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훈

아(亞)에 만족할 줄 알자

지성유인식 2008. 11. 3. 02:39

다산이 선배로서 가장 존경하고 따르던 인물에는 두 어른이 있었습니다. 경륜과 학문 및 실천력으로 모두의 존경을 받았던 번암 채제공과 해좌 정범조였습니다. 권철신·이가환·이기양 등 뛰어난 선배들을 따르고 존경하지 않은 바는 아니었지만, 그 모든 분 중에서 특히 번암·해좌에 대한 숭앙심은 아주 남달랐습니다. 번암이야 역사적으로 너무 유명하고 세상에 널리 알려진 분이지만 해좌 정범조는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도 못한 분입니다.

 

해좌는 우선 다산의 가까운 집안 아저씨(族父)였습니다. 강원도 원주의 법천(法泉)출신으로 평생에 가장 막역한 친구가 바로 번암 채제공이었습니다.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이 형조판서와 홍문관 제학(提學)에 이르렀고 시문(詩文)에도 뛰어난 일세에 명망이 높던 분입니다. 80세로 세상을 떠난 채제공보다 몇 년을 더 오래 살았던 때문에 뒷날 채제공의 신도비명(神道碑銘)을 지어 그의 일생을 정리하고 추모하기도 했습니다. 다산의 글에, 형조판서 홍문관 제학 정공 78세에 장수를 비는 내용이 있습니다. 귀양살이 떠나기 1년 전인 1800년에 지은 글인데, 인간이 머무를 때 머무르고, 겸양하게 살면서 자족(自足)할 줄 알아야만 행복을 누리고 명대로 살 수 있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설파한 내용입니다.

 

“상공(上公:정승)의 지위가 있으니 벼슬로는 최고요, 대제학이 있으니 학문과 문예로서는 최고요, 궤장()을 내리는 예우가 있으니 나이든 벼슬아치의 최고 명예다”라고 하여 벼슬은 정승의 지위에 오르고, 학문과 문예의 수장으로는 대제학에 오르고, 높은 지위의 신하가 나이가 많아 궤장을 하사받는 예우를 받아야만 최고의 영광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해좌 정범조는 정승의 아래인 판서, 대제학의 아래인 제학, 78세의 나이에도 궤장을 하사받는 예우를 받지 못해, 최고 영광의 바로 아래인 아(亞)의 지위에 머무르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아쉬움이 남는 위치에 머무르고 말았지만 해좌공은 전혀 애석하게 여기지도 않고 오히려 즐겁고 편안하게만 여겼으며, 남들은 서운하게 여겨도 본인은 담담하고 태연하게 살면서 80을 훨씬 넘도록 복과 수를 누리고 살았다는 이야깁니다. 더 갈데 없는 극(極)에 이르면 언제나 화란이 뒤따르기 마련이지만 한 단계 낮은, 극의 아래에 위치하면 화란에서 벗어나 행복을 누리며 살아간다는 다산의 행복론이 참으로 의미 깊게 여겨집니다.

 

다산연구소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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