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 조사(祖師)는 산중턱의 움막에 살고 있으면서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는데, 그런 사실을 안 그때의 황제가 그를 국사(國師), 즉 국가의 스승으로 모시기 위해 산중턱의 조사에게로 사신을 보냈답니다.
그러나 그 선사는 첫 번째 사신에겐 자신이 늙었음을 핑계로 황제의 청을 거절하였고, 두 번째는 자신이 병들었음을 핑계로 황제의 청을 거절하였으며, 세 번째는 한 마디 대꾸도 하지 않으면서 황제의 청을 거절하였음으로....... 황제는 많은 신하와 군사들을 거느린 채 선사가 머물던 산기슭에 도착한 다음, 군사들이 그 산을 에워싸게 한 후, 선사가 산에서 내려올 것을 청하려 올라갔으나, 텅 빈 움막만이 그들을 기다렸으므로, 산을 내려온 황제는 산을 에워싸고 있던 군사들이 산기슭 둘레에 빈틈없이 불을 지르게 한 후, 미리 물을 뿌려둔 산길로 선사가 불을 피해 내려올 때를 기다렸으나 선사는 끝내 내려오지 않고, 천지를 다 태워버릴 듯 타던 산불은 사흘이나 지나서야 꺼지기 시작했답니다.
그렇게 산불이 다 꺼질 때까지도 선사가 내려오질 않자 황제는, ‘군사들이 산 전체를 에워싼 채 지키고 있었으므로 선사가 산을 빠져나갈 수 있었을 리는 없고, 그러니 선사가 굴속이나 계곡의 물속에 들어앉아 불길을 피했는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으로 군사들에게 산을 샅샅이 뒤지게 한 끝에, 산꼭대기 바위 위에 반듯하게 앉아 좌선(坐禪)한 채로 타죽은 사람을 찾을 수 있었으니, 그는 황제의 국사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타서 죽기를 선택한 선사의 시체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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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며칠 전의 모 일간지에는, 1989년부터 지금까지 29년간이나 대만 인근의 ‘나가사키가’라는 작은 무인도(無人島)에 홀로 살면서, 거의 모든 의식주를 섬과 바다로부터 해결하며 알몸으로 살아온 82세 전후의 일본인 남성이 있었는데, 그가 병이 들었음을 알게 된 어떤 사람이 ‘홀로 살던 그가 노환으로 죽을 수도 있으니 어떤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대만당국에 민원을 넣었고, 그런 민원을 받아들인 당국에서는 그에 대한 강제이주를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렇게 강제이주를 당해 요양원에 입원할 입장에 처한 그는, ‘지금 옮겨지면 섬으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텐데....... 이곳 섬에서 삶을 끝내는 것이 섬에서 살아왔던 것처럼 가장 행복한 죽음일 텐데.......’라면서 한탄하고 있다는 글이 올려져 있더군요.
한때는 술집 직원으로, 또 한때는 사진작가로 일하면서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던 그는,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는 등 ‘니키타’에서 유흥업소까지 운영했으나, 그런 자기 자신의 삶이 마땅치 않아 일용직 등등을 전전하다가, 그도 마땅치 않아 이리저리 방황하던 중 어떤 사람으로부터 지금의 무인도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처자에게 살길을 마련해준 다음 홀로 그 섬으로 들어갔었는데, 지금까지 알몸으로 살아온 이유는 그때 입고 들어갔던 옷가지라든가 소지품 등이 모두 낡아 입거나 쓰지 못하게 되었던 까닭이라고도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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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에 혼자 사는 직장인인 31세 전후인 젊은이는, 혼자 살아서 ‘혼밥’ 또는 ‘혼술’을 먹고 마신다고 불리는 요즘 우리네 561여만 명 중의 한 사람인데....... 그는 미국에서의 유학을 끝내고 귀국한 뒤 부모님과 함께 살다보니, 가족들과 서로 의지하며 돕고 사는 행복함도 좋지만....... 일상생활 속의 갖가지 일들은 물론 심지어 생각까지도 공유해야 되는, 특히 가족들과의 복잡다단한 관계 속에 얽혀, 그나마 정립하였던 자기 자신의 정체성마저도 잃어가던 입장이 못 견디게 힘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가까스로 부모형제들을 이해시킨 다음, 작은 고시원 한 칸에 세 들어 살기 시작했는데....... 때론 홀로 사는 게 견디기 힘겨울 정도로 외롭고 불편할 때도 있지만, 그러나 그런 고통은 홀로 있을 수 있음으로 얻을 수 있는 시간으로서, 정신적인 성장에 비한다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고도 하더군요.
더하면 가족들을 떠남으로 더 많은 친구들과의 소통도 기대했었지만, 만날 때마다 거의 먹고 마시고 떠들면서 덧없이 시간을 보내는 자기 자신을 확인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홀로 있음으로서 자기 자신과 세상을 살필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면서부터는 친구들과의 관계마저도 뜨막해지기 시작했다면서, 단 한 사람의 친구일지라도 바르게 가까이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면 차라리 홀로여야 성장할 수 있는 외로움이 낫다고도 하더군요.
더하여 그는, ‘좋아하는 일들은 물론 해야 할 일들을 하기도 부족한 삶으로서, 살아가는 동안은 물론 죽음 이후의 시간까지도 계산에 넣는다면, 스스로 해야 할, 좋은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라고 하면서, 자기가 ‘홀로임을 고집하는 것을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이기적이 아닌 더 훌륭하게 자아를 정립한 사람으로서, 많은 이들을 위하는 삶이 되고자 하는 것이라 이해해 주면 좋겠다.’라고도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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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예를 든 세 분 중 선사는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었던 지금으로부터 1300여년 전후의 봉건사회 사람이었고, 무인도의 일본인은 약 지금으로부터 92년 전후에 태어난 근대사회 사람이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종로의 한 젊은이는 약 31년 전후에 태어난 현대 사람으로서, 그들이 그런 삶을 사는 이유를 헤아려 볼까도 싶지만....... 그런 생각이란 제 생각일 뿐임을 저는 잘 알고 있기에, 위 세분의 삶에 대해서 역시 우리 법우님들 각각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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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맑고 건강하소서... () ...
페친 혜관스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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