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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떤 사람이여야 하나

지성유인식 2021. 3. 23. 15:40
김형석(101세) 연세대 철학 명예교수는 윤기중 연대 명예교수인 부친과 함께 온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정치를 해도 될까요에 대한 답으로 "애국심이 있고 그릇이 크고 국민만을 위해 뭔가를 남기겠다는 사람은 누구라도 정치를 해도 괜찮아요." 라고 답했단다.

다음은 중앙일보 김민중기자가 전하는 내용을 전제한다.

“교수님, 제가 정치를 해도 될까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19일 101세의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에게 물었다. 5일 검찰총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 2주간 자택에서 칩거를 깨고 첫 나들이 대상이 대한민국의 원로 철학자 김형석 교수란 점, 그의 첫 질문이 ‘정치(政治)’란 점에서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윤 전 총장은 서울대 법대, 대학원을 졸업한 법학도이자 검사 생활을 27년 했다. 그중 대부분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연구관과 특수부 검사였다. 그에게 정치는 너무 무거운 책무이자 두려운 도전일 수 있다.

하지만 40년 연상인 노(老) 철학자의 답은 뜻밖에 간명했고 윤 전 총장에게 큰 위안을 줬다.

“애국심이 있는 사람, 그릇이 큰 사람, 국민만을 위해 뭔가를 남기겠다는 사람은 누구나 정치를 해도 괜찮아요. 당신은 애국심이 투철하고 헌법에 충실하려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이 있는 것 같아요. 적극적으로 정치하라고 권하지도 않겠지만,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아니에요.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김형석 연세대 명예 교수)

김형석 교수 “애국심 있고 그릇 크면 하라”
22일 학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은 지난 19일 오후 김 교수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찾아 2시간가량 동안 이 같은 내용의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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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세 철학자 찾아간 윤석열의 첫 질문 "정치해도 될까요"
입력2021.03.23. 오전 5:00 수정2021.03.23. 오전 6:36

김민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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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교수가 전한 윤석열과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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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뉴스1
“교수님, 제가 정치를 해도 될까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19일 101세의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에게 물었다. 5일 검찰총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 2주간 자택에서 칩거를 깨고 첫 나들이 대상이 대한민국의 원로 철학자 김형석 교수란 점, 그의 첫 질문이 ‘정치(政治)’란 점에서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윤 전 총장은 서울대 법대, 대학원을 졸업한 법학도이자 검사 생활을 27년 했다. 그중 대부분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연구관과 특수부 검사였다. 그에게 정치는 너무 무거운 책무이자 두려운 도전일 수 있다.

하지만 40년 연상인 노(老) 철학자의 답은 뜻밖에 간명했고 윤 전 총장에게 큰 위안을 줬다.

“애국심이 있는 사람, 그릇이 큰 사람, 국민만을 위해 뭔가를 남기겠다는 사람은 누구나 정치를 해도 괜찮아요. 당신은 애국심이 투철하고 헌법에 충실하려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이 있는 것 같아요. 적극적으로 정치하라고 권하지도 않겠지만,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아니에요.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김형석 연세대 명예 교수)

김형석 교수 “애국심 있고 그릇 크면 하라”
22일 학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은 지난 19일 오후 김 교수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찾아 2시간가량 동안 이 같은 내용의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의 만남은 윤 전 총장의 아버지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가 먼저 “아들과 함께 인사를 한 번 가겠다”고 청해 이뤄졌다고 한다. 윤 전 총장은 학창 시절부터 김형석 교수와 고(故) 강원용 목사(2006년 작고·크리스찬아카데미 이사장)를 존경해왔고 두 사람의 책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윤 전 총장은 평소 주변에 “두 분의 삶은 한국 현대사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김 교수와 강 목사 모두 일제 치하 이북 출신에 독실한 기독교인이란 공통점이 있다. 윤 전 총장은 2016년 7월 김 교수가 출간한 『백년을 살아보니』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는 중앙일보에 “윤 전 총장이 여러 소용돌이에 휩쓸리다 퇴임한 뒤 복잡한 마음을 어디 털어놓을 데가 없나 하던 차에 나를 찾은 것 같다”며 “처음엔 만남을 거절했다가, 나와 윤 전 총장 부친(윤 교수)의 친분도 있고 해서 한 번 사적으로 보게 됐다”고 밝혔다.

윤 전 총장은 김 교수를 만나 앞으로 정치를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김 교수는 “윤 전 총장은 정치에 대해 뭐라고 태도(입장)를 정하도록 끌려 올라와 있는 사람 같았다”며 “고독감이 많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교수의 설명을 토대로 윤 전 총장과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윤 전 총장: 정부의 무리한 검찰 개혁을 보면서 걱정이 많았어요.
김형석 교수 : 저는 정부가 잘못했다고 봐요. 국가와 국민을 위한 개혁이 아니라 정권을 위한 개혁이었어요. 그건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에요.

윤: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김: 맞아요. 지금 청와대나 여당에서 꺼내는 이야기는 국민 상식과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내 편은 정의고, 네 편은 정의가 아니다. 이런 이분법이 만연해 있죠. 그걸 바로 잡지 않으면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없어요.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예요. 많은 사람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난하지만, 그때는 어떤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해결할 것이라고 짐작이 됐는데…. 현 정부 들어서는 짐작을 못 하겠어요.

김 교수는 이 자리에서 윤 전 총장의 애국심과 큰 그릇을 짚으며 “정치를 해도 잘할 것 같다”는 조언을 했다. 윤 전 총장은 즉답하진 않았지만,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윤: 그런데 저는 부족한 게 많습니다.
김: 누구나 보완해야 할 점은 있어요. 우리나라 정치는 법조계와 운동권 출신이 이끌고 있는데, 이 부류의 사람들은 국제 감각이 없어도 너무 없어요.

윤: 정치 관련 경험이나 지지세력 등도 부족한데….
김: 그건 괜찮아요. 애국심 있고 그릇만 크면 돼요. 그릇이 크다는 건 뭐냐. 많은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요. 윤 전 총장이 유명해지거나 높은 자리에 오를 욕심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것만 아니면 지금 정치하는 사람들보다 안 되겠다, 걱정스럽다, 이런 건 없어요.

윤: 야권에 대통령 할 인재가 없다는 말도 나옵니다.
김: 여권엔 인재가 더 없어요. 문재인 대통령 뒤를 따라갈 사람만 보여요. 인재 없는 건 여나 야나 마찬가지라는 말이에요. 인재는 앞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진짜 문제는 인재가 없는 것보다 함께 일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오늘 한 이야기들은 윤 전 총장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하려는 많은 사람이 모두 염두에 뒀으면 좋겠어요.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