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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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검색하니
'한국전통문화대백과사전'의 출처로
아래와 같이 기술되어 있다.
이를 잘 분석,
해석한면 우리 나라의 국호의 핵심인
"韓"에 대한 답이 보일 것 같아
우선 전문을 전재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의 현상은 지평선으로 한정되어 아득히 높고 멀리 궁륭상(穹窿狀)을 이루는 창창(蒼蒼)한 공간이며, 그 공간에는 공기의 분자와 대기 속의 먼지가 떠다니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예로부터 인간들이 생각하는 하늘의 관념은 그들의 자연 환경과 역사 및 생활 양식에 따라 각기 다르게 형성되고 또 각 시대에 따라 그 형태와 의미가 달라지면서 내용도 다양하게 된다.
우리 민족의 하늘에 대한 관념도 역사의 변천에 따라 변해 왔음을 문헌을 통해 알게 된다.
종교학적 견지에서 보면, 우리 나라의 구석기시대는 ‘’신(神)의 시대였고, 신석기시대는 ‘’신(神)의 시대였으며 도토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 및 철기시대 초기까지는 ‘’신(神)의 시대였다.
삼국시대에는 이들 ··의 삼신(三神)을 동체이명(同體異名)인 삼위일체의 신이라 하였고, 통일신라 말엽 및 고려조에 이르러서는 삼국시대의 ·· 삼신의 사상을 한데 묶어 다만 ‘한님’이라 하였다.
그 뒤 한이 변하여 ‘한울’·‘한얼’로도 변하였고, ‘한’의 ‘ㄴ’이 아래로 내려앉아 ‘하날’·‘하눌’ 또는 ‘하늘’로 부르기도 하였는데, ‘·’음은 ‘ㅏ’·‘ㅓ’·‘ㅗ’·‘ㅜ’·‘ㅡ’의 음질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변전한 것이다.
‘님’은 존경을 표시하는 접미사로서 고려조 이래로 천지신명을 호칭할 때에는 ‘님’을 붙여 인격화하여 ‘한님’이라 하였다.
중국에서는 하늘을 지칭하는 말이 다양하다. 하늘을 형체상에서 말할 때에는 천(天)이라 하고, 주재상(主宰上)에서 말할 때에는 상제(上帝)라 하고, 공용상(功用上)에서 말할 때에는 귀신이라 부르고, 묘용상(妙用上)에서 말할 때에는 신(神)이라 하고, 성정상(性情上)에서 말할 때에는 건(乾)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을 일괄하여 부를 때에는 천도(天道) 혹은 천리(天理)라 한다.
영어에서도 천체를 말할 경우는 ‘heaven’, 형태를 말할 경우는 ‘sky’, 신의(神意) 또는 섭리(攝理)를 말할 경우에는 ‘providence’라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어언(語言)에 따라 하늘의 어의(語意)를 가려낼 수 있다. 하늘의 다른 말은 ‘한울’인데 한울은 ‘한’과 ‘울’의 합성어이다.
‘한’은 접두사로서 일부 명사 앞에 붙어서 크다는 뜻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한길〔大路〕·한밭〔大田〕과 같은 것이다. 또 ‘울’은 우리〔籬〕·울타리의 준말로 속이 비고 위가 터진 물건의 가장자리를 둘러싼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울이란 큰 울타리라는 뜻으로 밖〔外〕이 없는 사방, 끝〔末〕이 없는 창공, 일월이 교차하고 성신(星辰)이 운행하며 만물이 자생하고 만사가 발생하는 천지 사방과 상하 좌우를 뜻하는 공간상의 한울이다.
‘울’은 또 우리〔吾等〕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한울’은 큰 우리라는 말이니 천지만물과 나, 천지만물과 우리는 일체감을 가진다는 의미가 내재하여 있다.
전자는 현상으로 본 하늘이요, 후자는 덕성(德性)으로 본 하늘이다. ‘한울’의 ‘한’은 또 같다(同一)는 뜻이 있다. 예를 들면, 한 회사, 한 고향, 한 솥밥과 같은 경우이다. 그러므로 한울이란 같은 울타리 즉, 한 울타리라는 뜻을 가진다. 이것은 기능 면에서의 하늘의 공동체 의식을 지칭하고 있다.
또, 옛날에는 하늘을 환국(桓國)이라고 하였는데, 이 ‘환(桓)’은 환하다·밝다는 뜻으로 광명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한울이란 광명이 빛나는 온 누리라는 뜻을 간직하고 있다.
하늘을 달리 표현하여 ‘한얼’이라고도 한다. 이 한얼의 ‘얼’은 넋이요, 혼이요, 정신이다. 그러므로 한얼이란 관대한 마음, 박애 정신, 박시제중(博施濟衆)·대자대비(大慈大悲) 등의 뜻을 함유하는 말이다. 유교·불교·도교는 물론 기독교의 정신도 이 안에 모두 들어 있다고 하겠다.
또, ‘한얼’의 ‘한’은 바르다(正)는 뜻이 있으니, 예를 들면, 한나절(正午)·한복판(正中)·한마음(正心) 등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한얼이란 바른 넋, 정직한 정신을 의미하여 정의(正義)·의리(義理)·공심(公心) 등이 이 속에 모두 포함된다.
한얼의 ‘한’에는 또 씩씩하다·한창이다(壯盛)의 뜻이 있는데, 예를 들면, 한창때(壯年)·한여름·한잠 등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한얼’이란 씩씩한 기백, 왕성한 정력을 뜻하며 호연지기(浩然之氣), 기사도 정신 등이 다 이 안에 들어 있다고 하겠다.
또, 하늘의 ‘늘’은 언제나·항상·그러하다는 뜻이다. 이는 영원성·불변성·항구성을 표상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하나’는 우주의 근본은 유일무이하다는 종교상의 신을 가리킴인데, 우리 민족의 유일신은 빛과 열과 광명을 주는 태양을 말한다. ‘한얼’은 정신 면에서 본 심성적 하늘을, ‘하늘’은 시공을 초월한 불변적 하늘을, ‘하나’는 만물의 근저(根抵)는 하나라는 절대적 하늘을 말한 것이다.
하늘을 옛날에는 한자로 한(韓)·환(丸)·환(桓)으로 표기하였다. 이것들은 모두 동녘에 해가 뜨면 천지가 환하다는 뜻에서 비롯된 유사음(類似音)이다. 우리 민족을 한민족(韓民族)이라 한 것은 하늘의 축복을 받는 민족이라는 뜻이며, 평양의 옛 이름인 환도성(丸都城)도 하늘의 가호를 받는 수도라는 뜻이라 하겠다.
또, 하늘계의 주인은 태양이며 태양은 광명을 발하는 본체이다. 그러므로 옛날 사람들은 하늘을 ‘밝의 뉘’ 즉, 밝은 광명의 누리라 하였고, 그 신을 ‘밝의 뉘(고어로는 의 뉘)신’이라 하였다. 후에 ‘밝’이 변하여 ‘박’이 되었으며,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박(朴)이 이것이요, 또 ‘발’로도 변전하였으니 발해(渤海)가 이것이다.
발해국은 혹 발해(勃解)라고도 썼는데 해(解)는 해, 즉 태양을 가리키는 한자일 뿐이다. ‘밝’은 또 ‘벌’로도 변하였으니, 서라벌의 ‘벌’이 이것이며, 오늘의 서울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기인된 것이다.
그리고 신라 중엽부터 시작하여 고려 때 국가적 행사로 시행하던 팔관회(八關會)도 어언(語言)은 불교에서 빌려 사용하였지만 불교 정신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것으로, 우리 고유 신앙인 ‘밝의 뉘’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조선조의 부군당(府君堂)이나 무속(巫俗)의 ‘부군굿’도 이 밝의 뉘가 축소된 말들이다.
백두산·태백산·소백산·백운산 등의 백(白)이나, 비로봉·천왕봉·연천봉 등도 그 어원을 추적하면 모두 ‘밝의 뉘’와 연관이 있다. 밝의 뉘는 곧 한울·한얼·하늘을 뜻한다.
이처럼 우리 민족이 사용하는 하늘의 의미는 그 역사가 아득한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처음에는 자연 현상에서 그 관념이 형성되었고, 그 다음에는 유교·불교·도교·기독교 등 기타의 교리를 수용, 용해하여 그 관념의 체계를 확충하면서 고유의 이념을 유지하여 온 것이다.
한울이라고 하면 세계의 모든 종교를 포용하고도 남는다. 한울 이념에는 너와 나의 구별이 없으니 박애·평등·효제·충서(忠恕)는 크고 밝은 한 울타리라는 관념 속에 용해되어 버린다.
중국에서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을 강조하지만, 이 한울 이념에서는 천인합일 사상에서 일보 발전한 인내천(人乃天)을 강조한다. 하늘과 인간이 합하여 하나가 된다는 말에는 하늘과 인간은 벌써 하나가 아니고 둘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 한울의 인내천 사상은 하늘이 곧 인간이요, 인간이 곧 하늘이라는 뜻으로 인간과 하늘과의 관계에 시간적·공간적 틈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늘의 뜻이 바로 인간의 뜻이며, 인간의 뜻이 바로 하늘의 뜻이며, 하늘의 사랑이 바로 인간의 사랑이다.
맹자는 “마음을 다하여야 성(性)을 알고, 성을 알아야 하늘을 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한울 사상에서는 내 마음을 알면 곧 하늘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으로 지즉통(知則通)인 것이다. 그러므로 천도교에서는 한울을 우주의 본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울의 이념 즉 인내천을 관철하려면, 한얼 사상을 견지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바른 정신, 씩씩한 기백, 호연한 기질, 명철한 지성이 한얼의 기본 요소이다. 유가의 명명덕(明明德)·신민(新民)·지지선(止至善)·극기복례(克己復禮)·호연지기 등이 이 한얼에 속한다. 대종교에서는 이를 우주의 뜻이라 한다.
한얼 사상을 고수할 때에 지속성을 유지하게 되고(하늘), 유정유일(唯精唯一)할 수 있는 것이다(하나). 우리 한민족이 하나(一)로 크게, 밝게, 씩씩하게 하나의 울타리를 형성하여 크고, 밝고, 호연한 넋을 유지하여 왔지만, 앞으로도 양양하게 발전하려면 한울·한얼·하늘을 함축하고 있는 ‘한’사상의 고귀하고 전통적인 고유한 신앙을 더욱 육성,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이 본 주체적 하늘
하나의 관념은 그 나라 사람의 자연 환경과 역사 및 생활 양식에 따라 형성된다. 그뿐 아니라 이미 형성된 관념은 고정적이 아니요, 유동성을 띠고 있으므로 각 시대에 따라 그 형태와 의미가 달라지면서 내용이 더욱 풍부해진다.
우리 한민족의 종교적 대상인 하늘 또는 하느님이라는 관념도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요, 유구한 세월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 것이다.
우리가 육안으로 보는 하늘은 지평선으로 한정되어 아득히 높고 멀리 궁륭상을 이루는 창공이요, 그 공간에는 기체의 여러 분자와 대기 속에 산재하는 잔 먼지로 가득차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고대의 사상으로 보면, 바람을 일으켜 구름을 몰아 비를 내리고 천지만물을 주재하는 하늘이며, 종교상으로 보면, 천상(天上)에 신(神) 또는 천인(天人)·천사(天使)가 사는 청정무구(淸淨無垢)하다는 상상의 세계이며,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영혼이 올라가서 머무는 천국이며 낙원의 하늘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숭배하는 배천사상(拜天思想)이 예로부터 싹트게 되었다. 하늘을 존칭하여 하느님이라고 하는데, 오늘날 우리 한민족이 사용하는 하느님의 내용은 매우 복잡하다.
중국의 상제(上帝)도 우리 말로 하느님이라 번역하고, 인도의 ‘인드라’도 우리 말로는 하느님이라 부르며, 유태의 ‘여호와’도 우리말로는 하느님이라 하여 우리 민족이 전수해 온 고유한 하느님의 개념과 혼화(混和)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이 동일한 하느님일지라도 그 유래와 본체에 있어서 각각 민족적 특색과 종교적 특질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 섞일 수 없는 점도 있다.
우리 나라의 신화나 옛 신앙에 기록된 것에 의하면, 고조선인의 하느님은 푸른 하늘도 아니며 만물 앞에 나타나는 주재자도 아니었다. 그것은 다른 소박한 민족에 그 유례가 많은 것처럼 태양을 천지의 주인으로 믿어 일체의 생명과 세력이 그 태양으로부터 온다고 하였다.
지극히 높고 먼 하늘 위에 위치하여 아침에 동쪽 하늘로부터 저녁에 서쪽 하늘까지 천경(天徑)을 일순(一巡)하면서 찬란한 광채를 발현하며, 그것이 얼굴을 나타내면 광명과 열기가 있고, 그것이 그림자를 감추면 암흑과 한랭이 달려들며, 그것이 가까이 돌면 기후가 온화하고 만물이 생장하고, 그것이 멀리 가면 기온이 떨어져서 만물이 움추리는 실상을 절실히 경험한 그들은 태양의 지상성(至上性)을 어렵지 않게 인식하였을 것이다.
이 하늘의 도(天道)를 믿고 따르는 것을 종지로 삼은 우리 민족의 고유 신앙은 그 근본을 국조(國祖)인 단군(檀君)에 두고 있다. 단군이라는 말은 순수한 우리 말로서 하늘의 도를 실현하는 지위에 있는 어른이라는 뜻이다.
이른바 하늘의 도라는 것은 천상선신계(天上善神界)의 생활 규범을 이름인데, 이것의 실현이 곧 인간의 천계화(天界化)인 것이다.
그런데 천상신계(天上神界)를 옛날에 의 ‘뉘’라 일컬었고 또 천도의 실천 및 그 실천의 담임자를 의 뉘라고도 하였다. 은 광명의 신이요 뉘는 세계이니 의 뉘란 곧 신의 뜻대로 하는 세상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말이다. 또, ‘의 뉘’의 ‘’이 변하여 ‘박’으로도 되고 ‘발’로도 되었고, 발은 또 ‘부루’로 변하기도 하였다.
‘의 뉘’의 행사 중에는 1년에 한번씩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고 이 기회에 국가와 민족 전체에 관한 대사(大事)를 회의에 부쳐서 결정하도록 특별히 베풀어졌다. 이 대제(大祭)를 부여에서는 영고(迎鼓), 고구려에서는 동맹(東盟), 예국(濊國)에서는 무천(舞天)이라 하였다.
나라마다 각기 다른 이름을 붙여 썼지만 그 취지는 모두 의 뉘였으니, 대개 광명의 세계에 있는 듯한 모임이라는 뜻이다. 또, 이 제사에 무수한 등(燈)을 켜서 광명이 세상에 가득하게 한 것은 천상광명계(天上光明界)를 표상한 것이었다.
이 제천대회가 신라 중엽에는 팔관회라는 이름으로 거행되었으며, 고려조에도 이를 계승하였다. 특히, 고려조에서는 매년 중동(仲冬)에 국가의 힘을 다해 이를 대대적으로 거행, 군민상하(君民上下)가 즐거움을 함께 나누었다.
조선조에 이르러서 불교를 배척하는 통에 팔관회도 휩쓸려 폐지되었지만 그 고유 정신은 유교의 문학을 빌려 그대로 존속되었다. 이를테면, 부군(府君)의 숭배가 그 좋은 예이다.
옛날에 정부 이하 크고 작은 관청 어디든지 부군당(府君堂)이라는 것이 있어서 해마다 큰 제사를 바쳤고 또 관리가 새로 임명되면 부임하는 첫 날에 먼저 이 신당(神堂)에 예배하는 것이 공식 절차였다. 또 시골에서는 해마다, 마을마다 마을 전체의 큰 제사를 지냈는데 그 제사 이름을 ‘부군굿’이라 하였다.
‘의 뉘’가 ‘안’이 되고, 다시 변해 ‘부군’이 된 것을 한문에 신(神)을 의미하는 부군이라는 문자를 빌려다가 쓴 것이다. 부군은 곧 팔관을 표시하는 새 자형(字形)에 불과한 것이다.
의 뉘의 옛 풍속이 국가의 공적 전례에서 폐지된 뒤에는 다만 민간 신앙으로 남고 또 무축(巫祝)의 굿으로 행하게 되었지만, 단군 이래의 유원한 도통은 오랫동안 무서운 외래 문화의 시달림을 받으면서도 그 명맥을 잃지 않고 전승되었다.
역사상 우리 민족의 주체적 하느님 관념을 바탕으로 민족의 정기를 집약하여 국운을 발흥시킨 것이 화랑도라면, 국운을 재기하고자 한 것은 동학운동(東學運動)이라 하겠다.
민족적 자각 및 통일 의식이 왕성할 때에는 반드시 전통에 대한 반성과 고유 신앙으로의 귀향(歸向)이 절실해지는 것이 통상적인 예이다. 우리의 민족사(民族史)에 있어서는 신라의 통일운동기가 바로 그러한 시기였다.
고구려·백제·신라의 3국이 정립하여 있을 때에 신라는 가장 뒤떨어지고 또 가장 약한 나라였다. 그러나 그 무렵 명군철상(明君哲相)이 뒤이어 나타나 반도의 통일은 우리의 힘으로 해야겠다는 기개가 높았는데, 진흥왕 때에 옛날 고유 신앙의 단체를 강화시켜 국민의 정신 훈련을 오로지 여기에 맡기고 국가에 필요한 인재를 이 가운데서 가려 썼다.
가령 귀인(貴人)의 자제 가운데서 생김새가 수려하고 지혜가 뛰어난 사람을 골라서 신인(神人)의 표상을 삼고 이를 중심으로 강고한 교단(敎團)을 조직하여 국민도덕의 연마, 국풍가악(國風歌樂)의 숭상과, 국토 순례의 수행을 면려(勉勵)하였다.
이 교단의 중심이 된 성동(聖童)을 풍월주(風月主) 또는 원화(源花)·화랑·국선(國仙)·선랑(仙郎)이라 하였고, 이 교단에서 지키는 신조와 덕목을 풍월도(風月道), 또는 풍류교(風流敎)·화랑도·선풍(仙風)이라고 일컬었다. 그 어원은 모두 ‘부루’에서 나온 것이며, 부루는 물론 ‘의 뉘’에서 변전한 말이다.
이 교단에 예속된 무리를 풍월도(風月徒)·화랑도(花郎徒)·선도(仙徒)라 하여 이들은 국가의 대사를 맡을 선택된 엘리트로서 큰 자각과 긍지를 가졌으며, 실제로 진흥왕 이후 문무왕대의 통일 대업을 성취할 때에 이르기까지 약 100년 동안 온갖 방면에서 큰 활약을 하던 인물이 모두 ‘부루’ 교단의 출신이었다.
진평왕 때에 원광(圓光)이 화랑에게 지어 주었다는 이른바 세속오계인 사군이충(事君以忠)·사친이효(事親以孝)·교우유신(交友有信)·임전무퇴(臨戰無退)·살생유택(殺生有擇)에는 유교·불교·도교의 요지가 모두 들어 있어서 인생뿐 아니라 만물을 교화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이로 미루어볼 때 부루의 도는 고대의 민족적 종교에서 흔히 보는 것과 같은 유치하고 편협한 가르침이 아니라 매우 고차원적으로 발달한 윤리적 종교이며 또, 그 연원은 비록 민족 생활에서 나왔을 법도 하지만 그 내용은 범세계적으로 시행하기에 합당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외환에 대한 조정의 무능함과 당론 투쟁, 세도정치 등 내정에 나타난 사환 계급(仕宦階級)의 몰염치함은 마침내 민중으로 하여금 기성 국가에 대한 신뢰심을 상실하고 민중 자신의 밑으로부터 복받쳐 올라오는 힘으로써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절감하게 했는데, 이러한 경향이 철종·고종 연간에는 이미 극도에 달하였다.
이 때 한편으로는 중국을 거쳐 들어온 기독교 신앙이 천주학(天主學) 또는 서학(西學)이라는 이름으로 한참 민간에 침투해 가서 말하자면, 사상적 국난(國難)이 도래하는 느낌마저 가지게 하였다.
이 사상적·정신적 두 환난을 일거에 타개하리라는 큰 뜻을 품고 믿음과 행동으로 그 관문을 뚫기에 고심하던 최제우(崔濟愚)가 1860년(철종 11) 4월 5일에 천도(天道)의 계시를 얻어 ‘시천주(侍天主)’의 길이야말로 신천지 개벽(新天地開闢)의 열쇠라 하여 감히 그 신념을 민중 사이에 선포하고, 이름하여 동학(東學)이라 하였다.
이는 대저 서학에 대해 동학이 국민 고유의 신념임을 내세운 것이며 천주 곧 단군이래 전통 신앙의 핵심인 하느님을 붙잡은 점에서 그 이름이 헛되지 않았다.
이 사상이 시대의 요청에 부응함으로써 크나큰 위세로 민중 사이에 퍼져갔는데 그 세력 결성이 위정자측의 주목을 끄는 동시에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죄과로 얽혀서 최제우는 마침내 순도(殉道)하고 최시형(崔時亨)이 그 도통을 이어받아 교단을 육성하기 위해 몰래 힘쓰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교도 중 한 사람인 전봉준(全琫準)이 교(敎)의 일면인 사회적 경향을 행동화하여 1894년에 제폭구민(除暴救民) 운동을 일으킴으로써 국내뿐 아니라 동양전국(東洋全局)에 일대 충격을 주었다. 이 의거는 국제적 마찰에 의한 희생으로 실패에 돌아가고 교의 명맥은 지하로 숨을 수밖에 없었다.
화랑도정신이나 동학정신이나 모두 한민족 고유 신앙인 하느님사상을 중심으로 민족정신을 응집한 것이었으나 전자는 위정자들의 비호로 성공한 사례라면 후자는 위정자들의 냉대와 질시로 실패한 사례이다.
고대 우리 민족이 신앙의 대상으로 여긴 ‘’은 뒤에 광명을 의미하게 된 것과 같이 본디 광명의 본체인 태양을 일컫던 말이다. 고구려의 고(高)는 해(解)와 같으니 역시 태양을 뜻하며 백제의 백(百),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박(朴)도 ‘’에서 나온 말이니 역시 태양을 뜻하고 있다.
백두산·장백산·소백산·백운산·태백산 등의 백(白)도 ‘’에서 온 말이며, 금강산·오대산·설악산·속리산·치악산 등 명산의 상봉이 모두 비로봉인데, 이 ‘비로’는 ‘부루’에서 온 말이다.
우리 고대 신앙에서, 천신은 산악을 통로로 하여 인간계에 내왕함으로써 산악은 곧 인간계에 연장되어 있는 천계(天界)의 일부라고 여겨, 각 지방에 있는 최대 최고봉이 신앙의 표적으로 일반에 숭배되었고, 이러한 산과 봉우리를 의 뉘의 산이라고 일컬었다.
옛날에는 하늘을 일명 환국(桓國)이라고도 하였는데, 이 ‘환’은 광명을 의미하는 ‘’의 유어(類語)이다. 환인(桓因)의 아들인 환웅(桓雄)이 환국(桓國)으로부터 이 땅에 내려와서 하늘의 법으로 세상을 다스리다가 그 소임을 아들 단군에게 맡기고 승천하였다는 것이 우리 고대 신화에 기록되어 있다.
그 소임이란 이 세상을 광명의 누리, 즉 밝은 뉘를 성취하는 일이었다. 단군에서 나온 이 천도(天道)는 빛과 열과 광명을 주는 자연신으로서의 하느님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인간의 지혜가 차차 발달함에 따라 빛과 열과 광명을 주는 자연신에서 이것을 추상화, 관념화해 새롭고 깨끗하고 환하게 살려는 생활 원리가 되는 이상적 하느님 관념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말할 것도 없이 유교·불교·도교의 영향을 받은 바가 적지 않다.
그런데 이 신도(神道)는 신라 이후에 화랑국선(花郎國仙)의 국가적 활동으로 꽃이 핀 뒤에는 그 종교적 방면은 차츰 불교에 눌리고, 교화적 방면은 유교에 빼앗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고려 시대에는 다만 국가의 태평을 장식하는 의식으로 화하고, 조선 시대에는 그 유풍 여운은 겨우 민속 무습(民俗巫習)에 떨어져 있더니 선조·인조 연간에 왜란·호란 등 연속적으로 대 국난을 치르면서 인심이 불안에 빠졌다.
이어 영조·정조 이후에 서방으로부터 천주학이 들어와서 정신계가 혼란해지자 민족의 정신적 반발력이 고개를 들어 민중적 동학운동이 정국을 경악시켰으며, 고종 때에는 외국의 침입을 자주 받고 국가의 운명이 기울어지게 되자 민족 정신이 크게 흥분하여 마침내 전통적 고유 신앙의 부흥을 바라는 기풍이 날로 더해 가서 대종교(大倧敎)가 생기기도 하였다.
우리의 선대(先代)는 한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하느님의 관념으로 유교의 천(天), 불교의 제석천(帝釋天), 도교의 옥황상제, 천주교의 천주를 흡수하였고, 일본인의 가미(神)를 극복하였다. 우리 민족에게 만일 이 하느님의 관념이 없었던들 우리 문화는 벌써 외래 문화에 흡수되어 자취마저 사라졌을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빛과 열기와 광명을 뜻하는 ‘하느님’, 광대한 울타리를 뜻하는 ‘한울님’, 한결같이 영원을 담고 있는 ‘하늘님’, 씩씩하고 왕성한 얼을 간직한 ‘한얼님’, 순일무잡(純一無雜)을 상징하는 ‘하나님’을 포용하고 있는 하느님의 관념은 한민족의 생명과 함께 영원히 지속해 갈 것이다.
종교에서 본 하늘
하늘이란 일반적으로 땅의 대칭으로 지상(地上)의 공간을 총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종교적인 면에서는 종교에 따라 하느님·하나님·한울님·한얼님, 또 한자로는 천(天)·제(帝)·천제(天帝)·상제(上帝)·옥황상제(玉皇上帝)·황천상제(皇天上帝) 등 다양하게 쓰인다.
그리고 그 뜻도 초월적 주재자로서의 인격신으로 우주 자연의 법칙, 또는 인성(人性)의 내재적 도덕률로서 이법천(理法天)의 뜻으로, 신비적 운명천(運命天)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천관(天觀)이 언제부터 어떻게 쓰여 왔는지 경전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시경≫과 ≪서경≫에 실려 있는 중국 고대의 천관은 물론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또 어떤 일정한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원시 시대로부터 점차적으로 형성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시경≫·≪서경≫ 하·은·주 시대의 천관을 분석하면 다음 열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① 사람의 생명은 천(天)이 부여한 것으로 수요(壽夭)·장단(長短)을 천이 맡고 있다.
② 천이 인류를 위해 하나의 도덕 법칙을 세워 주었으니 그 이름을 이(彛)·칙(則) 또는 명덕(明德)이라 하였다.
③ 이 도덕 법칙은 천이 명령한 것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따르게 하였으니 이를 명(命) 또는 칙(勅)이라 한다.
④ 천은 항상 인류를 감찰하며 위의 법칙에 대한 실행 여부를 살핀다.
⑤ 사람이 천의 명령을 순종하면 재해도 없고 나아가 천이 복을 주며, 명령을 어기면 천이 노하여 벌을 준다.
⑥ 천이 명령하고 상주고 벌주는 권한은 왕으로 하여금 대행하게 하며, 왕은 천을 대표하므로 천에 대해 일체의 책임을 지며 항상 인민들을 거느리고 천명에 순종한다.
⑦ 천이 왕을 세울 때 먼저 그 사람을 구해 얻으면 그에 영보(靈寶)를 주어 수명(受命)의 부(符)로 삼도록 하고, 전왕도 후왕을 천에 천거하며 가합하면 천이 받아들인다.
⑧ 왕자가 도를 잃으면 천이 먼저 꾸짖어 경구(敬懼)하게 하고 고치지 않으면 벌을 주는데, 그 벌은 새 임금으로 하여금 집행하게 한다.
⑨ 천의 뜻은 민중에게 달려 있으니 백성들이 욕구하면 천이 반드시 따른다.
⑩ 사람이 죽으면 천으로 돌아가는데 현철한 사람은 천제의 좌우에 있다.
위와 같이 중국 고대의 천관을 규정할 때 ①·④·⑩의 천은 초월적 주재자로서 종교적 인격신의 뜻으로 보이나, ②·③의 천은 인간에게 부여된 도덕 법칙으로 형이상학적인 의리천(義理天)이며, ⑤·⑦·⑧의 천은 신비적 운명천(運命天)으로 볼 수 있고, ⑥·⑨의 천은 정치적 천명사상(天命思想)과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천관은 공자(孔子)에 이르러도 대체로 계승된다. 공자는 전통적인 사상이나 학문을 계승하여 “서술은 하되 창작은 하지 않는다(述而不作)”는 태도였으므로 ≪논어≫에서 주재적인 천을 그대로 믿고, 또 외천(畏天)하면서 도덕률로서 인간에게 부여된 천명을 인격 도야를 통해 알 수 있다(五十而知天命)고 하면서도, 제자의 죽음 앞에서 운명적인 천명을 탄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공자사상의 핵심은 천이 아니라 인(仁)에 있었다.
맹자는 공자를 그대로 배우고자 하였으므로 주재적인 천을 믿고 경천(敬天)하면서도 500년에 왕자가 태어난다는 역사의 필연성을 논하며 신비적 운명천을 말하기도 하고, “사람의 본성을 다하여 그 천(天)을 안다(盡其性 知其性)”고 하여 성선설(性善說)을 강조하고, 다시 정치적 천명사상을 논하면서 혁명론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묵자(墨子)도 주재천을 강조하며 사람의 수요·빈부·안위·치란이 모두 천명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그 밖에 한(漢) 나라 동중서(董仲舒)의 천인상응설(天人相應說)이나 재이설(災異說), 또는 회남자(淮南子)나 양웅(揚雄)의 신비적 운명천의 관념도 따지고 보면 ≪시경≫·≪서경≫의 천관에서 연유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중용≫이나 ≪역전 易傳≫의 천인합일 사상이나 송나라 성리학자들의 천인합일의 이법천이 모두 ≪시경≫과 ≪서경≫의 천관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의 유학은 공자의 천관을 그대로 계승하여, 특히 성리학이 도입된 후에는 천인합일의 이법천의 관념이 지배적이었다.
즉, 사람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성은 천리(天理)로 순선(純善)한 것이나, 인욕(人欲)의 교폐(交蔽)로 더럽혀진 것을 경(敬)과 성(誠)을 통해 인욕을 제거하고 본성으로 되돌아가면 성인이 되는데 이 때 천과 인은 합일이 된다는 것이다.
불교의 천관은 범신론적인 천으로, 천이란 육도(六道 : 天·人·阿修羅·畜生·餓鬼·地獄) 중의 하나 즉, 중생이 윤회하는 여섯 가지 길의 하나인 천으로 볼 때 이 고해(苦海)의 윤회로부터 해탈하는 불(佛)이 목표가 되므로 불교에서의 천은 그다지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도가(道家)의 천관은 우주 자연의 법칙, 즉 천도로 보았으나, 도교의 천관은 천선(天仙)이 사는 곳을 천이라고 하는 천당설(天堂說)로 미루어 볼 때 ≪시경≫·≪서경≫에서의 ⑩의 천관과 흡사하다.
기독교의 천관은 주재적·초월적 유일신관이다. ≪시경≫·≪서경≫의 천관과 흡사한 점도 많으나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독교의 하느님에 대한 설명을 요약해 보면, “하느님은 무한하고 영원하고 창조되지 않은 인격적 실재로서 그 자신 이외의 모든 것을 창조하였다. 그리고 그의 피조물인 인간에게는 사랑스럽고 성스럽고 거룩한 하느님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히브리인의 하느님은 원래 이스라엘 민족의 ‘야훼’라는 부족신이었으나 서기전 6∼8세기 경에 예언자들이 야훼는 히브리인의 하느님일 뿐만 아니라 천지의 창조주이며 모든 역사와 인류의 심판자라고 가르치기 시작해 결국 하느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의롭다는 새로운 일신교(一神敎)가 탄생되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하느님은 창조주요, 인간은 피조물이며 또 원죄(原罪)까지 지니고 태어난 사악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의 인간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조물주인 하느님과 같아질 수는 없다. 따라서, 동양의 천인합일 사상과는 전연 다르다.
우리 나라의 단군신화에 보면, 천신인 환인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神壇樹) 아래에 내려와 세상을 다스릴 때 웅녀(熊女)와 결혼해 단군을 낳았다고 한다.
이 때 천신인 환인과 아들 환웅과 손자인 단군을 삼신(三神)이라 하여 삼위일체로 숭배하기도 하고, 천신인 환웅과 지신(地神)인 웅녀 사이에 태어난 인신(人神)인 단군을 천·지·인 삼재설(三才說)로 설명하기도 한다.
여하간 민족의 시조인 단군을 숭배하는 종교는 많으나 그 대표적인 것이 대종교이다. 대종교의 천은 조화신(造化神)인 환인과 교화신(敎化神)인 환웅과 치화신(治化神)인 환검(桓檢)의 삼위일체로 ‘한얼님’을 신앙한다.
그리고 동학은 서학에 대칭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서학이란 서양의 과학 문명과 함께 들어온 학문과 종교(天主敎)를 뜻한다. 서학의 침입에 대항, 동양 재래의 학문과 종교를 동학이라 이름하였다.
이 동학은 후에 천도교(天道敎)라 개칭되었는데, 천도교의 천관은 ‘사람이 바로 하늘(人乃天)’로서, 그 인내천 사상이 천인합일 사상에서 유래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편, 우리 나라의 신흥 종교는 300여 개가 넘는다고 하나 그 천관은 대체로 ≪시경≫·≪서경≫의 천관에서 비롯된 것과 단군 계열과 기독교 계열의 천관으로 구분된다.
문학에서 본 하늘
문학상에서의 하늘은 신화나 전설에서는 절대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는 세계 공통이면서 제천사상(祭天思想)을 근간으로 하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는 가장 전형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이 때 하늘은 만물을 생육하는 태양으로, 부족의 장(長)이나 군왕은 태양의 아들이라는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우랄 알타이계 신화를 꿰뚫는 기본 개념으로 여겨졌다. 이의 전형적인 것이 단군 조선·부여·고구려·신라·가락국 신화들이 가지고 있는 시조 탄강 설화다. 그리하여 우리의 신화는 대개 난생 신화(卵生神話)의 형태를 빌리고 있다.
또한, ≪삼국지≫<위지><동이전>에 나타나 있는 삼국 시대 민족 행사의 가장 두드러진 것이 제천의식이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등이 그 전형적인 것이고, 그 밖에 마한·변한·진한에서 귀신을 제사지냈다고 하는 것도 이러한 제천의식이다.
우리 국문학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원시 종합 예술제도 하늘을 제사지내는 제천의식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그 전형적인 문헌 자료가 가락국의 건국 설화인 수로왕 탄강 설화로 나타났으며, 더 나아가서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고려 시대부터 이룩된 한국 한문학의 주제는 대개가 자연이었다. 이 자연은 형이상학적인 것부터 구상적이고 감각적인 자연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그 상층 구조가 천명 사상이고 이것은 하부 구조로서 인간적인 윤리 사상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 천명이 바로 하늘의 존재를 전제로 하면서 천·지·인 삼재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경우, 하늘이란 중국적 개념과 상통하는 것이지만, 이를 문예상으로 형상하는 사람들은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사고 속에는 원시적인 무속의 사고가 습합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천명은 하늘의 명령이며,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절대자의 명령이다.
이는 순환 구조(循環構造)를 가지고 있고, 그들은 영혼의 존재를 믿고, 일상적인 도덕 생활에 있어서는 하늘의 자손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가족 관계에서 연면성을 추구하고 있다.
이것이 실천 도덕의 기본이 되어 있고, 그들의 일상 생활에서 느끼는 자연과의 묘합(妙合)에서 많은 문예적 소재를 찾고 있는 것은 사실이어서, 모든 것을 신에게 귀속시키는 종교적 사념과는 다른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문예상에 하늘을 읊거나 묘사하고 있는 경우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이것은 일상적으로 기도나 고해·참회를 통해 하늘과 대화하는 종교적 사념과는 이미 멀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도 가끔 문예상에 하늘이 등장함으로써 우리의 아키타이프(archetype, 원형)는 아직 살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비록 문학 외의 사고이긴 하지만, 4∼6세기까지 존속한 신라 또는 삼국의 묘제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인간이 내세에 대해 재생을 믿는 사고가 하늘이라는 개념과 다시 묘제와 결부되어 고대인에게 신봉되어 온 것 같다.
아울러 4, 5세기에 불교가 들어와서도 이러한 사고는 불교적인 세계관이나 유교적인 세계관과 습합하여 존재하였고, 그 뒤에도 줄곧, 아니 오늘에까지도 존속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고 즉, 원초적으로는 하늘에서 시조가 점지되어 이 세상에 내려와 역경을 겪고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는 한국인 특유의 원시 사고는 그 뒤에도 일상적인 생활은 물론 사후의 세계에도 반영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불교적인 피안 사상(彼岸思想)과도 다른 샤머니즘 특유의 원초적인 신앙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면에서 화랑들이 하늘에 맹세한다는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 등은 초기의 금석문으로 하늘을 인식한 증거물이 될 것이다.
그 뒤 불교가 국교가 되다시피 된 뒤에도, 또 한문학이 물밀듯이 들어와 우리에게 중국적인 하늘의 사고를 전파한 뒤에도 민간에서는 막연하나마 하늘이 존재한다는 의식이 줄곧 잠재의식으로 남아 있었다.
그것은 중국적인 의식이 가미된 초월자라는 뜻으로 샤머니즘과도 습합된 것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규보(李奎報)의 자찬시(自讚詩)가 좋은 예이다.
고려 시대 이후의 하늘 사상은 막연하게 당시 사람들에게 느껴지고 있던 초월자의 위치로, 종교적 신앙을 떠나서 존재한 것 같다.
그래서 하늘을 번역하여 황천(皇天)·천(天)·조화옹(造化翁)이라 부르고, “하늘이 높고 먼들로 사롤 길 없사이다”(李德一의 시조), “무극옹(無極翁)이 고쳐 앉아 내 말삼을 대답하되”(許磁의 시조), “무극옹은 긔 뉘런고 하늘 땅 임자런가”(金壽長의 시조), “아버니 낳으시고 임금이 먹이시니/이 두분 은혜는 하늘 아래 가이 없다”(無名氏), “하늘은 두렷하고 땅은 어이 모나거니/음양이기(陰陽理氣)를 뉘라서 삼기신고/아마도 높고 넓음이 얼만 줄 몰라라”(金壽長의 시조), “하늘에 뉘 다녀온고 내 아니 다녀온다/팔만 궁녀를 다 내어 뵈데만은/아마도 내 님 같은 이는 하늘에도 없더라”(無名氏), “하늘이 높다 하고 발 져겨 서지 말며”(朱義植의 시조), “하늘이 높으시되 인간사이를 들을시고”(金振泰의 시조), “하늘이 백성을 성취없이 부성(富盛)하니”(無名氏), “하늘이 복 가지고 값을 보고 주시나니”(申獻朝의 시조), “하늘이 사람 내실 제 오륜(五倫)을 다 주시니”(無名氏), “하늘이 사람을 삼기실 제 오륜조차 삼기시니”(無名氏), “하늘이 이저신 제 무슨 술(術)로 기워낸고/백옥루(白玉樓) 중수(重修)할 제 어떤 바치 이뤄낸고/옥황(玉皇)께 살와 보자 하더니 다 못하여 오나다”(尹善道의 시조)라고 노래한다.
이것이 가사에 오면, 이 장르가 사대부의 것이기 때문에 중국의 상제·황천의 개념에 가까워짐을 알 수 있다. 박인로(朴仁老)의 <태평가>에 “천운순환(天運循環)을 아옵게 다 하나님아 우아방국(佑我邦國)하샤 만세무강 눌리소셔”, <누항사 陋巷詞>에 “길흉화복을 하날귀 부쳐두고”, 같은 박인로의 <소유정가 小有亭歌>에는 “평생에 품은 뜻을 비노이다 하나님하 북해수(北海水) 여위도록 우리 성주(聖主) 만세(萬歲)소셔”, 같은 이의 <노계가 蘆溪歌>에는 “일생에 품은 뜻을 비옵나다 하나님아” 등으로 하늘께 축수하고 있다. 이 경우 이를 무속(巫俗)의 그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시 조우인(曺友仁)의 <자조가 自嘲歌>에는 “님 향한 일편단심 하늘께 타나시니”, 정훈(鄭勳)의 <탄궁가 彈弓歌>에 “하늘이 삼기심을 일정(一定)고로 하련만은 엇지한 인생이 이대도록 고초(苦楚)한고……”, ≪동경대전 東經大全≫ 교훈가(敎訓歌)에, “천생만민하였으니 필수지지할 것이오, 명내재천(命乃在天)하였으니 죽을 렴려 왜 있으며 하나님이 사람 낼 제 녹 없이는 아니내네……”, <안심가 安心歌>에 “나도 또한 하날님에 명복받아 출세하니……” 등으로 노래하고 있다.
여기에는 서구의 신 개념으로 동양적으로 회귀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 이것은 천주교가 이 땅에 들어와서 천주찬가(天主讚歌) 등으로 최도마(崔多默) 신부 등이 우리의 가사체를 빌려 찬가를 지은 사실로 증명될 수 있다.
여기에 나오는 하늘이라는 개념은 가톨릭이라는 신앙 체계 안에서의 하늘의 개념이니 전통적인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마찬가지로, 개신교가 이 땅에 들어와서 현대 문학기에 우리 문예 속에 침잠되어 있기는 하나 이는 종교 의례에서의 문제이고, 그 실체를 파악하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아직까지 기독교의 한국화를 부르짖고 있는 사람들은 기독교의 교리로 우리의 전통적인 하늘의 개념을 포괄하려 하고 있으나, 이는 형이상학의 문제에 속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늘이라는 우리의 전통적인 개념이 더 넓은 것이기 때문에, 이를 실지로 수용하고 있는 쪽에서도 언제나 교리로서 끝나는 것 같다.
고소설은 그 독자가 주로 부녀자였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천상 또는 하늘에서 적강한 주인공이 인생에서 많은 고초를 겪고 다시 천상에 올라간다는 순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는, 이것이 약간 변형되어 천상의 옥황상제의 시녀였던 여 주인공과 남 주인공이 서로 추파를 던진 죄로 인간계에 적강하여 인생에서 고통을 겪고 마지막에 결합하여 천상에 올라간다는 궤적(軌跡)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고는 도교적인 것 같으면서도 우리의 원시 신앙인 무속과도 통하는 것으로서, 일종의 순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소설의 주된 독자인 부녀자들에게 현세의 고통이나 여러 가지 부조리를 승화시켜 주는 구실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인생은 일장춘몽이라는 ≪구운몽≫에서처럼 꿈 속의 이야기로 형상화하는 경우도 있고, 신물(信物)을 증표 삼아 재회하는 소설 군(群)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하늘이라는 개념은 상고 시대의 원시 고유 사상 무속에 있어서 하늘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4·5세기에 불교·유교의 전래와 더불어 하늘은 이러한 개념의 습합 형태로 인식되었으며, 다시 도교의 전래와 더불어 황천·옥황상제 등 하늘의 도교적 개념도 여기에 다시 습합되게 되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하늘을 황천이라 표기한 것은 원시 무속 사상의 하늘이라는 개념과 상통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후 한시·시조·가사·잡가·소설·판소리 등에서의 하늘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것이 대개 습합된 것이라 하여도 좋을 것이다. 이것은 ≪동경대전≫의 하늘도 마찬가지다.
또한, 천주교·개신교에서의 하늘도 한국인에게 있어서는 우리의 원시적 개념과 복합된 의식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것은 그 원류를 따지면 모두 다를지라도 이를 한국인이 받아들여 문예상에 형상화할 때는 한국 나름으로 변용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현대 문학기 이후의 기독교 사상도 하늘이라는 의식 속에서는 전통적인 것과 같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과학에서 본 하늘
하늘은 천문학에서는 관측자를 중심으로 하는 반경이 충분히 큰 구면(天球)으로 정의된다. 별의 위치는 이 천구 위에서 두 개의 각도로 표시되며 이는 지구 위의 위치를 나타내는 경도와 위도에 해당한다.
천구와 지구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그림 1〕의 (a)는 천구 중심에 지구의 중심을 놓은 것인데, 지구의 지축(지구의 북극 N, 남극 S를 잇는 선)이 천구와 만나는 점 P, P′를 각각 하늘의 북극과 남극이라 하고, 여기서 90° 떨어진 점들이 만드는 대원(大圓)을 하늘의 적도라고 한다. 이는 지구의 적도 면이 천구와 만나는 대원이다.
하늘의 두 극을 지나는 대원을 생각하면, 이것은 지구 표면의 경선(經線)에 해당하므로 하늘의 어느 특정한 점을 지나는 대원을 기준으로 경도를 매길 수 있다. 이 특정한 점으로 춘분점(γ) 즉, 태양이 춘분 날(3월 21일 경) 머무르는 적도의 점을 기준으로 동쪽으로 경도(α)를 재는데, 이것을 적경(赤經)이라 한다. 하늘의 적도로부터 경선에 따라 잰 각도(δ)를 적위(赤緯)라 하며, 이는 지구면에서 위도에 해당한다(〔그림 1〕의 (b)).
지구는 하루에 한 번 서에서 동으로 돌기 때문에, 지구에서 보면 하늘의 별들은 하루에 한번 동에서 서로 도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쪽 하늘의 별들을 카메라(고정된)로 오랜 노출을 하면, 별들이 북극을 중심으로 한 원을 그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원들의 공통된 중심을 찾으면 이것이 바로 하늘의 북극이다. 북극성은 여기서 약 1°(달이 두 개 들어갈 간격) 떨어져 있다.
〔그림 2〕의 (a)는 지평에 있는 사람 A가 지구 중심 O를 잇는 방향(즉, 추의 방향)이 하늘과 만나는 점 Z를 천정(天頂), Z에서 90° 떨어진 대원을 지평선이라고 한다. 또, A에서 지축 NS에 나란한 방향이 하늘과 만나는 점은 하늘의 북극 P이다.
천구의 크기는 지구의 크기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i:E0060560_P1051###의 길이는 O으로 볼 수 있으므로 ###i:E0060560_P1049###는 ###i:E0060560_P1050###와 같다. 그래서 〔그림 2〕의 (b)를 보면 A의 위도는 하늘의 북극 고도(高度) 즉, 지평선에서 떨어진 각도와 같다. 옛 사람이 위도를 북극출지(北極出地), 또는 출지도(出地度)라 부른 까닭이다.
대원 PZ를 A의 하늘의 자오선이라고 하여 남북의 방향을 가리킨다. 즉, 지평선과 만나는 두 점은 각각 정북(正北), 정남(正南)의 방위이다. 자오선은 하늘의 적도와 지평선을 각각 양분하고 있으므로 적도와 지평선은 정동(正東)과 정서(正西)에서 만나는 셈이다.
천정 Z를 통하는 대원을 그리면 이 위에 있는 별은 정남을 기준으로 잰 각도인 방위각 a와 고도 h로 나타낼 수 있다. 이 두 개의 각도는 측량·토목 등에 쓰이지만 별의 위치를 나타내는 데는 쓰이지 않는다. 이는 별이 지구 자전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방위각과 고도는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의 적경 α와 적위 δ는 춘분점이나 하늘의 경선이 별과 같이 돌기 때문에 그 값은 변하지 않는다. 천구 위의 위치는 이와 같은 두 개의 각도(α, δ) 또는(a, h)로 표시하지만 실제로 별의 위치는 그가 속하는 별자리에 의해서 나타낼 수 있다. 현재 천구는 88개의 별자리로 구획이 되어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남반구 별자리의 일부는 볼 수 없다.
지구는 태양 둘레를 일 년에 한 바퀴 돌고 있는데, 지구에서 보면 태양의 위치가 나날이 동쪽으로 하루에 약 1°(365일에 360°)씩 옮겨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해뜨기 직전의 동쪽의 별자리나 해진 직후의 서쪽의 별자리가 나날이 서쪽으로 하루에 약 1°씩 옮겨가는 것으로 알 수 있다.
태양이 일 년 동안에 별자리 사이를 옮겨가는 길을 황도(黃道)라 하여 예로부터 이 길목에는 열두 개의 별자리가 알려져 있다. 이것을 황도십이궁(黃道十二宮)이라 하는데, 하늘을 동쪽으로 도는 방향으로 양·황소·쌍동이·게·사자·처녀·천칭·전갈·궁수·염소·물병·물고기의 순으로 배열한다. 태양은 1월에 염소, 2월에 물병……등으로 대략 한 달에 한 궁씩 옮겨간다.
한편, 달은 한 달에 하늘을 한 바퀴 동쪽으로 도는데 그 길을 백도(白道)라 한다. 황도는 지구의 공전 궤도, 백도는 달의 공전 궤도가 각각 천구와 만나는 대원인데 황도와 백도는 약 5°서로 기울어져 있다.
달이 가는 길목에는 동양에서 이십팔 수(宿)라고 하여 스물여덟 개의 별자리가 쓰여졌는데, 동쪽으로 도는 순으로 각(角)·항(亢)·저(氐)·방(房)·심(心)·미(尾)·기(箕)의 일곱 개에 이어서, 두(斗)·우(牛)·여(女)·허(虛)·위(危)·실(室)·벽(壁)의 일곱 개, 그리고 규(奎)·누(婁)·위(胃)·묘(昴)·필(畢)·자(觜)·삼(參)의 일곱 개, 끝으로 정(井)·귀(鬼)·유(柳)·성(星)·장(張)·익(翼)·진(軫)이 있다. 그리고, 각 일곱 수는 각각 창룡(蒼龍)·현무(玄武)·백호(白虎)·주조(朱鳥)로 4분되어 각각 동방·북방·서방·남방의 일곱 수로 불린다.
이십팔 수는 한국·중국·일본 이외에 인도와 아라비아에도 대강 비슷한 것이 전해져 내려온다. 아마도 달의 운행을 관측하는 편의상 만들어졌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 이십팔 수가 과연 같은 기원을 가진 것인지 아닌지는 명백하지 않다. 어디서 발생하여 어떻게 발달되고 또 전달되었는지는 동양 고대사의 하나의 문제거리로 되고 있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천기대요(天機大要)』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동경대전(東經大典)』
『시경(詩經)』
『서경(書經)』
『삼국지(三國志)』
『칠실유고(漆室遺稿)』
『동애유고(東厓遺稿)』
『고금가곡(古今歌曲)』
『해동가요(海東歌謠)』
『근화악부(槿花樂府)』
『청구가요(靑丘歌謠)』
『삼죽사류(三竹詞流)』
『봉래악부(蓬萊樂府)』
『고산유고(孤山遺稿)』
『최남선전집(崔南善全集)』
「하느님 관념 발달사」(김경탁,『한국문화사대계』6,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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