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형제

지성유인식 2008. 12. 5. 13:59

부모가 자식을 아끼는 것은 모든 동물이 다 그러하다. 수만 킬로미터를 달려 제가 났던 고향으로 돌아와 새끼를 낳고 죽어가는 연어의 삶을 보면 숙연해진다.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있으랴. 내리사랑이라,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 가며 자기 입에 든 음식도 얼른 빼내 먹인다. 부모의 자식사랑은 까닭이 없고 이유도 없다.


부모의 사랑이 위에서 아래로 쏟아진다면, 형제간의 정은 수평으로 오고간다. 동기연지(同氣連枝)라, 형제란 “부모의 기운을 같이 얻어 태어난, 한 나무의 이어진 가지”라는 말에도 그런 뜻이 들었다. 형제간의 정이 수평적으로 오간다지만 아무래도 형은 위요 아우는 아래다. 먼저 나고 뒤에 났기 때문이다. 하여 형은 평생 의젓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동생에게 양보하기를 강요받고, 아우들을 아끼고 배려하도록 훈련받는다. 고작 두세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형제는 친구나 진배없다. 또 그만큼 서로 다툴 경우도 많지만, 그 책임과 꾸중은 형에게 떨어진다.


그렇다. 형의 아우에 대한 사랑은 훈련된 습관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 방향은 역시 형으로부터 아우에게로 내리흐르는 편이고, 아우는 형에게 기대기가 쉽다. 아우는 형에게 해준 것을 기억할지 몰라도, 아우에게 베푼 것을 기억하는 형은 없다. 부모사랑만큼은 아니어도 형의 아우사랑 역시 까닭이 없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이 사랑도 만만하지 않다.


<옥이이모> <서울의 달>로 유명한 작가 김운경의 드라마 중에 <형>(1992)이라는 게 있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그야말로 적빈에 몰린 두 형제의 일생을 그렸다. 동생은 영악하고 똑똑해서 끝내 성공하지만, 형은 시골에 남아 머슴을 살면서도 오로지 동생만을 귀애하는 캐릭터였다. 평생을 농투성이로 살던 형은 살림이 펴질 만하자 그만 암에 걸리고 만다. 내내 앞만 보고 질주하던 동생은 그제야 가없이 사랑을 베풀어준 형의 자리를 되새기고, 목메어 형을 부르는 그런 줄거리였다.


노건평씨가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동생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을 때 왜 이 드라마가 떠올랐던 것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버지처럼 의지했던 형이라는 기사 때문이었을까. 동생은 출세하고 형은 시골에서 농사꾼으로 사는 구도의 공통점 때문이었을까. 건평씨는 동생이 대통령일 동안 내내 힘들었을 것이다. 본인보다 잘나고 똑똑한 동생을 둔 형의 일상은 겹으로 어려운 법이기 때문이다.


형이 아우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게 되면, 형의 자리는 텅 비어 버린다. 친구나 동료 사이라면 사과가 관계를 도탑게 만드는 계기가 되지만, 형제간은 도리어 뜨악해져 버린다. 장자가 말했던가. “장터에서 남의 발을 밟으면 사과하지만, 형의 발을 밟으면 말없이 손만 내밀면 되는 것”이라고. 하물며 형이 동생에게 사과하는 처지가 되면 이건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태가 된다.


형으로부터 사과를 ‘당하는’ 동생의 처지도 궁박하기가 이를 데 없다. 유구무언이라, 사과를 받을 수도 없고 또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참으로 묘한 처지에 빠지고 만다. 형의 아우에 대한 사과는 입으로 내뱉는 순간 서로의 등줄기에 땀이 흐르게 만드는 힘겨운 사태가 된다. 형제간이란 그런 것이다.


건평씨가 죄를 지었다니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하나 궁박한 지경에 빠진 동생을 구해주지는 못할망정 동생에게 사과해야 하는 처지에 몰린 형의 모습은 겹으로, 곱으로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그에게 손가락질하지 말았으면 한다. 세상의 모든 형들은. 그리고 모진 소리 내뱉지 말았으면 한다. 세상의 모든 아우들도. 우리 모두 다 그처럼 형이거나, 형을 가진 동생이기 때문이다.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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