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보고 싶은 것 중의 하나!
노르웨이 오슬로^♥^
가장 윗 사진은 원불교 익산총부 박물관 앞에
있는 공모 당선작품이고,
그 아래의 사진은 김치군의 내 여행은 여전히 ~ing에서
가져왔다.
그런데 두번째 사진을 보는 순간 사상과 철학의 공유를
느꼈고, 저 17.3m의 통 화강석에 121명의 군상이
위(?)를 향해 엉켜있게 조각한 비겔란님의 숫자로 보는
철학은 무엇일까?
즉, 기단과 조각 높이의 숫자의 의미와
하늘을 향해 조각된 군상에 표현된 121이란 숫자의 의미는?
아돌프 구스타프 비겔란(생1986-졸1943)
오슬로의 프로그네르 공원에 있는 종합적인 야외 조각 전시장인 분수 광장으로 유명하며, 지금까지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조각가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부모는 농부였으며, 그는 14세 때 목세공가의 제자가 되었다. 1889년 첫 작품을 발표했으며, 초기에는 오귀스트 로댕의 영향을 받았지만 곧 자신의 독자적인 사실주의 양식을 개발했다.
그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으며, 그는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 대부분이 인물의 흉상과 부조인 초기의 조각들은 현재 오슬로의 비겔란 미술관에 있다.
후기에 만든 기념비적 작품들은 오슬로에서 가장 큰 공원에 모여 있는데, 그는 이 공원의 입구와 다리, 분수, 원형 계단, 모자이크 모양의 미궁과 그야말로 숲을 이루고 있는 인물 석상들을 비롯해 200개가 넘는 모든 조각 작품들을 설계했다.
그 한가운데에는 270t에 달하는 단단한 화강암 덩어리 하나로 조각해놓은 17m 높이의 모놀리스를 세웠다. 이것은 121개의 조각상으로 이루어진 36개의 군상으로서 모두 인생에서의 각 시기들(탄생·유년기·청년기·장년기·노년기·죽음)을 다루고 있다
2015.09.04 05:48
오슬로의 프로그네르 공원에 있는 종합적인 야외 조각 전시장인 분수 광장으로 유명하며, 지금까지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조각가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부모는 농부였으며, 그는 14세 때 목세공가의 제자가 되었다. 1889년 첫 작품을 발표했으며, 초기에는 오귀스트 로댕의 영향을 받았지만 곧 자신의 독자적인 사실주의 양식을 개발했다.
그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으며, 그는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 대부분이 인물의 흉상과 부조인 초기의 조각들은 현재 오슬로의 비겔란 미술관에 있다.
후기에 만든 기념비적 작품들은 오슬로에서 가장 큰 공원에 모여 있는데, 그는 이 공원의 입구와 다리, 분수, 원형 계단, 모자이크 모양의 미궁과 그야말로 숲을 이루고 있는 인물 석상들을 비롯해 200개가 넘는 모든 조각 작품들을 설계했다.
그 한가운데에는 270t에 달하는 단단한 화강암 덩어리 하나로 조각해놓은 17m 높이의 모놀리스를 세웠다. 이것은 121개의 조각상으로 이루어진 36개의 군상으로서 모두 인생에서의 각 시기들(탄생·유년기·청년기·장년기·노년기·죽음)을 다루고 있다
2015.09.04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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