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영 신(국어문화운동본부 이사장)
작년 미국의 한 법학 교수가 쓴 교양 역사서가 미국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중국계 미국인인 에이미 추아라는 여성이 쓴 '제국의 미래'(원제목은 Day of Empire)가 그 책인데,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것은 관용이라는 단어가 개인적인 가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사회가 갖추어야 할 가치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필자에 따르면 국가가 관용이라는 무기로 다른 민족이나 사회를 받아들일 때에 부와 지배적 권력을 유지하여 세계적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고, 관용을 버리고 독선적이고 배타적으로 바뀌어 이민족을 차별하고 다른 사회의 가치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 그들이 이룩한 부와 권력이 제국과 함께 사라졌다는 것이다.
언어가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풍습이 다른 민족을 포용하던 로마와 몽골이 세계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고, 수많은 이민자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춘 미국이 세계 제국을 이룩한 것은 다른 요인과 함께 이 관용 정책 또는 이질적인 것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정책을 유지한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이질적인 것을 통합하고 아우를 수 있는 사회는 분명히 큰 사회일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생겼다. 우리는 얼마나 관대한 나라, 얼마나 관대한 사회를 만들었으며, 자기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얼마나 관대한 사람들인가?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더 발전되고 영향력이 있는 나라로 발전하려면 아무래도 우리가 관대함을 갖추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은 서구인이나 심지어 일본인에게서까지 차별 대우를 받으면서도 우리보다 못하다고 느끼는 동남아인들을 그대로 멸시하고 차별한 것이 사실이다. 돈으로 신부를 사오면서 그들의 인권을 유린하던 사람들이 우리였고, 우리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를 백안시하고 그들의 능력을 높이 사려는 적극적인 노력도 하지 않은 것이 우리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서구인이나 일본인보다 더 관대한 민족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별 희망이 없는 것이 사실 아닌가?
그런데 더 한심하고 걱정스러운 것은 정작 우리 가운데에서 ‘나의 반대편’을 향해 내뱉는 불관용이 극한에 이르고 있다는 점에 있다. 며칠 전 군사 전문가라고 하는 지 아무개가 나서서 한 젊은 연예인의 선행을 극우적 상상력으로 비꼬는 것을 보았다. 지 아무개와 같은 방식으로 이 연예인을 비난한 누리꾼들이 많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처럼 우리는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행위라면 선행마저도 악의적으로 손가락질할 정도로 옹졸한 사람들이 되어 있는 셈이다. 우리가 얼마나 옹졸한 사람들인지 증명해 주는 사례가 또 하나 있다. 인터넷에서 ‘미네르바’라는 이름으로 글을 올리는 사람이 비관적인 경제 전망을 내놓아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였다는 이유로 그의 입에 자물쇠를 채우려 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점이다. 정부 당국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현 정부와 코드를 맞추고 있는 ‘보수 우익’ 인사들까지 나서서 그를 협박한 모양이다.
오래 전부터 우리에게는 위대한 사람도 없고 훌륭한 사람도 없었다. 한 사람을 위대하게 자랄 수 없도록 끊임없이 견제하고 딴죽을 거는 옹졸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지천으로 널려 있기 때문이다. 같은 편이면 다 좋고 다른 편이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옹졸한 사람들의 판단력이다. 이런 우리가 북한 동포를 포용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고, 동남아인을 관대하게 받아들일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소인배들의 사회에서 소인배의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소한민국’ 사람들이 아닌가?
한때 욱일승천하던 대영제국, 대일본제국을 본떠 우리도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를 써 본 일이 있었다. 불과 13년이란 짧은 기간 존재하다가 망해 버렸지만, 그 국호의 연장선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대영제국이 미국이나 인도 같은 식민지를 품지 못해서 몰락했고, 대일본제국이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민족주의와 국수주의로 몰락해 버렸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정 대한민국을 얼마나 성장시킬 수 있을까? 말만 대(大)자를 붙였을 뿐 실제로는 나만 잘 살 수 있다면 소인배의 ‘소한민국’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건 아닐까? 만일 우리가 정말로 ‘대한민국’을 건설하려 한다면 먼저 우리 안의 적대 세력에게 관대함을 보일 수 있는 대인의 풍모를 갖추어야 하고, 우리 사회에서 삶을 유지하고자 우리 땅에 들어온 수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관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선행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미네르바’라는 특정인의 입을 틀어막으려 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여론을 잠재우려는 수작을 하는 등의 속 좁은 짓으로는 ‘대한민국’을 건설할 수 없다.
북한을 향해 고무풍선을 날리는 사람도 한국인이고, 개성공단에서 공장을 돌리는 사람도 한국인이다. 이처럼 이익의 양극에 서 있는 사람들을 하나로 아우르지 못하면 우리는 ‘대(大)한민국’을 논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된다. 경제난으로 더욱 살기 어려워진 요즘 우리 안에 새삼스럽게 반공주의나 애국주의 광풍이 일어나 우리가 배타적이고 독선적이고 차별적인 분위기에 휩쓸리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어려울 때일수록 더 너그러워지는 연습을 시작해서 머지않아 다가올 좋은 시절에 명실상부한 ‘대(大)한민국’을 건설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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