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견뎌내는 위대함 |
김 영 죽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
작년 이맘때 일 것이다. 필자는 실학산책을 통해 “여행”에 관한 단상을 서툴게 엮은 바 있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볕도 적당한 가을. 지루하고 피곤했던 일상에 신선한 자극을 주면 어떨까 하는 권유이자 스스로의 바람을 기탁한 것이었다. 그 계절이 한 바퀴 돌아 다시 찾아왔다. 일상을 벗어나고픈 욕구는 여전히 존재한다. 왜 그럴까. 이와 동시에 나 또는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강하게 원한다기보다 평범한 일상의 반복을 견뎌내지 못하는 게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권태, 지루함, 무료함은 꼭 깨뜨려야 할 요소들일까도 의심스럽다. 자극을 찾는 사람들 생각해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매일매일 자극을 찾는 것에 집중한다. 이는 스마트폰의 실시간 정보를 확인하는 이들, 게임에 몰두하는 아이들, 과장된 드라마, 강한 언어표현 등의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그야말로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이 지적했던 “권태를 두려워하는 삶”이 여실히 느껴지는 부분이다. 10년 전의 일상은 지금보다 지루했으며, 300년 전 어느 선비의 일상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권태로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상으로 찾아드는 지루함, 무료함을 그들보다 더 못견뎌하고 불안해한다. 무언가 새롭고 특별한 자극이 있어야 가치가 있다는 선입견은 실생활뿐만 아니라 사고(思考)에도 영향을 미친다. 필자는 얼마 전, 19세기 한 조선 시인의 친필 시고(詩稿)를 접할 기회를 얻었다. 전공자의 입장에서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주어진 큰 행운이기도 했다. 시인의 소소한 일상이 일기처럼 시에 담겨 있었는데,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은근히 마음에 기대가 이는 것이었다. 이 시인의 생애가 감격적이고 격정적이었으면 하고 말이다.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갔지만, 시인의 수많은 ‘만음(漫吟)’과 ‘희음(戱吟)’ 속에서 단조로움을 이겨내는 방법을 배우게 된 것은 무엇보다 소중했다. 단조로운 일상의 무한 변주 간서치(看書癡), 즉 책만 읽는 바보로 잘 알려진 이덕무는 다작을 남겼는데, 이 가운데는 평범한 일상의 즐거움을 섬세한 시선으로 묘사한 작품들이 많다. 요즘처럼 가을이 완연한 날 그는 시를 한 수 지었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반복되는 생활의 지루함과 심심함을 이겨내는 힘이 부족한 건 명백한 사실이다. 자극이 무조건 나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삶을 환기시켜 주는 긍정적 요소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일상의 소중함에 기반 하지 않은 자극추구에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요즘은 스스로 힘들게 찾지 않아도, 외부적 쾌락이 쉽게 주어지는 세상이다. 300년 전의 그들은 ‘즐겼던’ 평범함을, 우리는 견뎌내기도 힘들다. 아이러니하게도 멀리로 향해있던 시선을 거두어 주변으로 돌리면 즐거움의 범주는 배가 된다. 아정(雅亭) 이덕무가 원추리 잎새에서 귀뚜라미를 발견했듯이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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