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훈

우리가 농사에서 얻는 교훈

나는 새 2016. 10. 18. 08:40

다산연구소 제 827 호

농사가 내게 가르쳐 주는 것

김 정 남 (언론인)

“남새 밭을 가꾸기 위해서는 땅을 반반하게 고르고 이랑을 바르게 하는 일이 중요하며 흙을 가늘게 부수고 깊게 갈아 분가루처럼 부드러워야 한다. 씨는 항상 고르게 뿌려야 하며 모종은 아주 성기게 해야 한다. 아욱 한 이랑, 배추 한 이랑, 무 한 이랑씩 심어두고 가지나 고추 등속도 따로따로 구별하여 심어놓고, 마늘이나 파 심는 일에도 힘쓸 일이다. 미나리도 심을만한 채소다. 또 한여름 농사로는 참외만 한 것도 없느니라.”

 

다산(茶山)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남새 밭 가꾸는 법을 자상하게 일러주고 있다. 이 편지에서 다산은 국화 한 이랑은 가난한 선비의 몇 달 식량이 될 수 있다면서 이 밖에도 생지황, 끼무릇, 천궁 같은 것이나 쪽나무나 꼭두서니 등에도 마음을 기울일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를 보면 다산은 부업으로서의 농사, 또는 근교 농업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말 그대로 실학자(實學者)였다. 오늘날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주변, 곧 다산의 고향 언저리가 서울시민들에게 신선한 유기농 먹거리를 제공하는 농업단지가 된 것 역시 결코 우연은 아닌 것 같다.

 

농사는 건강법이자 수양법

 

다산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시골에서 낳고 자란 탓인지 나에게는 도시에 나와 살게 된 바로 그 시점부터 농사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이 떠나지 않았다. 특히 울 안에서 푸성귀를 가꾸는 텃밭농사라도 짓고 싶어, 내 사는 곳 둘레의 아파트 부지나 공터 등 자투리땅을 찾아 작은 밭을 일구어 채마를 심곤 했다. 그때마다 땅 주인이나 관공서로부터 작물을 심지 말라는 핀잔과 독촉을 받고, 농사일을 거두어야 했다. 그러다 몇 년 전, 야트막한 동네 뒷산 양지바른 산 중턱에 밭을 개간해 농사를 짓고 있다. 다행히 땅 주인의 양해까지 얻어 적어도 가까운 시일 안에 쫓겨날 염려는 없는 셈이다.

 

새벽이면 일어나 음식물쓰레기를 주머니에 담아 들고 등산 겸 농사일에 나선다. 일주일에 한 번 가서 농사짓는 주말농장 같은 것은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 하루에 한 번, 그것도 새벽에 가서 땅을 파고 김을 매야 직성이 풀린다. 작물도 주인의 발소리를 알아듣는다 하지 않는가. 밭에 가면 내 손이 가야 할 데는 얼마든지 있다. 오늘 이 일을 해야지 생각하고 갔는데, 전혀 엉뚱한 일을 하고 올 때도 있다. 이렇게 매일같이 밭에 가 일하는 것이 이제는 나의 일상이 되었고, 그것은 또한 나의 유일한 건강법이기도 하다.

 

부추는 한번 심어놓고 적당한 크기로 자랐을 때 베어내고 그 위에 복합비료를 한 줌 뿌려주면 금방 다시 올라온다. 호박잎은 멀리 뻗어 나가는 그 순과 그로부터 두 번째에 있는 연한 잎을 따는 것이 좋다는 어릴 적 어머니의 가르침을 지금도 따르고 있다. 아내는 손이 많이 가는 한해살이 채소보다 한번 심어놓으면 손이 덜 가도 되는 여러해살이 작물을 심으라고 성화다. 그래서 지금은 도라지와 더덕에, 밭 가장자리로는 옥수수와 아주까리, 우엉과 돼지감자를 둘러 심었다.

 

내 농사는 엄청나게 풍성한 수확으로 시장에 내다 팔 정도는 못되지만, 작물에 따라 자급할 만큼은 되는 것이 적지 않다. 풋고추와 파, 부추 같은 것은 집에서 떨어지지 않을 만큼은 되고, 여름에 열무김치 몇 번은 담가 먹을 수 있으며, 잘하면 가을 김장 때 알타리 김치나 동치미 무는 내가 농사지은 것으로 충당할 때도 있다. 호박은 거름이 부족해 크고 잘생긴 늙은 호박을 만들기는 힘들지만 호박잎은 가까운 이웃들과 나누어 먹을 만큼은 딸 수 있다. 멀칭을 하거나 농약은 치지 않지만, 복합비료는 1년에 1~2포 정도를 쓴다. 이만하면 감히 무공해 유기농산물이라 내세울 수 있지 않을까.

 

밥은 나누어 먹는 것

 

농사에는 사람의 노력과 지혜가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순풍우조(順風雨調)해야 한다. 가뭄이 지속되면 씨가 싹을 틔울 수가 없고, 비가 질척거리면 작물이 남아날 수가 없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 농사짓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된 까닭이다. 흉년이 들어도 그들은 누구를 원망하거나 안달하지 않는다.

 

내가 어설픈 농사를 지으면서 또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면 사람이나 동물과 식물이 모두 다 천지 안에 하나라는 사실이다. 보약은 사람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채소도 보약을 좋아한다는 것을 농사를 지으면서 알았다. 원주 무위당 장일순의 말처럼 천지는 나와 더불어 한 뿌리요,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한 몸이라는 것을, 그리고 천지만물은 막비시천주야(莫非侍天主也)라, 천지만물 가운데 한울님을 모시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농사를 통해 비로소 깨닫는다.

 

또한 농사는 나누어 먹기 위해 짓는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오늘 따온 채소는 오늘로 나누어야 한다. 아무리 작은 농사도 저 혼자 먹으려고 짓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쌀도 저 혼자 먹기 위해 농사짓지는 않는다. 나누어 먹기 위해 짓는 것이다. 전대미문의 두만강 수해로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는 14만 북한 이재민에게 남아도는 쌀을 보냈으면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 밥은 나누어 먹어야 한다. 그것이 농심이요, 천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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