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민초

善惡

지성유인식 2010. 12. 29. 04:58

염재호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요즘 우리 사회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보수와 진보의 치열한 대결 속에 나타나는 절차적 합리성으로 보인다. 선진 사회로 갈수록 이념의 차이는 있어도 상대를 인정하는 관용이 전제된다. 이들 사회에서는 대립과 갈등이 있으면 합리적 절차에 의해 상대를 설득하고 문제를 풀어간다. 이러한 절차적 합리성이 결여되면 아무리 이념이 같은 집단이나 개인이라고 하더라도 비난을 면치 못한다.

 

대립과 갈등은 합리적 절차로 풀어야

보수이건 진보이건 이념은 개인의 가치와 선호의 문제이다. 개인의 가치와 선호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이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수 없다. 우리가 어느 사람이 빨간 색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이 파란 색을 좋아한다고 그것을 비난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 이념의 선호에 매몰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을 강요하고 있다. 절차적 합리성을 추구하다 보면 상대방의 전략과 전술에 빠져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초조감의 논리가 팽배해 있다.

 

결국 절차적 합리성이 무시되고 벌거벗은 투쟁의 논리만 남게 된다.어린 시절 교회에 다니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인간이 먹은 것이 무슨 그리 큰 죄인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나님처럼 선악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는 명철한 사고를 인간이 갖게 되면 얼마나 좋은 것인가,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왜 선악과로 인해 인간에게 죄가 생기게 되었고 이로 인해 죽음에 이른다고 하는가 의문이 들었다.

 

기독교에서 선악과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인간이 신처럼 선과 악을 절대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오류이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의 후예 카인이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억울하다고 판단하고 동생 아벨을 죽인 것이 인류 죄악의 시초라고 본다.

 

오해와 편견과 살인과 전쟁은 결국 자신만이 선하고 자신의 판단만이 옳다는 독선에서 나온다. 이처럼 절대적 영역에 속하는 선과 악을 자신이 구분할 수 있다는 오만이 바로 우리 사회 죄악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비주류 경제학자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허버트 사이몬은 합리성에는 내용적 합리성과 절차적 합리성이 있다고 했다. 내용적 합리성은 절대적인 진리나 가치에 관련된 진실을 말한다. 하지만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진리를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합리성은 절차적 정당성을 근거로 한 합리성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다수결 원칙이 최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중요한 문제해결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념 대립을 내세워 편만 가르고 절차 무시

논리실증주의 대가인 칼 포퍼도 과학의 상대성을 주장한다. 과학은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야 과학이지 언제나 절대적인 진리로 남게 되면 이 것은 신앙의 영역이지 과학의 영역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사회에서 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서구사회에서 추구하는 상대방에 대한 인정과 포용의 정신이다. 어느 면에서 보면 우리 사회의 갈등은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의 대립에서 나타난 갈등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념의 대립을 전제로 하여 사회적 논의 구조에서 절차적 합리성이 무시되고 있다. 오로지 우리 편인가 아닌가 하는 판단 기준만 있지 합리적으로 설득하고 절차를 지키려는 노력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