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비몽사몽 간 03:30~ 시민데스크에서 국호에 대한 취급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찾아 보니
아래의 내용이다.
'15~16년 어느 날 대한민국 국호에 대한 의미에 대해 취재하여 취급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시청자 제보한 것이 있기에 관심을 갖고 찾아 본 결과인데 실망이 크다.
"100년 전 대한민국 국호를 정하고 헌장을 만든 건 2030 세대였습니다"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9년 4월 11일 (목요일)
■ 대담 : 이종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
“100년 전 대한민국 국호를 정하고 헌장을 만든 건 2030 세대였습니다”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죠. 1919년 4월 11일의 의미를 짚어보겠습니다.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로 백범 김구 선생 등 상해 임시정부 사람들 속에서 나고 자란 분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을 준비중인 건립추진위원회 이종찬 위원장을 연결하겠습니다. 위원장님?
◆ 이종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이하 이종찬)> 네, 안녕하세요.
◇ 이동형> 오늘 굉장히 바쁘실 텐데, 저희 인터뷰 응해주셔서 일단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요.
◆ 이종찬> 아, 감사합니다.
◇ 이동형> 100년을 맞이한 소회가 누구보다 남다를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 이종찬> 정말 남다르게 감회가 깊습니다. 왜냐하면 오늘이 임시정부 생일 아닙니까? 100년 전 이 시간에는 이미 대한민국 국호가 결정되었죠. 오전 10시에 회의가 끝났으니까 국호가 결정되었고, 헌장 1조에 민주공화제로 한다는 것이 분명하게 명시되었죠. 우리가 군주국에서 이제 민주국으로 첫 발을 내딘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참 뭐라고 이 감동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정말 감동스럽습니다.
◇ 이동형> 위원장님, 상해에서 태어나셨고,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그분들의 투쟁을 지켜보면서 자라셨는데, 혹시 기억나는 것 있습니까?
◆ 이종찬> 여러분 다 기억나죠. 물론 제가 나이가 어렸으니까, 10살밖에 안 된 나이에 정치적인 얘기, 이런 것은 제가 기억하기가 어렵고요. 다만 그분들이 앉아서 하는 말씀이 사적인 대담보다는 어떻게 나라를 만드느냐, 이런 대화를 많이 하시는 것 같은 생각이 제가 들어요. 그런 분들의 고민은 어떻게 나라를 건설할 것이냐, 독립운동의 첫 단계는 이루어졌는데, 해방이 됐으니까요. 2단계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고민들을 막연히 하신 것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 이동형> 늘 나라 생각만 하셨군요?
◆ 이종찬> 네, 그러니까 그분들의 대화가 저에게는 항상 공적인 것, 역사적인 것, 이런 대화가 많았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 이동형> 그런데 당시 임시정부가 참 힘들었습니다. 여기 저기 옮겨 다니기도 하고요. 일제의 핍박도 있었습니다만, 경제적 문제도 상당히 있었는데요. 혹시 그런 기억들은 나십니까? 배를 곯았다든가, 이런 것들이요.
◆ 이종찬> 저희 삶 자체가요. 해방되기 전에는 저희 삶 자체가 정말 어려웠던 삶을 살았거든요. 저희 아버지는 항상 도망 다니셨고, 저희 집은 항상 감시 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도 상해 프랑스 조계의 슬럼 같은 곳에서 살았으니까요. 저희들은 삶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 이동형> 늘 어려웠다고 말씀하시지만, 우당 형제들이 독립운동 하기 전에는 상당히 거부였잖습니까? 그 많던 재산 독립운동한다고 썼으니까요.
◆ 이종찬> 그런데 그것은 우리 할아버지 세대가 누렸던 것이고, 거의 다 처분한 것이고요. 저희들은 사실은 그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 이동형> 혹시 할아버지가 재산 처분하지 말고 우리한테 남겨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 이종찬> 지난번에 명동에 옛날 우리 할아버지가 태어난 곳이 YWCA 그거 아닙니까? 거기에 표지석을 하나 세웠어요. 우당 6형제의 생가 터라고 해서요. 그 표지석 세우는 날, 저희들이 간단한 예식을 치렀는데, 어떤 정치인이 저한테 와서 농담으로 얘기를 하더군요. 이거 다 바치지 말고 1/100만 남겨뒀어도 괜찮으셨겠다고요. 그런 생각을 옆에서는 했는데, 저희들은 감히 그런 생각도 못했습니다.
◇ 이동형> 기쁜 날인데, 이런 질문을 드려서 조금 그렇습니다만, 여전히 보수 일각에서는 48년 8월 15일이 건국절이다, 이렇게 하면서 임시정부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시도가 있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이종찬> 저는 말이죠. 그분들이 걸핏하면 이승만 대통령을 48년 건국대통령이라고 내세우는데요. 이승만 대통령의 뜻도 모르는 사람들 같아요. 이승만 대통령 자신이 그런 생각을 안 했습니다. 제헌 국회 때요. 제헌 국회 개헌식 날 이승만 대통령이 사실 그 당시에 초대 국회의장이었습니다. 의장으로서의 개회사에 어떤 말씀을 하셨냐면, 오늘 우리 세운 민국은 29년 만에 임시정부가 정식 정부가 부활한 날이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그 얘기는 뭐냐면, 이미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1919년부터 써왔다, 그 당시에는 임시정부였지만, 오늘 정식 정부가 되는 것이다, 이런 말씀이거든요? 그러면 이런 역사의 연속성을 생각해야지, 역사를 뚝 잘라가지고 언제부터 시작했다, 이것은 제가 생각할 때 역사도 잘 모르시는 분이고, 헌법도 잘 모르시는 분들이고, 이승만 대통령이 어떤 분이라는 것도 잘 모르고, 그분의 주장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주장인 것 같습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지금 우리 헌법을 보면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 이렇게 정확하게 쓰여 있는데, 이 문구를 넣는 과정에서 이종찬 위원장의 역할이 컸다고 알고 있는데요. 맞습니까?
◆ 이종찬> 제가 역할을 조금 했습니다. 뭐냐면, 제헌 국회 때는 아까도 얘기한 것처럼 부활이라는 막연한 얘기를 했었어요. 그래서 이런 뜻이다, 저런 뜻이다, 이렇게 해석상의 차이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유신헌법이나 제5공화국 헌법에서는 전혀 그런 데에 대한 근거조차 없었고요. 다시 87년도에 민주화가 되면서 다시 헌법을 개정할 때는 이제는 분명히 제헌 국회 때 얘기한 것을 조금 더 분명히 해야겠다는 뜻에서 김준엽 선생이라든가, 여러 분이 말씀을 하셨어요. 저에게도 김준엽 선생이 이런 문구를 이렇게 분명히 넣지 않으면 나중에 또 혼란이 올 수가 있다, 그래서 이것을 꼭 넣도록 해라, 하는 당부를 하셔서 제가 그 당시 저는 헌법 개정위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현경대 의원에게 그 뜻을 전했죠. 그랬더니 현경대 의원이 이 문제를 다시 가다듬고 제가 또 야당 의원들에게도 설득을 했더니 야당 의원들은 그 당시에 다 동의를 해줬어요. 그래서 이것은 만장일치로 합의된 문구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의 역사를 분명히 우리 정부의 성격이라든가, 이런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동형> 임시정부 역시 우리 국회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정치의 시작이고. 그런데 임시정부가 한 때는 각 의원들, 또 독립운동가들의 이념이나 출신지, 의견이 달라서 약간 분열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우리 제헌 국회가 만들어지고 이후에도 조금 여야 갈등이 많았거든요. 위원장님도 국회의원 하셨습니다만. 그런데 지금도 그런 여야 갈등이 많은 것 같아요. 이 갈등과 분열,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요?
◆ 이종찬> 저는 꼭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임정 정신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임정 정신이라는 게 뭐냐, 자주 독립, 민주공화, 그다음에 통합입니다. 통합. 여기에는 사상과 이념과 지역과 세대, 이런 갈등을 모두 통합이라는, 우리나라를 올바르게 자주독립하고, 민주공화제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통합하자는 뜻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우리나라를 올바르게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여야 갈등의 폭을 줄여서 서로 통합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바로 임정 정신이라고 생각해서요. 저는 어제 대한민국 임시 의정원이 개원하는 날 아니었습니까? 100년 전에요. 그러니까 이제 100년 됐으니 여야도 당시 100년 전에 임시 의정원이 통합했던 그런 똑같은 마음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이동형> 오늘도 여야 의원들이 중국 임시정부 청사에 같이 방문했다고 하는데요.
◆ 이종찬> 정말 기뻐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동형> 오늘만큼은 정쟁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고요. 위원장님,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이한 올해, 특히 사회주의 사상을 가졌던 독립운동가들의 서훈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약산 선생에게 서훈을 해야 하느냐, 이런 논란인데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이종찬> 저는 서훈은 조금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우리가 통일 시대까지 접어들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서훈까지는 저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분의 역사적인 기록, 역사적인 성과, 항일 투쟁, 이것은 우리가 온전하게 정리를 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약산의 경우는요. 그 양반이 여기서도 사실은 일제 때 그냥 현상금이 제일 많이 붙은 분입니다. 그리고 일생을 정말 항일 투쟁을 위해서 몸담아서 싸웠던 분입니다. 해방 정국에서 그 양반이 여기서 견디질 못하고, 오히려 노덕술한테도 수모를 당하고요. 그래서 월북을 해서 거기서도 또한 중국 장제석 정부의 스파이라고 몰려서 말하자면 숙청을 당하고. 그러면 일생을 독립투쟁을 위해서 싸웠던 분인데, 여기서도 자리 못 잡고, 저기서도 숙청을 당하고 한다면, 그분의 영혼은 누가 과연 위로를 해주어야 하겠느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역사를 정리해서 그분의 투쟁을 했던 정열이나 이런 것을 위로해줄 수 있는 뭔가 근거는 이번에 남기자, 우리 임시정부 기념관에는 그렇게 기록을 해놓자, 이런 뜻입니다.
◇ 이동형> 그러니까 서훈은 안 되더라도 역사적 공은 올바르게 기록하고, 또 자라는 아이들에게 가르치자, 이런 입장이시네요?
◆ 이종찬> 네, 그렇습니다.
◇ 이동형> 한때는 약산이라는 이름조차 거론 못했던 시절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면 이 문제는 어떨까요? 얼마 안 남았는데, 6월 6일입니다. 역시 반민특위 습격사건이 있었던 날이거든요. 당시에 반민특위가 해체되면서 우리는 민족반역자들을 처단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렸다, 이렇게 많이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데, 위원장님. 독립운동가 후손의 입장으로서 친일파 청산 문제 관련해서는 어떻습니까? 아직도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입장이십니까?
◆ 이종찬>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 당시에 반민특위를 제대로 했으면 오늘날 많은 것을 청산할 수 있었을 텐데, 많은 것이 숙제로 남아서 이제 와서 우리가 다시 과거사를 정리하는 뜻에서 이런 일을 자꾸 가지고 나오는 것은 우리의 선배들이 그 일을 제대로 안 해서 우리가 이 문제를 처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 됐는데요. 지금도 친일파 적폐 청산, 이런 문제를 대통령이 얘기할 정도로 아직도 남아있다면 그것은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은 참으로 그 당시에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청산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동형> 100년 전 임정 요인들은 당연히 독립을 최고의 꿈과 이상으로 봤을 테고요. 그런데 그 이후로 독립이 됐습니다만, 나라가 반쪽이 됐습니다. 분단이 됐고요. 그래서 백범 선생도 항상 통일을 꿈꿨을 텐데요.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100년은 어떻습니까? 백범과 임정 요인들이 꿈꾸던 나라로 갈 수 있겠습니까?
◆ 이종찬> 사실은 백범 선생 혼자만 생각한 것은 아니고 그 당시에 임정에 참여했던 모든 분들의 꿈. 그것이 건국 강령이라는 것으로 압축됐었죠. 그런데 그 건국 강령이라는 것으로 비춰볼 때 오늘날 얼마나 그것에 충실했느냐 하면 한 번 또 우리가 반성해볼 필요가 있죠. 또 건국 강령이 너무 많은 것을 이루려고 했던 욕심난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향해서 가고 있다, 저는 그렇게 낙관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근래 우리나라가 인구 5천만 명 되는 사이즈에서 개인당 소득이 3만 달러를 이룩했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하나의 기적을 이룬 것이다, 이렇게 평가를 하고 있거든요. 저는 이 문제에 관해서 굉장히 우리가 그동안 많은 것을 했구나, 하는 것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100년 뒤에는 조금 더 속도감 있게 조금 더 발전해야겠죠.
◇ 이동형> 위원장님, 지금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은 어떻게 준비됩니까?
◆ 이종찬> 네, 설계가 끝나갑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시공사를 결정하고, 이제 들어갈 텐데요. 그동안 사실은 2019년 4월 11일 오늘, 준공했어야 옳았을 텐데, 준공하지 못한 것을 국민 여러분들께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2년 늦어졌으니까 2021년에는 꼭 국민들에게 임시정부 기념관을 선보일 수 있도록 제가 열심히 뛰겠습니다.
◇ 이동형> 네,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위원장님, 우리 자라나는 어린 세대들에게 한 마디 해주시죠.
◆ 이종찬> 네, 여러분. 젊은 세대들에게 꼭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1919년 4월 11일, 29명의 초기 임시정부 의정원이 탄생했습니다. 의정원의 주축이 뭐냐, 2030 세대입니다. 우리 국호를 결정하고, 헌장을 만드는 것이 전부 2030 세대에서 다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젊은이들에게 제가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은 지금 우리는 어른들만 따라가는 세대가 아니라 우리들도 뭔가 만들 수 있는 세대라는 것을 항상 생각하고, 많은 역할을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 이동형> 위원장님, 오늘 인터뷰 감사합니다.
◆ 이종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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