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명동 서일필’이라 한다. 태산이 떠나갈 듯 요란하더니 겨우 쥐 한 마리 튀어나왔다는 거다. 화려한 ‘쇼’와는 달리 결과가 보잘것없을 때다. 살다 보면 이런 일이 한둘 아니다. 새 정부가 ‘경제를 살린다’고 4800만에게 약속했는데 이젠 ‘경제 위기’라 한다. ‘뼈저린 반성’ 뒤에 결국 촛불 여성의 ‘뼈만 부러뜨렸다’. ‘인적 쇄신’을 외쳤는데 ‘겨우 3.5명 경질’이다. ‘고환율 정책 실패’를 인정한 뒤, 헐 ‘차관 1명 희생양’이다. ‘고유가 비상’ 대책인 ‘차량 2부제’도 사람들이 차를 한 대 더 사면 말짱 도루묵.
사태의 핵심은 ‘판단력 부재’다. 말로는 ‘섬김’의 리더십, 그래서 ‘시작은 소박하되 나중엔 창대’할 걸로 기대했으나, 사태는 갈수록 태산이다. 그 태산이 울고도 겨우 쥐 한 마리뿐.
‘판단력 부재’란 ‘전략적 리더십’ 부재다. 나라 살림을 어떤 방향으로 끌어야 백성들 살림살이가 두루 평안해질지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생각건대 전략적 리더십은 다음 중 하나를 핵심으로 삼는다.
첫째는 여태껏 해왔듯 소수만의 돈벌이 경제를 위해 ‘토목공사 마인드’로 초지일관하는 ‘신자유주의’ 전략이다. 둘째는 ‘승자독점’ 사회에 대한 반성 위에 더디더라도 성장과 분배가 같이 가게 자원을 재분배하는 ‘복지국가’ 전략이다. 셋째는 탐욕과 경쟁의 사회구조 및 인간 심성을 연대와 공생의 패러다임으로 바꾸어 돈벌이 아닌 살림살이를 재창조하는 ‘생태사회’ 전략이다.
백성의 머슴이 되겠다는 진실한 마음이 있다면, 백성과의 ‘소통’을 단지 “촛불 시위를 그만두면 몇 가지 양보”하는 ‘거래’로 봐선 안 된다. 참된 소통이라면 나라 살림살이의 전략적 방향에 대해 모든 걸 내놓고 토론해야 한다. 범국민적 ‘브레인스토밍’이 필요하다. 브레인스토밍이란 타인 의견에 대한 비평보다는 자기 내면을 솔직히 말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집단 지혜’를 모으는 거다.
이렇게 좋은 게 있는데, 우린 왜 이게 잘 안 되나? 그것은 우선, 권위주의 때문이다. 대통령의 권위, 회장님의 권위, 최고의 권위, 이게 사람 잡는다. 연관된 것으로, 체면치레나 눈치 보기가 문제다. 지체 높으신 분이 어떻게 촛불들과 토론하나, 캠프 데이비드에서 부시와 멋진 시간을 보내느라 한 번 약속한 걸 어떻게 어기나, 이런 게 두려워 아무것도 못 한다. 또 하나, 한국의 토론 문화도 문제다. 토론을 하면 당장 그 자리에서 이겨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다. 자신의 솔직한 의견을 말하고 남의 의견을 편견이나 선입관 없이 들어주는 태도가 부족하다. 비판을 하더라도 그 핵심을 갖고 논의해야 하는데, 말꼬리 잡는 식이다. 정 안 되면 ‘네 나이가 몇이냐?’고 따지니 할 말 다 했다.
돈벌이 경제에서 ‘경제 위기’와 ‘물가 대란’은 역설적이게도 다시 ‘군기’를 잡는 데 좋은 지렛대다. 또다시 ‘허리띠 졸라매기’를 필두로 ‘광장 폐쇄’, ‘노동자 운동 척결’ 식의 군기 잡기를 할까 봐 두렵다. 세계자본의 눈치를 보며 이렇게 군기를 잡아야 투자 활성화와 ‘747식 고도성장’이 가능하다는 게 ‘신자유주의’ 전략 아닌가.
그런데 태산명동 서일필, 이 말은 거꾸로, ‘태산이 우는 것도 쥐 한 마리로부터’라고도 해석된다. 누구도 예기치 못한 거대한 촛불 물결도 실은 ‘밥상’이라는 작은 것에서 출발했다. 여성이든, 노동자·농민이든, 학생이든, 나 하나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따라 태산이 울고, 세상이 바뀐다. 희망의 근거다.
- 강수돌/ 고려대 교수, 조치원 마을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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