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적 편견이나 현실적 이해득실을 떠나 맑은 마음으로 읽는다면 누구에게나 깊은 울림을 전해줄 거라고 생각되는 책들이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느님』이고 현기영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이다. 그런데 잘 알고 있듯이 지난 여름 이 책들은 국방부로부터 불온서적 딱지가 붙어 군부대 반입이 금지되었다. 어느 인터뷰에서 현기영씨가 농담삼아 말했듯이 검열 담당자가 더위를 먹은 탓인지, 아니면 국방부가 이명박 정부에 자발적인 코드맞추기를 했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꽤 오래전에 출간되어 잊혀져 가던 그 책들을 그런 방식으로라도 언론에 다시 띄워주고 싶어서였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그 국방부가 최근에는 교육과학기술부에 공문을 보내어, 고교 교과서의 한국 근·현대사 서술내용을 일부 고칠 것을 요구하여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런 것들 중에는, 가령 제주도 4·3사건에 관하여 “공산당 조직이 배후에 있고 경찰 발포는 군중투석에 따라 시작됐는데, 발포 사실만을 지적해 사건을 왜곡시키고” 있으므로 “대규모 좌익세력의 반란진압 과정 속에 주동세력의 선동에 속은 양민들도 다수 희생된 사건”으로 기술하도록 요구했다든지, 5공통치와 관련하여 “전두환 정부는 권력을 동원한 강압정치를 하였다”는 내용을 “전두환 정부는 민주와 민족을 내세운 일부 친북적 좌파의 활동을 차단하는 여러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로 고치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경향신문, 9월 18일자)
남과 북의 억울한 죽음들
알다시피 현기영은 고향이 제주도이고, 그의 주요 작품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고향에서 경험했던 참혹한 비극과 연관되어 있다. 그의 이름을 문단에 각인시킨 소설「순이 삼촌」(창작과비평, 1978.가을호)을 원고로 처음 읽었을 때 받은 충격과 두려움을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깐깐한 집필자세로 인해 결코 다작(多作)일 수 없는 현기영의 문학세계에서 4·3항쟁은 운명과도 같은 무게를 갖는다. 그러나 그는 작품의 어느 페이지에서도 섣부르게 이념적 또는 당파적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그는 진압군의 편도 아니고 반란자의 편도 아니며, 오직 죽은 자들의 편, 다시 말하면 고향사람들의 편인 것이다. 그의 문학이 주는 감동의 원천은 거기에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 근·현대사는 너무나도 많은 억울한 죽음들의 비명소리로 채워져 있다. 그 절정은 두말할 것없이 6·25전쟁이지만, 전쟁 이전에도 이후에도 살육의 광기는 남북을 가리지 않고 이 땅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4·3사건은 그 시발점이었고, 전쟁발발 직후 남한 전역에서 자행된 좌익혐의자 집단학살은 아직 진상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한국판 마타하리’라는 언론의 명명 속에 간첩죄로 처형된 김수임 사건은 워낙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요소가 많았기에 그래도 어느 정도 밝혀진 셈이다.
그런데 최근 AP통신은 ‘여간첩 김수임 사건의 조작 의혹’을 새삼스레 보도하고 있다.(인터넷 조선일보, 8월 18일자) 통신에 따르면, “최근 비밀이 해제돼 미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입수한 1950년대 비밀자료 기록들을 분석한 결과” 김수임에게 씌워진 간첩이적혐의는 대부분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그러나 비밀자료를 근거로 김수임 사건의 진실을 파고든 것은 미군 헌병장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김수임의 아들 김원일이고, 그 정황은 2005년 KBS의 『인물현대사』에서 잘 다루어진 바 있다. 조작의혹이 뒤늦게 다시 AP통신에 보도된 것은 첫돌 조금 지나 잃은 어머니의 한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온 김원일의 비통한 정성 때문일 것이다.)
좌우의 구별이란 이념적 분식이거나 기만적 명분에 불과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의 또 다른 예는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는 임화의 최후이다. 그는 시인으로서는 동시대의 정지용이나 백석에 비해 한수 아래라고 해야겠지만, 비평가-문학사가로서는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한 인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도 그는 일제시대의 좌익문예단체인 카프의 서기장으로서, 그리고 해방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으로서 탁월한 조직적 역량을 발휘하였다. 한 사람의 길지 않은 생애 안에 이런 다방면적인 활동을 통합한 예를 임화 말고 딴 데서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는 1947년에 미군정의 탄압을 피해 월북했는데, 만약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아마 틀림없이 국문학자 김태준(金台俊), 시인 유진오(兪鎭五)와 같은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1953년 북한에서 정권전복 음모와 반국가적 간첩테러 행위 등의 죄목으로 총살형에 처해지고 말았다. 그가 박헌영 계열의 핵심인물 중의 하나였음을 감안하면 이러한 결말이 전혀 뜻밖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임화의 소위 법정진술을 읽어 보면 그가 단순히 정치적으로 패배한 데 그치지 않고 인격적으로 파멸의 상황으로 내몰렸음을 실감할 수 있다.
검사는 심문한다 : “일제시대에 피고가 해 왔던 문학운동은 계급적 문학운동이었던가?” 임화는 답변한다 : “아닙니다. 그것은 일제의 어용문학이었습니다.” 대체 이런 문답은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가. 임화의 답변은 절망적 자포자기의 표현일 수도 있고, 극도의 공포감 때문에 상대방이 원하는 내용을 뱉은 것일 수도 있으며, 반대로 명백한 허위를 말함으로써 후일의 역사를 위해 법정 전체의 허구성을 입증하는 알리바이를 남긴 것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이든 임화의 이러한 죽음은 그의 치열한 삶에 합당한 품위있는 등가물은 아니다.
지난 시대에 우리는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강제와 폭력에 순종하도록 길들여져 왔다.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억울한 죽음의 신음들이 그치지 않고 있다. 폭력을 행사하는 쪽이나 당하는 쪽이나 좌·우의 구별이란 다만 이념적 분식(粉飾)이거나 기만적 명분에 불과한 것 같다. 언제나 진실로 해방된 삶을 누릴 수 있을지, 아득하기만 하다.
- 염무웅(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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