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딸애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도 아무런 말이 없었고 우리는 꼭 그런 일이 없었던 사람들처럼 행동했다. 당분간 학원에 다니지 않아 일찍 돌아온 딸애가 인사도 없이 나를 지나쳤다. 울컥 나는 화가 났다. 왜 딸애가 저렇게 당당한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참아 내고 있는데 딸애는 늘 무엇이 저렇게 불만이고 당당한 걸까. 발끝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예의 없이 굴지 말랬지.”
“다녀왔습니다.”
“엄마가 지금 인사받으려고 불러 세운 줄 알아?”
“그럼 뭔데요?”
“뭐?”
“엄마가 원하는 게 뭔데요?”
아이의 물음에 목구멍이 턱 막혔다.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 건 물어본 적 있어요?”
“지금 말대꾸하는 거니?”
“이렇게 하지 마라, 이건 하면 안 된다. 엄마는 내가 아무것도 안 하는 걸 원해요?”
나는 아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원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도 없었다. 엄마가 무엇을 원해야 하나. 엄마는 원하는 게 있어야 했나. 나는 평온한 가정과 아이의 건강한 성장만을 바란다고 말하기도 헷갈렸다. 내가 원하던 것이 이것뿐이었나 싶다가, 이마저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까지 흘렀다. 아이가 현관에 들어서기 전까지 나는 아이가 징계받은 일조차 잊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네가 왜 화가 났는지 모르겠구나.”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한 것들을 죄다 한 번에 했는데, 엄마는 왜 묻질 않아요? 그 전에 한 번이라도 내 말을 들어준 적 있어요?”
“아침에 항상 대화하잖니.”
“건빵 싫다고 말한 건 기억하세요? 매년 이야기하는데 엄마는 매년 건빵만 사 오잖아요. 다른 것들도 그래요. 저는 영어학원보다 수학학원이 더 필요하다는 말은 기억하세요? 바둑을 배워 보고 싶다는 이야기는요? 그 이야기에 딴짓할 생각 말라던 것도요. 엄마는 늘 물어봤다는 사실만 기억해요. 하고 싶은 일은 하고, 불의는 참지 말라면서요. 지금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려면 엄마가 시킨 말을 다시 어겨야 해요.”
“다들 그렇게 살아.”
아이는 내 말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아이는 쉬지 않고 말을 뱉어냈다. 근래 나눈 대화의 몇 배는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그동안 아침마다 내게 했던 질문을 되짚었다. 자신은 무엇을 좋아하는데 엄마는 무엇을 좋아하느냐는 식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수많은 식사를 함께 하면서 서로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 나와 아이는 그 질문에 서로 완벽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로 넘기기에는 아이와 나 모두 사람이었다. 방문을 소리 나게 닫고 들어가 버리는 딸애에게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내가 민망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새벽까지 잠을 설쳤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딸애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기억을 되짚느라 한참을 뒤척였다. 대답에 닿을 것 같다가도 그 대답에 닿기에는 세상이 그걸 가만둘 리 없었다. 나는 그저 딸애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걸 원했다. 모두의 행복이 다를 것이 분명해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 행복에 닿는 길이 모두가 가는 방식이 아니라면 더 꺼려졌다. 그런 건 위험한 것들 투성일 터였다. 나는 결국 그날도 늦잠을 자고 말았다. 다음 날 딸애는 아침을 먹지 않았다. 대신 식탁에 짧은 메모를 남겨 두었다.
‘저 아침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요.’
마침내 어제 저녁부터 이미 내렸던 답을 확정 짓기로 했다.
얼굴이 붉어지며 열이 오르는 건 생각보다 꽤 신경을 긁는 일이었다. 나부터 변하기로 마음먹었다. 노트를 펼쳐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한쪽에 내 이름 ‘한정희’를 적었다. 나머지 한 공간에는 딸애의 이름 ‘강다영’을 적었다. 양쪽 모두에 건강과 행복을 적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채워 나갔다. 내가 해야 할 일도 채워 넣었다. 우선 딸의 사춘기와 나의 갱년기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당장 산부인과에 들러 검진을 받고, 갱년기임이 틀림없는 이 증상들을 외면하지 않아야겠다. 가서 이 두려움에 맞서야겠다. 적어도 나는 딸애에게 그렇게 가르쳤다. 고작 노트의 반쪽을 채우는 데 한참이나 걸렸지만, 이제는 물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딸애가 돌아오면 이 노트를 건넬 생각이었다. 빳빳한 노란색 노트를 덮고 일어났다. 지금 산부인과를 다녀올 생각이었다.
나는 여전히 사람도 차도 없는 신호등을 지키고 서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이런 것들을 지키고 규칙에 맞춰 사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하릴없이 신호등을 바라보는 일 말고 주변에 차가 오고 있는지 둘러봤다. 오늘도 우회전 차량이 도로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고 뒤쪽에서 바쁜 뜀박질 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정신없이 길을 건너려던 여자를 불렀다.
“저기요! 차 와요!”
내 목소리에 여자는 발걸음을 멈췄다. 여자의 앞으로 차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고, 신호는 다시 파란불로 바뀌었다. 여자는 그저 내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서 다시 뜀박질을 시작했다.
병원을 다녀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아무 과자나 건빵이 아니라면 좋았다. 잔뜩 늘어놓고 딸애가 좋아하는 걸 골라가게 할 셈이었다. 오늘도 조용히 들어선 편의점에는 그 한량이 와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저번에 사장이 하는 말 들었잖아!”
“저는 사장님이 아니잖아요.”
두 마디만 들어도 상황을 파악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이는 여전히 겁을 잔뜩 집어먹은 것 같았고 핸드폰을 꼭 쥔 손은 작게 떨리고 있었다.
“사장 불러!”
한량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사실 저런 말이 위협이 될 것이라고, 다이의 두려움을 해소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상황을 모면하고 비껴가기에 그럴듯해 보여서 한 말이었다. 나는 여전히 다이를 보며 다영이를 떠올렸고 이제는 전과 같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손님.”
“마침 사장님 오셨네. 저번처럼….”
“나가세요.”
“뭐요?”
“나가시라고요. 경찰 부르기 전에 나가세요.”
그 전에 밀린 돈은 받지 않을 테니 다시는 오지 말라는 말에 그는 씩씩대며 나가 버렸다. 다이는 되레 나에게 위로를 건넸다.
“사장님, 그래도 동네 사람인데.”
“저런 사람들은 고객으로 대하면 사람을 만만하게 봐.”
나는 정말로 다이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다음엔 그냥 저 사람이 오거든 CCTV 위치를 가리키며 경찰 부르라고 덧붙였다. 나는 여전히 한량과 같은 사람이 또 편의점에 찾아올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다이는 전보다 편안한 얼굴이었다. 같은 말이지만 분위기는 분명히 다르다. 내 말 한마디가 따뜻한 두유 따위보다 나을 거라고 감히 생각했다. 나는 다이에게 좋아하는 과자를 물었다.
“저는 나초 좋아해요.”
“다영이가 좋아할 과자가 짐작이 안 가서 물어봤어.”
“다영이가 따님이세요?”
다이의 말에 나는 또 얼굴이 붉어졌다. 갱년기 탓만은 아니었다. 문득 다영이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였다. 아이 혹은 딸애로 부르면서 정작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종류별로 과자를 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건빵도 잊지 않고 챙겼다. 나초 한 봉지는 다이에게 건네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 딸애의 이름을 불러야겠다. <끝>
전북일보 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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