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진정성이 처음이자 끝이다

지성유인식 2008. 9. 22. 01:50

통치자와 국민과의 소통은 기본적으로 통치자의 진정성에 달려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수립하고 기관을 설치하여 온갖 시책을 펴더라도, 국민의 편의를 도모하려는 지도자의 진정성이 결여되고는 그런 제도나 기관을 통한 국민과의 소통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주 거론하는 이야기이지만, 세종 때의 집현전이나 정조 때의 규장각이 나라를 위한 기관이 되어 임금과 국민간의 소통이 원활하게 되었던 것은 바로 세종과 정조의 진정성이 모두 인정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1776년 영조가 세상을 떠나고 25세의 세손 정조가 왕위에 오르고 1777년부터 정조 원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정조7년은 정조가 32세이고 22세의 청년 정약용이 진사과에 합격하여 최초로 풍운지회(風雲之會:성군과 현신의 만남)가 이루어집니다.

 

국립대학인 성균관에 들어가 6년을 공부하면서 온갖 시험을 통해 학문과 능력을 인정받은 정약용은 정조13년 28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합니다. 바야흐로 벼슬에 나아가 온갖 지혜와 능력으로 정조를 보필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규장각의 초계문신에 발탁되어 초급관료의 수습을 제대로 마쳤고, 그런 과정에서 정조는 10세 연하의 다산이 자신의 충직하고 능력있는 신하가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규장각에서 학문을 연구하며 서적을 교정하고 출판하던 일을 회상하여 먼 뒷날 기록한 다산의 글을 읽어보면 정조가 신하와 인재를 아끼던 진정성이 어느 정도였나를 금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그 나라에 살면서 임금의 집에 들어가 빛나는 임금의 풍채를 가까이할 수 있다면 비록 청소하는 일을 맡아도 영광스러운데, 항차 궁중 내부에 비장된 책과 여러 임금들의 보배로운 문적을 가지고 문필에 종사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그런 일을 한다면 비록 이익이나 봉록이 없어도 영광인데 더구나 팔진미 오후청의 진귀한 음식까지 날마다 하사하시니 할 말이 있겠는가”라는 표현을 보면, 얼마나 정조가 글 잘하는 신하들을 사랑하고 아꼈는가를 그냥 알게 해줍니다.

 

“아! 『사기』를 교정하는 것은 책을 위한 것이 아니다. 궁중에 여러 본이 갖추어져 있는데 왜 교정을 하겠는가. 『사기』의 교정은 나라를 위함도 아니다. 글자 획수나 편방의 잘못이 있다 해도 나라에 해가 될 것은 없다. 무엇 때문에 교정을 하겠는가. 『사기』를 교정하는 것은 신하들을 위한 것이었다”(규영부 교서기)

 

책도 나라도 위함이 아니라, 어질고 능력 있는 신하들에게 진귀한 음식을 먹게 하려는 임금이 따뜻함 때문에 책의 교정을 맡겼다고 생각한 다산, 그러한 임금의 진정성에 어떤 신하가 참다운 충성심을 발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진정성은 그래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박석무(다산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