신자가 등상 불을 모시고 숭배하기로 하면 일반 신자가 다 모셔야 할 것인데, 그 등상불은 조성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모신 자에 있어서는 직통 제자와 같이 친근한 생각이 날 것이며 또한 의지와 위안이 될 것이나, 모시지 못하게 된 사람에 대해서는 그와 반대로 소원(疏遠)한 제자와 같은 생각이 나며 의지와 위안이 되지 못하리니 또한 유감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성 일원상을 모시고 숭배하기로 하나니, 그 불성 일원상으로 말하면, 부처님 말씀에 천지 만물 허공 법계가 다 부처님의 성품이라 하셨으니, 곧 한마디로 그 명사(名辭)를 들어 말하자면 불성이요, 불성의 형상을 그려 말하자면 곧 일원상이요, 그 일원상의 제작된 내역을 들어 말하자면 천지 만물 허공 법계를 다 포함하여 조성이 되었으므로, 그 일원상이 우리 중생에게 천만가지로 은혜 주신다는 것을 사실이 드러나도록 가르쳐줄 수가 있나니, 그 증거를 들어 말하자면 천지 만물 허공 법계가 다 부처인지라, 자기의 구하는 바와 짓는 바를 따라서 천지에게 당한 죄복은 천지에게 불공하고, 부모에게 당한 죄복은 부모에게 불공하고, 동포에게 당한 죄복은 동포에게 불공하고, 법률에게 당한 죄복은 법률에게 불공하는 것이, 사실로 죄를 사하고 복을 받는 것이 들어날 것이니, 우리는 다만 수도에 들어가서 진리적으로 불성 일원상을 모시고 숭배하고 보면 이해 없는 방관자에 있어서도 그 구별이 차차 날 것이며, 또는 부처님의 정법이 무엇인지 일체 중생 제도가 무엇인지 선도 악도가 무엇인지 모르고, 다만 맹인(盲人)을 찾아 문복(問卜)이나 하고 무녀(巫女)를 데려다가 굿이나 하는 사람에 지내지 못하는 그 사람들을 불법 공부 인으로 취급하는 습관도 차차 없어질 것이며, 또는 일반 신자가 다 불상을 모시기로 하여도 구속이 없이 모시게 될 것이며, 또는 현 시대는 전 세계 인류가 차차 장년기에 들어 지혜가 발달되므로 모든 사람이 순경 역경을 당할 때에는 혹 죄복에 대한 이해가 있을 것이며, 죄복에 대한 이해가 있고 보면 그 죄복의 근본 처를 찾을 것이며, 찾기로 하면 그 의지가 들어날 것이요, 그 의지가 드러나고 보면 잘 믿을 것이니, 사실로 번역하기 좋은 신앙 처를 발견하여 숭배하면 지우(智愚)를 물론하고 안심 입명 처를 얻을 것이며, 또는 재래 불교와 같이 자기의 불공을 다른 사람에게 의뢰할 것이 아니라 자기 불공은 자기가 하여야 할 것이며, 그 불공하는 방식도 신자에 있어서는 다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러면 그 불공하는 방식은 무엇인가하면, 재래 불교를 혁신한 교리와 제도라 할 것이며, 또는 불공하는 방식을 아는 것과 안 후에는 불공을 하여 성공하는 것이 한정(限定)이 있나니, 그 한정의 예를 대강 들어 말하면, 수천 세상을 하여야 성공할 일도 있고 몇 백 세상을 하여야 성공할 일도 있고 수십 생을 하여야 성공할 일도 있고 몇 생을 하여야 성공할 일도 있고 몇 십 년을 하여야 성공할 일도 있고 몇 해를 하여야 성공할 일도 있고 몇 달 며칠을 하여야 성공할 일도 있는 것이 그 일의 형세를 따라서 장단(長短)이 있는 것이요, 또는 인연 작복을 잘 하고 못하는 것과 부귀빈천 되는 것이 다 다생 겁래를 왕래하면서 불공 잘하고 못하는 데에 있나니, 그러므로 복이 많고 지혜가 많은 사람은 불성 일원상의 이치를 오득(悟得)하여 천지 만물 허공 법계를 다 부처로 숭배하며, 성공의 기한 구별도 분명하여 죄복의 본원 처를 찾아서 불공을 하므로 무슨 서원이든지 백발백중할 것이며, 또한 죄복의 본원 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모든 서원을 등상 불 한 분에게만 하며, 성공의 기한도 구별 없이 하는 것이, 비유하여 말하면 부모에게 할 불공을 천지에게 하고, 동포에게 할 불공도 천지에게 하고, 법률에게 할 불공도 천지에게 하고, 일 년을 하여야 성공할 일을 한두 달 하다가 말고 한 달이나 하여야 성공할 일을 하루나 이틀 하다가 마는 것과 같나니, 그런 사람에 있어서는 불공이 허망할 것이며 성공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등상 불 한 분만 부처님으로 모실 것이 아니라, 천지만물 허공법계를 다 부처님으로 모시기 위하여 불성 일원상을 숭배하자는 것이다.
작성 dodo(21.04.19)에서 가져왔음
조선불교 혁신론(朝鮮佛敎革新論)
[주] 圓紀 20년 4월에 발표된「朝鮮佛敎革新論」은 大宗師와의 의견 교환을 거쳐, 鼎山宗師가 圓紀 5년경부터 草案되기 시작하여 15년 뒤에 대종사의 親鑑을 거쳐 발간되었다. 이때에는 총부에 대각전이 준공되고 불단에 心佛 一圓相을 봉안함으로써 새 회상 신앙의 대상을 공식적으로 선포한 것과 때를 같이하여 혁신론이 발간된 것이다. 혁신론 맨 마지막에 심불 일원상 조성법을 발표하여 그 재질과 형태 등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여기서는 내용을 생략하였다.‘혁신론’은 일제의 강압에 의해 1943년「불교정전」간행 시에‘개선론’으로 제목이 바뀌어 수록되었다.
총론(總論)
불교로 말하면 노대 종교로서 세계적 종교가 되었는지라,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넓은 세상에 있는 불교를 다 말할 것은 없으나, 조선 불교에 있어서는 폐단을 대강 알고 발전을 하기로 하는지라, 외람되이 이로써 혁신의 내력을 말하자면, 외방의 불교를 조선의 불교로, 과거의 불교를 현재와 미래의 불교로, 산중 승려 몇 사람의 불교를 일반 대중의 불교로 혁신하되, 부처님이 설하신 무상 대도는 변치 아니할 것이나 세간(世間) 출세간(出世間)을 따라서 세간 생활에 필요한 인생의 요도를 더 밝혀야 할 것이며, 모든 교리를 운전하는 제도와 방편도 시대와 인심을 따라서 쇄신하여야 할 것이다.
이 불교가 우리 조선에서 생겨났다 할지라도 교리를 운전할만한 인물이 나고 보면, 발전을 위하여 보충할 것은 보충할 수가 있고 장해될 일은 혁신할 수가 있는데, 겸하여 이 불교를 말하면 인심 풍토가 다른 외방의 종교로서 중국을 경유하여 조선에 온 후 근 이천년 역사를 가졌으니, 그동안 정치 변동과 인심 변천을 따라서 혹 배척도 받았을 것이며 혹 환영도 받았을 것이며 혹 폐단도 주었을 것이며 혹 도움도 주었을 것이니, 그 많은 파란을 지날 때에 불교라는 이름과 주체되는 교리는 옛날 부처님이 설하신 그대로 남아있을지라도, 소소한 교리와 제도만큼은 변동이 있을 것은 누구나 물론하고 잘 알 줄로 믿는 바이다.
1. 과거 조선 사회의 불법(佛法)에 대한 견해
불교는 조선에 인연이 깊은 교로써 환영도 많이 받았을 것이며 배척도 많이 받았을 것이나, 환영은 여러 백 년 전에 받았고 배척받은 지는 오래지 아니하여, 유교의 세력에 밀려서 세상을 등지고 산중에 들어가 유야 무야 중에 초인간적 생활을 하고 있었으므로 조선 사회에서는 그 법을 아는 사람이 적은 지라, 이에 따라 혹 안다는 사람은 말하되, 산수와 경치가 좋은 곳에는 사원이 있다고 하며, 그 사원에는 승려와 불상이 있다고 하며, 승려와 불상이 있고 보면 세상에 사는 사람은 복을 빌고 죄를 사하기 위하여 불공을 다닌다 하며, 그 승려는 불상의 제자가 되어가지고 처자 없이 독신생활을 한다 하며, 삭발을 하고 머리에는 굴갓을 쓰고 몸에는 검박한 옷을 입고 목에다는 염주를 걸고 손에다는 단주를 들고, 입으로는 염불이나 송경을 하며 등에는 바랑을 지고 밥을 빌며 동냥을 하며, 혹 세속 사람을 대하면 아무리 천한 사람일지라도 문안을 올린다 하며, 어육(魚肉) 주초(酒草)를 먹지 아니한다 하며, 모든 생명을 죽이지 아니한다 하나, 우리 세상 사람들은 양반이든지 부귀를 한다든지 팔자가 좋은 사람이든지하면 승려가 아니 되는 것이요, 혹 부모 없는 불쌍한 아이나 사주를 보아서 단명(短命)한다는 아이나 죄를 짓고 망명하는 사람이나 혹 팔자가 사나운 사람이나 의식 없이 걸식하는 사람이나 이러한 류가 다 승려가 되는 것이라 하며, 혹 승려 중에도 공부를 잘하여 도승(道僧)이 되고 보면 사람이 사는 집터나 백골을 장사하는 묘지나 호풍환우와 이산 도수하는 것을 마음대로 한다고도 하지마는, 그런 사람은 천에 일이요 만에 일인이 되는 것이니, 불법이라 하는 것은 허무한 도요 세상 사람은 못하는 것이라 하며, 우리는 돈이 있다면 주륙(酒肉)과 음악 기구를 준비하여 가지고 경치 찾아서 한 번씩 놀다 오는 것은 좋다고 하며, 누가 절에 다닌다든지 승려가 된다든지 하면 그 집은 망할 것이라 하며, 시체를 화장하니 자손이 도움을 얻지 못할 것이라 하며, 불법을 믿는 승려라면 사람은 사람이되 별 동물과 같지 아는 것이 조선 사회의 습관이 되었나니, 이와 같은 조선에 어떠한 능력으로써 불교를 발전시키며 불법에 대한 호감을 갖게 하리오.
2. 조선 승려의 실생활
이 말을 하고자 하는 이 사람도 과거 조선 사회의 한 사람으로, 불교에 대한 상식이 없다가 어떠한 생각 어떠한 인연으로 불교를 신앙하는 동시에 불교에 대한 약간의 상식이 있게 됨으로써 조선 승려의 실생활을 말하게 되었다.
그 생활을 들어 말하자면 풍진 세상을 벗어나서 산수 좋고 경치 좋은 곳에 청결한 사원을 건축하고 존엄하신 불상을 모시고 사방에 인연 없는 단순한 몸으로 몇 사람의 동지와 송풍나월에 마음을 의지하여 새 소리 물소리 자연의 풍악을 사면으로 둘러놓고, 세속 사람이 가져다주는 의식으로 근심 걱정 하나도 없이 등 따뜻하게 옷 입고 배부르게 밥 먹고, 몸에는 수수한 수도복 흑색 장삼을 입고, 어깨에는 비단 홍가사(紅袈裟)에 일월광(日月光)을 흉배(胸背)로 놓아 둘러메고, 한손에는 파초선 또 한손에는 단주, 이와 같은 위의(威儀)로 목탁을 울리는 가운데 염불이나 혹은 송경이나 혹은 좌선이나 하다가, 수목(樹木)사이에 있는 화려하고 웅장한 대 건물 중에서 몸을 내어놓고 산책하는 것을 보면, 조선 사람의 생활로서는 그 위에 더 좋은 생활은 없을 줄로 알았다.
그러면 승려가 되어서 다 이와 같이 생활을 하였는가? 조선 일반 승려가 다 그러한 것은 아니나, 일반적으로 본다 하더라도 반수 이상은 이와 같은 생활을 하는 줄로 안다. 그러나 내면으로 들어가서 심리 생활하는 것은 잘 알 수 없지마는, 불교의 교리와 제도된 것이 세간 생활을 본위로 한 것이 아니라 출세간 생활을 본위로 하였나니, 출세간 생활이라 하는 것은 대개는 세간 생활과 같이 하는 것이 없으므로, 심리 생활도 또한 세속 사람과는 차이가 있을 줄로 안다.
세속 풍진 중에 사는 사람은 혹 만석(萬石)을 받는 사람이나 혹 재상(宰相)이나 이러한 부귀(富貴)를 하는 사람이라도 그와 같이 한가한 생활 청결한 생활 취미 있는 생활은 하지 못할 것이요, 아무리 못난 승려 빈천한 사람이라도 속가(俗家)에 일 이 백 석 받는 사람보다는 취미 있는 생활 한가한 생활을 한다할 것이다.
우리 세간 농촌 궁민(窮民)의 생활하는 것을 보면, 두 줄 사이에 목을 넣고 팥죽 같은 땀을 흘려가며, 여름이 되고 보면 보리밥 삶아 먹은 더운 방에서 모기 빈대 뜯겨가며 잠을 자고, 밥은 꽁보리밥에 된장 간장이 반찬이요, 그도 못 먹으면 혹은 보리죽을 먹으며, 자리는 갈대나 밀대 방석을 사용하며, 몸에는 거친 무명베로 검박한 옷을 해 입고, 삼복 시절 더운 날에 쉴 틈 없이 노력하여 겨우겨우 농사라고 지어놓으면, 빚 받을 사람은 성화같이 달려와서 다가져 가고 보면 먹을 것이 없게 되어, 필경에는 부모처자 식구들까지라도 서로 싸우고 원망하며 이러한 세상 어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나니, 이에 비하면 산중 승려 수도 생활은 천상(天上) 선관(仙官)의 생활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세속 사람으로 이만한 생활을 알고 보면 그 어찌 승려 되기를 원치 아니 하리오.
3. 세존의 지혜(智慧)와 능력(能力)
우리는 모든 중생이 생사 있는 줄만 알고 다생이 없는 줄로 아는데 부처님께서는 생사 없는 이치와 다생 겁래에 한없는 생이 있는 줄을 더 아셨으며, 우리는 우리 일신의 본래 이치도 모르는데 부처님께서는 천지 만물의 본래 이치까지 더 아셨으며, 우리는 선도가 무엇인지 악도가 무엇인지 구별이 분명치 못하여 우리가 우리 일신을 악도에 떨어지게 하는데 부처님께서는 자신을 제도하신 후에 시방 세계 일체 중생을 악도에서 선도로 제도하는 능력이 계시며, 우리는 우리가 지어서 받는 고락도 모르는데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지여서 받는 고락과 우연히 받는 고락까지 아셨으며, 우리는 복락을 수용하다가도 못하게 되면 할 수 없는데 부처님께서는 못하게 되는 경우에는 복락을 또 오게 하는 능력이 계시며, 우리는 지혜가 어두웠든지 되는대로 사는데 부처님께서는 지혜가 어두워지면 밝게 하는 능력이 계시고 밝으시면 계속하여 어두워지지 않게 하는 능력이 계시며, 우리는 탐심이나 진심이나 치심에 끌려서 잘못하는 일이 많이 있는데 부처님께서는 탐심 진심 치심에 끌리는 바가 없으시며, 우리는 천지 만물 허공 법계 있는 것에 끌려서 천지 만물 허공 법계 없는 것을 모르는데 부처님께서는 있는 것을 당할 때에 없는 것까지 아시고 없는 것을 당할 때에 있는 것까지 아시며, 우리는 천도․ 인도․지옥․아귀․축생․ 수라 이 육도(六途)와 태란습화 사생(四生)을 알지도 못하는데 부처님께서는 이 육도 사생의 변화하는 이치까지 아시며, 우리는 다른 물건을 해(害)하여 다가 우리를 좋게 하려고 하는데 부처님께서는 사물을 당할 때에 자리이타로 하시다가 못하시게 되면 이해와 생사를 불고하시고 타물을 이롭게 하는 것으로써 당신의 복락을 삼으시며, 우리는 몇 십만 석을 받는다 하더라도 사방 주위 몇 천리 안이 자기의 소유가 될 것이요 집으로 말하더라도 몇 백간 몇 천간 밖에 자기의 소유가 아닐 것이며 권속으로만 말 하더라도 몇 십 명 몇 백 명밖에는 자기의 권속이 아닐 것인데 부처님께서는 시방 세계가 다 부처님의 소유요 시방 세계의 모든 건물이 다 부처님의 건물이요 시방 세계의 일체 중생이 다 부처님의 권속이라 하셨으니, 이런 말을 보고 들을 때에는 이해 없는 사람은 부황한 말이라 할 것이나 아는 사람에 있어서는 자자 글귀가 다 금언 옥석으로 알 것이다.
이 부처님의 지혜와 능력을 어리석은 중생의 입으로나 붓으로 어찌 다 성언하며 기록하리요마는, 대략을 들어 중생 제도하는 그 교리를 말하자면 높기로는 수미산 같고, 깊기로는 항하 수 같고 교리 수효로는 항하사 모래수와 같고, 넓은 크기로 말하자면 천지 만물 허공 법계를 다 포함 하였나니, 우리 불법 신자는 이와 같은 부처님의 지혜와 능력을 얻어가지고 중생 제도하는 데에 노력하기 바라는 바이다.
4. 외방(外防)의 불교를 조선의 불교로
인도의 불교가 중국을 경유하여 조선에 왔는지라, 조선 사람으로는 그 경전을 볼 때에 사람 이름이나 땅 이름이나 물건 이름이나 일에 대한 말이나 이치에 대한 말이나 인도 숙어와 명사가 많아서 혹은 중국 숙어와 명사도 있으며 또는 조선 사람이 일반적으로 배우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려운 한문으로써 경전이 대개 되어 있는 고로 그 경전을 조선 사회에 내어놓고 유무식 남녀노소를 망라하야 가르쳐주기가 어려울 것이니, 우리는 인도 불교에도 끌리지 말고 중국 불교에도 끌리지 말고 조선 재래 불교에도 끌리지 말고 오직 부처님의 무상 대도의 요지와 시방 세계 일체 중생을 자비로 제도하시던 강령을 들어 조선 명사와 숙어와 조선 문자에 혹 한문을 가하여 교리와 제도를 정선하여 이로써 초등 교과서를 정하고, 부처님의 무상 대도의 이치와 자비 사업의 대의를 깨치게 한 후에 과거 경전은 참고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좋을 것이니, 불법의 대의를 쉽게 알고자 하는 사람은 이 불법의 혁신 내용을 잘 알아 가지고 부처님의 지혜와 능력을 속도로 얻어야 할 것이며, 이상에 말한 과거 경전을 자기가 임의로 부처 보도록 까지 배우기로 하면서 시일이 근 십년이 걸릴 것이며 또 부처님의 진리를 배워 알기로 하면 한없이 시일이 걸릴 것이니, 우리 조선 빈한한 사회에서 분망한 생활을 하는 사람은 여가를 따라서 속도로 하는 방법을 취하여야 할 것이니, 이에 환희 심을 발하여 이상에 말한 교과서로써 세간 출세간을 물론하고 잘 배우기를 바라는 바이다.
5. 소수인(小數人)의 불교를 대중의 불교로
재래 조선 불교는 배척을 받을 때에 소수인의 종교로서 세간을 버리고 출세간 생활하는 승려를 본위 하여 교리와 제도가 조직되었으므로, 세간 생활하는 속인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서로 맞지 아니하고 반대같이 되었으며, 또는 세간 생활하는 속인의 신자가 있다 할지라도 주체가 되지 못하고 객관적이므로 그 중에서 특수한 사업과 특별한 공부를 한 사람이 있다면 이거니와, 그렇지 아니하고 보통 신자에 있어서는 출세간 생활하는 승려와 같이 부처님의 직통 제자로나 불가의 조상으로 들어가기가 어렵게 되었으니, 어찌 그 교리 그 제도로써 대중화가 되리오.
또는 이상에 말한 출세간을 본위 한 교리와 제도가 세간 생활에 맞지 않는 내력을 대강 들어 말하자면, 교(敎)라 하는 것은 사람을 가르치는 것인데, 인간이 없는 곳에 교당을 두었으니 세간 생활에 분망한 그 사람들이 어느 여가에 인간을 벗어나서 그 가르침을 받을 것이며, 의식 생활에 있어서도 사농공상의 원(元)직업을 놓아버리고 불공이나 시주나 동령으로써 생활하였으니 어찌 대중이 다할 생산이며, 또는 결혼 생활에 들어가서도 출세간 공부하는 사람에 있어서는 절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생활이 또한 넓다하지 못할 것이며, 교리로 말하여도 세간 생활하는 교리가 구체적으로 되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 법이 넓다 할 것인가?
그러면 어찌하여야 할 것인가 하면, 세간 공부하는 사람이나 출세간 공부하는 사람에 대하여 주객의 차별이 없이 공부와 사업의 등급만 따를 것이며, 계통(繼統)하는 데에도 차별이 없이 직통(直統)으로 할 것이며, 수도하는 처소도 신자를 따라서 어느 곳이든지 건설하여야 할 것이며, 의식 생활에 들어가서도 각자의 처지를 따라서 하게 할 것이며, 결혼 생활에 들어가서도 자의(自意)에 맡길 것이며, 재가출가를 하는 것도 특별한 서원은 말할 것이 없으나 정식에 들어가서 유년기에는 문학을 배우게 하고 장년기에 있어서는 도학을 배우며 제도 사업에 노력하게 하고 60이 넘어서는 경치 좋은 산중 사원에 들어가서 세간의 애착 탐착을 다 여의고 생사 대사를 연마하며 불한불열한 춘추 6개월이 되고 보면 세간 교당을 순회하여 모든 신자로 하여금 선도(善道)에 나아가도록 하며, 동하(冬夏) 6개월이 되고 보면 출입을 중지하고 산중 생활에 들어가서 물소리 새소리 자연의 풍악을 둘러놓고, ‘이 뭐꼬’ 도리와 ‘나무아미타불’로 벗을 삼아 여년을 마치고 보면 일생 생활에 결함된 점이 없을 것이며, 또는 세간 출세간을 물론하고 대중화하기로 하니, 교리에 있어서도 견성 양성만 주체로 할 것이 아니라 솔성을 가하여 삼대 강령을 주체로 하여야 할 것이므로 출세간 공부하는 공부의 요도를 만들어야 할 것이며, 세간 생활하는 인생의 요도를 만들어야 할 것이며, 세간 출세간을 물론하고 공부에 대한 훈련의 과목을 만들어야 할 것이며, 기관에 있어서도 시대와 인심을 따라서 이 교리 이 제도를 운전하는데 결함이 없도록 조직하여야 할 것이니, 우리 일반 신자는 이에 노력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6. 분열(分裂)된 교화 과목(敎化科目)을 통일하기로
재래 불교에서 신자에게 가르치는 과목은 혹은 경전을 가르치며 혹은 화두(話頭)들고 좌선하는 법을 가르치며 혹은 염불하는 법을 가르치며 혹은 주문을 가르치며 혹은 불공하는 법을 가르치는데, 그 가르치는 본의가 모든 경전을 가르쳐서는 불교에 대한 교리나 제도나 역사를 알리기 위함이요 화두를 들어서 좌선시키는 것은 경전으로 가르치기도 어렵고 말로 가르치기도 어려운 현묘한 진리를 깨치게 함이요, 염불과 주문을 읽게 하는 것은 번거한 세상에 사는 사람이 애착 탐착이 많아서 정도(正道)에 들기가 어려우므로 처음 불문에 오고 보면 번거한 정신을 통일시키기 위하여 가르치는 법이요, 불공법은 승려의 생활에 도움을 얻기 위하여 가르치나니, 신자에 있어서는 이 과목을 한 사람이 다 배워야 할 것인데, 불법에 대한 이해가 적은 사람은 이 과목 내에 혹은 한 과목이나 혹은 두 과목을 가지고 주장하며 하는 말이, ‘내가 옳다!’, ‘네가 그르다!’ 시비가 분분하며, 각자가 서로 당파를 모집하여 초입자의 신성을 방해하며 신자의 통일을 방해하며 일반 불교의 위신을 타락케 하여 발전에 대한 장해가 있게 되므로, 이 과목을 통일하여 선종(禪宗)의 천만(千萬) 화두(話頭)와 교종(敎宗)의 모든 경전을 단련하여 번거한 화두와 번거한 경전은 다 놓아버리고, 그 중에 제일 강령(綱領)과 요지(要旨)가 많은 화두와 경전으로 일과 이치에 연구력 얻는 과목을 정하고, 염불 좌선 주문을 단련하여 정신 통일하는 수양 과목을 정하고, 모든 계율과 과보 받는 내역과 네 가지 중대한 은혜를 단련하여 세간 생활에 적절한 작업취사의 과목을 정하고 모든 신자로 하여금 이 삼대 과목을 병진하게 하되, 연구 과목을 단련하여서는 부처님과 같이 이 무애(理無碍) 사 무애(事無碍)하는 연구력을 얻게 하며, 수양 과목을 단련하여서는 부처님과 같이 사물에 끌리지 않는 정력(定力)을 얻게 하며, 취사 과목을 단련하여서는 부처님과 같이 불의와 정의를 분석하여 실행하는데 취사력을 얻게 하여, 이 삼대력으로써 일상생활에 불공하는 자료를 삼아 모든 서원을 달성하는데 보감을 삼게 되면 교리가 자연 통일이 될 것이요 신자도 또한 통일이 될 줄로 믿는다.
7. 등상 불 숭배를 불성 일원상(佛性一圓相)으로
등상 불을 숭배하는 것이 교리 발전에 혹 필요는 있으나, 현재로부터 미래사를 생각하면 필요는 고사하고 발전에 장해(障害)가 있을 것이다. 그 증거를 들어 말하자면 농부가 농사를 지어놓고 가을이 되면 뭇 새들을 방지하기 위하여 인형 허수아비를 만들어 모든 새 오는 곳에 세워두면 그 새들이 그 인형 허수아비를 보고 놀라며 며칠 동안은 오지 않다가 저희들도 또한 여러 방면으로 시험을 보았는지 작성을 얻었는지 필경에는 달려들어 농작물을 작해(作害)하며 주워 먹다가 그 인형 허수아비 위에 올라앉아 쉬기도 하고 혹은 똥도 싸며 유희장 같이 사용하니, 이것을 본다면 그런 무식한 새 짐승도 인형 허수아비를 알거든, 하물며 최령(最靈)한 사람으로 저 동작이 없는 인형 등상 불을 근 이천년 모셔 보았으니 어찌 각성이 없으리오.
만일 각성이 생겨난다면 무상 대도(無上大道)의 교리는 알지 못하고 다만 그 한 방편만 허무하다 하여 이해 없는 여러 사람에게 악선전하는 사람이 많이 있게 된다면 어찌 발전에 대한 장해가 없을 것이며, 또는 존엄하신 불상을 방방곡곡에서 여러 사람이 직업자의 간판같이 사용하여 이로써 각자의 생활을 도모하니, 수도자의 입장에서 저 직업 자와 같이 불상을 모시고 불공을 받고 보면, 이해 없는 방관자로써 직업 자와 같이 취급할 것이며 또는 음식 불공이 많이 들어올 것이니, 이렇게 된다면 수도인 사는 처소에 위신만 없어질 것이 아니라 수도하는 사람까지 오지 아니할 것이며, 이에 따라서 불법에 대한 공부는 차차 없어지고 다만 영업집이 되고 말 것이다.
현재에도 일반 사회가 염불이나 하고 불공이나 하는 그 사람들을 불교 신자로 인증하는데, 그 사람들에 있어서는 부처님의 정법이 무엇인지 일체 중생 제도가 무엇인지 선도 악도가 무엇인지 모르는 그 사람들이 불교 신자로 인증을 받을 때에는, 그 교리와 제도를 운전하는 사람들까지 같은 층으로 취급할지도 모를 것이라 그 어찌 발전에 장해가 없으며, 또는 신자가 등상 불을 모시고 숭배하기로 하면 일반 신자가 다 모셔야 할 것인데, 그 등상불은 조성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모신 자에 있어서는 직통 제자와 같이 친근한 생각이 날 것이며 또한 의지와 위안이 될 것이나, 모시지 못하게 된 사람에 대해서는 그와 반대로 소원(疏遠)한 제자와 같은 생각이 나며 의지와 위안이 되지 못하리니 또한 유감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성 일원상을 모시고 숭배하기로 하나니, 그 불성 일원상으로 말하면, 부처님 말씀에 천지 만물 허공 법계가 다 부처님의 성품이라 하셨으니, 곧 한마디로 그 명사(名辭)를 들어 말하자면 불성이요, 불성의 형상을 그려 말하자면 곧 일원상이요, 그 일원상의 제작된 내역을 들어 말하자면 천지 만물 허공 법계를 다 포함하여 조성이 되었으므로, 그 일원상이 우리 중생에게 천만가지로 은혜 주신다는 것을 사실이 드러나도록 가르쳐줄 수가 있나니, 그 증거를 들어 말하자면 천지 만물 허공 법계가 다 부처인지라, 자기의 구하는 바와 짓는 바를 따라서 천지에게 당한 죄복은 천지에게 불공하고, 부모에게 당한 죄복은 부모에게 불공하고, 동포에게 당한 죄복은 동포에게 불공하고, 법률에게 당한 죄복은 법률에게 불공하는 것이, 사실로 죄를 사하고 복을 받는 것이 들어날 것이니, 우리는 다만 수도에 들어가서 진리적으로 불성 일원상을 모시고 숭배하고 보면 이해 없는 방관자에 있어서도 그 구별이 차차 날 것이며, 또는 부처님의 정법이 무엇인지 일체 중생 제도가 무엇인지 선도 악도가 무엇인지 모르고, 다만 맹인(盲人)을 찾아 문복(問卜)이나 하고 무녀(巫女)를 데려다가 굿이나 하는 사람에 지내지 못하는 그 사람들을 불법 공부 인으로 취급하는 습관도 차차 없어질 것이며, 또는 일반 신자가 다 불상을 모시기로 하여도 구속이 없이 모시게 될 것이며, 또는 현 시대는 전 세계 인류가 차차 장년기에 들어 지혜가 발달되므로 모든 사람이 순경 역경을 당할 때에는 혹 죄복에 대한 이해가 있을 것이며, 죄복에 대한 이해가 있고 보면 그 죄복의 근본 처를 찾을 것이며, 찾기로 하면 그 의지가 들어날 것이요, 그 의지가 드러나고 보면 잘 믿을 것이니, 사실로 번역하기 좋은 신앙 처를 발견하여 숭배하면 지우(智愚)를 물론하고 안심 입명 처를 얻을 것이며, 또는 재래 불교와 같이 자기의 불공을 다른 사람에게 의뢰할 것이 아니라 자기 불공은 자기가 하여야 할 것이며, 그 불공하는 방식도 신자에 있어서는 다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러면 그 불공하는 방식은 무엇인가하면, 재래 불교를 혁신한 교리와 제도라 할 것이며, 또는 불공하는 방식을 아는 것과 안 후에는 불공을 하여 성공하는 것이 한정(限定)이 있나니, 그 한정의 예를 대강 들어 말하면, 수천 세상을 하여야 성공할 일도 있고 몇 백 세상을 하여야 성공할 일도 있고 수십 생을 하여야 성공할 일도 있고 몇 생을 하여야 성공할 일도 있고 몇 십 년을 하여야 성공할 일도 있고 몇 해를 하여야 성공할 일도 있고 몇 달 며칠을 하여야 성공할 일도 있는 것이 그 일의 형세를 따라서 장단(長短)이 있는 것이요, 또는 인연 작복을 잘 하고 못하는 것과 부귀빈천 되는 것이 다 다생 겁래를 왕래하면서 불공 잘하고 못하는 데에 있나니, 그러므로 복이 많고 지혜가 많은 사람은 불성 일원상의 이치를 오득(悟得)하여 천지 만물 허공 법계를 다 부처로 숭배하며, 성공의 기한 구별도 분명하여 죄복의 본원 처를 찾아서 불공을 하므로 무슨 서원이든지 백발백중할 것이며, 또한 죄복의 본원 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모든 서원을 등상 불 한 분에게만 하며, 성공의 기한도 구별 없이 하는 것이, 비유하여 말하면 부모에게 할 불공을 천지에게 하고, 동포에게 할 불공도 천지에게 하고, 법률에게 할 불공도 천지에게 하고, 일 년을 하여야 성공할 일을 한두 달 하다가 말고 한 달이나 하여야 성공할 일을 하루나 이틀 하다가 마는 것과 같나니, 그런 사람에 있어서는 불공이 허망할 것이며 성공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등상 불 한 분만 부처님으로 모실 것이 아니라, 천지만물 허공법계를 다 부처님으로 모시기 위하여 불성 일원상을 숭배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