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가 6세기 두만강 동쪽의 연해주 남부까지 진출했음을 보여주는 고고학 증거가 처음 나왔다.
6일 동북아역사재단 내부 자료 ‘2008년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 성 한-러 공동 발굴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동북아역사재단이 2008년 8월 발굴한 연해주 남부의 크라스키노 발해 성 유적이 늦어도 530년부터 사용됐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530년은 발해 건국(698년)보다 168년 앞서며 고구려 멸망(668년)보다 138년 이른 시기다. 크라스키노 발해 성 유적은 발해의 62주 중 하나인 염주(鹽州) 관할 지역으로 바다를 통해 일본 신라와 교역하는 거점이었다.
지금까지는 고구려가 연해주에 진출했다는 문헌 기록이 없고 연해주 지방에서 고구려 유적이 발견되지 않아 고구려의 동북 지역 경계가 연해주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동북아역사재단은 2월 공식 보고서를 낼 예정이다.
발굴 책임자인 동북아역사재단 김은국 부연구위원은 “지난해 크라스키노 성 유적의 5년차 발굴 과정에서 유적 서북부의 37구역 주거지 터 최하층 바닥의 목탄을 채취한 뒤 최근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원 정전가속기연구센터에 의뢰해 가속기질량분석(AMS)으로 측정한 결과 이 ‘문화층’(당대 문화의 흔적이 있는 지층)의 연대가 530년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문화층은 크라스키노 유적에서 발굴된 최하층으로, 지금까지 확인된 유적의 가장 이른 연대를 알려준다.
김 연구위원은 “크라스키노 성은 여러 시대의 유적이 아래위로 겹쳐 있어 기존 건축 시설을 활용하며 오랜 시간 생활 전통이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 유적은 고구려 시대부터 존속해 오다가 발해 성으로 개축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발굴 결과 고구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발해의 시루, 막새기와, 온돌 등이 출토됐기 때문에 6세기의 이곳에서 고구려 아닌 다른 문화는 생각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연해주 지역의 발해 유적에서 막새기와가 발견된 것은 14년 만이다. 발굴 결과 유적 서북부에서 발해시대의 사원과 온돌 주거지 형태도 확인됐으며 대형 항아리, 놀이용 말, 낫, 수레바퀴, 낚싯바늘 등 다양한 발해 유물이 나왔다. 주거지 터에서 철판을 이어 만든 갑옷 조각도 발견돼 신분이 높은 발해 사람이 살았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형 항아리 내부에서는 ‘知(지)’, ‘道(도)’자로 추정되는 명문도 확인됐다.
동북아역사재단은 6월 한-러 공동 발굴에서 유적의 최하층을 정밀 조사하면 고구려 유적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송기호(발해사) 서울대 교수는 “그동안 두만강 동쪽 20km 거리까지만 고구려 유적이 나왔는데 이번 분석 결과로 연해주에서 고구려 유적이 나올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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