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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의 財력

지성유인식 2018. 9. 15. 13:53

 

이황의 아들 이재가 다섯명의 자녀에게 남긴 재산 내역. 이수건 『퇴계 이황 가문의 재산 유래와 그 소유형태』(이수건 영남대명예교수)

 

현재 이황이 남긴 분재기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황의 모두 유일한 상속자였던 아들 이준이 남긴 분재기가 남아있어 대략적인 추정이 가능합니다. 이준이 자녀들에게 분재기를 남긴 것은 1586년인데, 이황이 죽은 1570년으로부터 불과 16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계에선 이준이 남긴 분재기에 기록된 재산 내용이 이황이 남긴 재산 규모와 거의 같을 것으로 봅니다.

 

일단 토지부터 보겠습니다. 두락(斗落)이라는 단위가 지금의 면적 단위와는 달라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 될 수 있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공부했던 20년 전만 해도 조선의 토지 면적은 가늠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예를 들어 대동법에 따르면 토지 1결(結) 당 쌀 12두(斗)를 거뒀다고 하는데 ‘1결’이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결’이라는 단위가 지금처럼 면적이 아니라 당시엔 곡식의 수확량이나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다르게 적용됐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것만 정확히 알아내면 바로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연구들이 축적되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근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영훈 서울대 명예교수가 경북 안동과 고령 일대의 각종 데이터를 통해 추정한 바에 따르면 이 지역의 밭 1두락은 119.2평, 논 1두락은 105.8평입니다. 이황이 소유한 토지도 영천, 의령 등 경북에 있었으니, 큰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이를 적용해보면 이황이 남긴 땅은 약 36만 3542평 정도 입니다.

 

다음엔 노비를 보겠습니다. 이황의 손자녀들이 나누어 가진 노비는 367명(노 203명, 비 164명)인데 이 가운데 88명(노 44명, 비 44명)은 이황의 손자녀들이 결혼 때 받은 노비와 그 자식입니다. 또한 33명(노 20명, 비 13명)은 이황의 아들 이준이 처가에서 받은 것인데 이를 감안하면 이황은 대략 250~300명 안팎의 노비를 보유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노비는 어느 정도의 재산 가치를 갖고 있었을까요. 당시엔 노비의 상속 뿐 아니라 매매가 가능했는데 시세는 수시로 바뀌었습니다. 이황이 죽고 10여년이 지난 1593년의 한 기록을 보면 28세 여성 노비는 목면 25필이었습니다. 당시가 임진왜란 중이라 노비의 가격이 폭락했었음을 고려하면 이황 당대에는 더 높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생계 걱정 없이 학문에만 전념했던 지방 지주들의 재산이 평균 전답 300~500두락, 노비 100여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전답 3000두락에 노비 250여명 가까이 거느린 이황은 꽤 잘 사는 축에 속했던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여담이지만 표를 보면 다섯 자녀에 대한 재산 상속이 거의 고르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때만 하더라도 균분 상속이 큰 흐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