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편향(偏向)에서 벗어난 다산의 공심(公心)

지성유인식 2008. 9. 29. 10:23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편향’입니다. 어떤 논리나 사건에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고 올바른 마음을 지니는 것이 ‘공심’입니다. 다산의 저술을 읽어보고, 그의 일생동안의 삶을 살펴보면 다산은 대체로 공심을 지니고 살면서 어떤 논리나 사건에서 편향적인 태도를 보인 적이 없습니다. 자신이 속한 가계가 남인(南人)계통이어서 상종하고 살았던 부류들이나 뜻을 함께했던 분들이 대부분 남인계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안에 명확한 논리를 세우거나 이론적인 결론을 내리는 경우는 남인의 입장을 떠나 가장 공평한 결론을 내릴 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조선의 중기 이후 기호학파와 영남학파로 갈리워 율곡 이이를 존숭하는 기호학파는 성리학설에서 기발설(氣發說)에 찬성하고 퇴계 이황의 학파에서는 이발설(理發說)에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노론은 대체로 기호학, 남인은 대체로 영남학을 주장하며 크게 대립되던 시절에도 다산은 그런 편향에서 벗어나 율곡이 사용한 이(理)와 기(氣)의 글자의미는 퇴계가 사용한 이기의 글자의미가 달랐다면서 율곡과 퇴계는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올바른 주장을 폈노라면서 누구 한쪽을 편향되게 지지하고 존숭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理發氣發辨)

효종대왕이 붕어한 뒤 일어난 대정치적 사건인 기해예송(己亥禮訟)에 대해서도 다산은 「기해방례변(己亥邦禮辨)이라는 탁월한 논문을 통해 극한적으로 대립했던 노론과 남인의 대표적인 학자들의 주장에 모두 잘못이 있음을 주장합니다. 노론의 대표 우암 송시열에게도 경전을 잘못 인용한 점이 있고, 남인의 대표적 학자인 미수 허목과 백호 윤휴의 주장에도 잘못이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왕위에 오른 둘째 아들이지만 종통을 이은 효종에게 어머니 자의대비는 반드시 3년복을 입어야 한다는 자신의 견해를 밝혀 세 분 선배학자들의 논거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다산은 귀양살이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당파가 다른 소론이나 노론계의 뛰어난 학자들과 참으로 가깝게 우정을 나누면서 학문을 토론했던 것도 다산이 얼마나 편향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있었나를 증명해줍니다. 학자란 그렇게 공심을 지녀야하지 않을까요. 옳고 그름을 떠나 당파에 매몰되어 당동벌이의 편협한 생각에 빠져있는 사람이라면 다산의 공심을 한번쯤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남인들이 싫어했던 다산의 입장이 오히려 바른 입장임을 이제는 알게됩니다.

다산연구소 박석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