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이 진화하고 있다. 독재정권 타도의 상징이었던 1987년 6·10항쟁은 2008년 민주주의 위기에 맞서는 비폭력 촛불시위로 나타났다. 2011년 6·10은 고액 대학등록금으로 촉발된 내 삶의 문제 해결로 화두가 모아지고 있다. 거리에 모인 학생·시민들의 목마름과 고통이 ‘독재→불통→삶’의 위기로 바뀐 것이다.
87년 6월항쟁의 구호는 ‘호헌 철폐’ ‘독재 타도’였다. 서울대 박종철군이 고문치사로 숨지고 연세대 이한열군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면서 대학생과 넥타이부대가 거리로 쏟아진 것이다. 그해 6월10일 전국 18개 도시에서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가 열렸다. 권위주의 정권에 박탈당한 정치적 기본권과 자유를 되찾자는 요구였다. 그날은 한국 민주주의의 전환점이었다.
그로부터 21년이 흐른 2008년 6월, 민주주의 역주행에 대한 저항 물결이 다시 일었다.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강행하고, ‘고소영 인사’와 ‘한반도 대운하’ 등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다. 남녀노소가 비조직적·비폭력적인 촛불 물결을 이뤘다. ‘촛불소녀’는 자발적이고 발랄·유쾌한 저항의 상징으로, 광화문에 컨테이너로 쌓은 ‘명박산성’은 불통의 증거로 매김됐다. 6월10일 전국 40여곳에서 이뤄진 촛불행진에는 100여만명이 참여했다. 당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만난 주부 김언영씨(33)는 “민주적 절차로 뽑힌 대통령일지라도 이렇게까지 국민의사를 무시하는 정책을 한다면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3년이 지난 6월, 시민들은 ‘나의 궁핍해진 삶’을 말하고 있다.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주도로 지난달 29일부터 서울 광화문에서는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대학생들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비싼 등록금의 조건 없는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등록금이 취업난-비정규직-늦어지는 결혼-저출산으로 얽히는 구조적 악순환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30~50대 시민도 합세하면서 삶의 문제는 세대·계층을 뛰어넘는 이슈와 소통로가 됐다. 9일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만난 황장하씨(24·건국대)는 “87년 6·10 때 선배들은 ‘파쇼 타도’를 외쳤지만, 그 아들딸인 우리들은 ‘최저임금’에 관심 갖고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삼포 세대’가 됐다”고 말했다. 87년 6월항쟁에서 민주주의 절차는 어느 정도 실현됐지만
민생의 위기, 사회경제민주주의는 여전히 갈 길이 적 멀다는 항변이었다.
대학생과 시민단체들의 ‘반값 등록금’ 집회가 확산되고 이성규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집회 자제를 당부한 가운데 현직 경찰 간부가 경찰의 유연한 대응을 촉구하고 나서 눈길을 모으고 있다.
경찰청에 근무하는 ㄱ경정은 지난 7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반값 등록금 집회를 보는 경찰관의 심정’이라는 글에서 “경찰은 집회를 여는 이들의 주장이 사회적으로 중요한지 판단해 그에 따라 달리 대응해야 한다”며 “사회적으로 중요한 주장을 하는 집회에서는 집회에 수반되는 불편에 대한 공동체의 수인한도는 더 높아진다. 즉 집회의 사회적 순기능이 역기능보다 우월하므로 그것을 주장하고 항의할 자유는 한층 두텁게 보호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 등록금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한 뒤 “경찰이 사소한 법규 위반을 문제 삼아 집회 자체를 어렵게 만들거나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다면 그런 경찰력 행사를 정당하다고 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ㄱ경정은 구체적으로 “경찰이 획일적 잣대로 불법과 합법을 갈라 기계적으로 대응한다면 (경찰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사회적으로 중요한 현안에 대한 여론의 형성과 전달을 가로막는 결과를 불러온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더 중요한 문제는 언론이 경찰과 시위대 간 충돌을 중심으로 사안을 다루게 되면서 본질이 흐려진다는 것”이라며 “그 결과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소모적 갈등만 증폭되고, 문제를 해결할 권한도 책임도 없는 경찰이 모든 잘못을 뒤집어쓴다”고 지적했다.
평소 블로그를 통해 경찰 관련 현안에 적극 목소리를 내 온 ㄱ경정은 “여러분의 고생이 반드시 결실을 보기 바랍니다. 그 결실은 말할 것도 없이 살인적 대학 등록금 문제의 즉각적인 해결이죠. 직업상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 제 직업은 경찰관입니다”라고 글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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