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다산의 21세기 마을공동체

나는 새 2021. 8. 21. 14:43

다산포럼 제1073호

 

다산의 여전제와 21세기 마을 공동체

                                                                          김 준 혁(한신대학교 교수, 한국사 전공)

다산은 역사와 중국 주례(周禮)’의 연구를 통해 농업은 구직(九職)의 하나이므로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농사에 종사하도록 할 수 없다는 것과 농민만이 토지를 분배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의 생활에서는 장사하는 사람과 대장장이 등 9가지의 직업이 존재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농업이라는 것과 모든 사람들이 모두 농사를 지을 수 없어 각자의 직업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하였다.

 

다산은 실제 농사짓는 농민에게 토지를 주고 농사 짓지 않는 부농민(不農民)에게는 각기 적합한 직업을 주어서 한 사람의 실업자도 없게 하여야 하며, 혹시 국가가 상공업을 하는 이들을 모두 농사짓게 하면 9개의 직업 중 8개 직업이 모두 망하게 되어 백성들의 경제생활을 도탄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 하였다. 더불어 농업 자체도 퇴화 될 것이라 하였다.

 

다산은 농업을 제대로 활성화하기 위해 특별한 토지운영 제도를 생각했다. 다산은 고대사회의 가장 이상적인 정전(井田)이 당시대에 전혀 맞지 않는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중국은 땅이 넓고 평지에 있어 바둑판식 모양의 정전이 가능하나 조선은 산이 많고 개간한 논이 많아 현실적으로 정전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현실적 상황을 정확히 인지한 상태에서 이를 근거로 하는 현실적인 토지 운영을 제시하였다. 그것이 바로 여전제(閭田制)’.

 

여전제는 21세기 마을 공동체의 대안

 

여전은 중국의 정전과 달리 산의 계곡을 이용한 자연 형세 그대로의 경계를 확정하여 그 경계 안의 내부를 ()’라고 하고 그 안의 땅의 여전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지역을 고을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 고을은 에서 나온 것으로 혹은 골짜기는 우리 산하에서 산줄기의 아래에 형성된 마을을 이야기한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달리 산의 능선에서부터 내려오는 물줄기를 따라 작은 마을이 형성되는데 이것이 바로 다산이 말한 인 것이다.

 

다산의 여전제는 파격 그 자체이다. 다산은 여전제를 위한 기본 전제로 각각의 는 약 30가구로 정하였는데, 당시 일반적으로 산과 계곡을 끼면서 너른 들판이 있는 지대에서 농사짓는 마을의 가구수가 대략 30가구 정도인 까닭에 이와 같이 규정을 한 것이다.

 

다산은 여()에는 여장(閭長)’이 있고 1려의 토지는 1려의 백성으로 하여금 공동 경작하게 하여 남과 나의 구분이 없고 오직 여장의 지휘를 따르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매일 한마을에 사는 농민들은 반드시 일을 하러 나와야 하고 여장은 각각 농민들이 일한 분량을 일력부(日力簿)’에 자세히 기록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수확기에 이르러 수확물의 전부를 마을의 공청인 도당(都堂)에 반입하여 먼저 일정량의 국가 세금을 제하고, 다음에 일정량의 여장의 봉급을 제하고 나머지 전부는 일력부에 의하여 마을 안의 농토에서 일한 농민들에게 분배하는 것으로 하였다. 공동 노동을 하더라도 무조건 똑같이 나누어 가지는 것이 아니라 기록에 의한 노동의 양에 따라 더 많이 일한 사람은 더 가져가고 덜 일한 사람은 덜 가져가게 하는 것이니 매우 공평한 분배법이라 할 수 있다. 90년대 이전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이와 같은 공동 소유, 공동 노동을 하였지만 망한 이유 중의 하나가 농장에서 더욱 많이 일한 사람에 대한 대우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자들이 많아서였던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다산은 이미 200여년 전에 이러한 공동 노동의 모순을 인지하고 거기에 일력부를 만들어 여장으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고 이를 근거로 노동의 댓가를 지불하자고 하였으니 그 혜안이란 놀라운 것이다. 결국 다산은 당시 사회에서 여전제만이 백성들의 삶을 낫게 하는 길이라고 판단하였다. 그의 여전제는 비록 실현되지 못하였지만 미래의 대안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었고 현재 우리 곳곳의 공동체 마을에서 실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미래를 예견한 다산의 혜안, 정말 무섭도록 놀라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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