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번째 졸업 80여일 전,
공돌이 12,112일에 졸업장을 앞에 두고
11,746일만인 19.12.31. 수업을 마감하고
또 다른 학교에 입학한다♥
수고했다 인식아(♥)
다산포럼 제 979 호
늙은 여자들의 시간
이 숙 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지금까지 이룬 게 없으면 이후에도 이룰 게 없을 것이요, 지금까지 열심히 했으면 이제 그만해도 돼! ‘연로한’ 연구자들 사이에 떠도는 우스갯소리다. 주변에는 정년을 맞이하면서 ‘안하던’ 공부를 해서 대작을 내겠노라 수선을 피우는 분들이 적지 않고, 공부를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책 속에서 몸을 빼지 못하는 ‘천생 서생’도 더러 있다. 저 우스개는 이 두 부류를 염두에 둔 말일 텐데, 사실은 좀 더 잘 ‘늙는 삶’을 꿈꾸는 자신들을 향한 것이다.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이후라고 해서 이전과 크게 다를 것 갖진 않지만 그래도 새 삶을 향한 태도나 다짐, 더 나가면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용기가 필요해 보인다. 내 삶을 좀 더 의미있게 꾸리고 싶다면. 당나라 시인 백낙천(772~846)은 자신을 향한 「자경시(自警詩)」에서 이렇게 말한다.
누에 늙어 고치 되어도 제 몸은 못 가리고
벌은 굶주리며 만든 꿀 다른 이가 차지하네
알아 두세, 늙어서도 집안 걱정하는 자
두 벌레의 헛수고 같다는 것을
이 시는 내가 아니면 그 학문이 폐기될 것처럼 여기는 자, 내가 아니면 강의실이 폐쇄될 것처럼 구는 자, 세상의 ‘임무’를 놓지 못해 동분서주하는 자칭 석학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노년은 외부로 향해 있던 관심과 시선을 줄이고 나 자신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연습이 필요한 시기라고 한다. 외부의 평가나 가치로부터 자유로워야 진정한 나로 돌아올 수 있다고도 한다.
노익장 과시보다 성찰적 노년을
노년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우리 사회는 어떤 노년을 살 것인가의 문제가 새로운 화두가 되었다. 여기서 우리 선조들이 살다 간 노년도 하나의 자료가 될 수 있는데, 극단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좌의정을 지낸 심수경(1516~1599)은 나이 80에 아들을 낳았다. 남아 있던 벗들이 축하 글을 보내오자 “75세 생남(生男)도 세상에 드문데 어이하여 80에 또 생남했나”라며 축하 말고 웃기나 하라는 답시를 보낸다. 한 생명의 탄생을 희화화하는 이 노인의 의식세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그는 또 자신을 비롯해 80세가 넘어도 ‘병 없이 건강하게’ 재상으로 근무 중인 이들을 대견해 한다. 그에 의하면 92세의 송순과 89세의 오겸, 93세의 원혼, 88세의 송찬 등이 ‘여전히 현직’에 있다.
조선 사회에도 치사(致仕)라는 정년이 있었고 누구나 생물학적 나이에서 오는 한계가 있을 텐데, 이들은 무슨 이유인지 거의 죽을 때까지 벼슬을 할 참이다.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아예 낙향해버리는 ‘퇴로(退老)’의 선배들이 있는가 하면, 노익장을 과시하며 ‘죽는 그 날’까지 자리를 내려놓지 못하는 부류도 있었다. 그들끼리는 “금 항아리를 백두의 경이 차지하니 천심이 노성한 이를 중하게 여긴 것”이라며 칭송하지만, 여전히 경쟁에 급급하는 ‘젊은’ 노인의 모습이다. 늙음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라는 것은 젊음과의 경쟁이 아니라 늙음 그 자체를 성찰하라는 뜻이 아닐까.
여자들의 노년, 만족과 생성의 시간들
장계향(1598~1680)은 말과 손으로 전수하던 자신의 조리법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자 〈음식디미방〉을 저술하여 각 가정에 필사하도록 한다. 73세의 나이였다. 임윤지당(1721~1793)은 65세가 되자 평생 써 온 글들을 책으로 펴낼 수 있도록 모으고 정리한다. 이 작업의 변으로 “비록 식견이 천박하고 문장이 엉성하여 후세에 남길 만한 투철한 말이나 오묘한 해석은 없지만, 내가 죽은 후에 장독이나 덮는 종이가 된다면 또한 비감한 일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전 삶의 연장 선상에서 자신의 일을 의미화하고 정리하는 일련의 과정들에서 성찰적 노년의 모습을 본다.
지난여름, 연구 그룹의 여자들과 3박4일 일정의 여행을 다녀왔다. 연구와 강학에서 다소 여유로워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도 남들처럼’ 놀고먹는 다정한 시간을 가져보자는 취지였다. 다섯 여자들은 20년 전 혜화동 다락방에서 처음 만나 ‘여성이론 제조’에 청춘을 받친 멤버들이다. 이곳은 서구 페미니즘 이론에 취약했던 나에게 학위 이후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여 성취를 이루게 해 준 중요한 공간이었다. 읽고 쓰고 토론하고 비평하는 가운데 다투고 울고 웃는, 길고 긴 시간을 함께해왔다.
따라서 이미 본색을 다 드러낸 이들에게 여행지라고 해서 낯선 뭔가가 있을 리 없다. 회를 좋아하는 자를 위해 함께 회를 먹고, 구운 생선만 먹는 자를 위해 같이 생선을 먹으며, 삶은 계란을 좋아하는 자에게 계란을 몰아주는 등. 새벽에 산책을 하는 사람은 그대로 하고, 저녁에 동네를 거니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또 그대로 하며, 음악을 듣거나 소설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잠을 자거나. 에어비앤비 이국의 아파트에서 20년 지기 늙은 여자들의 시간은 꿈같이 흘러갔다. 돌이켜보니 나는 공부를 하러 간 것이 아니라 벗을 얻으러 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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