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儒學)사상의 중심에는 언제나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의 문제가 따라다닙니다. 그래서 다산은 “인심은 소체(小體)에 따라서 발(發)해지고 도심은 대체(大體)에 따라서 발해진다”라고 말하며, 대체는 심성(心性)과 같은 큰 문제이고 소체는 입이나 코의 감각적인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논의는 본디 공자(孔子)의 『논어』에 나오는 “선비가 도(道)에 뜻을 두고도 좋지 않은 의복이나 음식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함께 의논할 필요도 없다”(士志於道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議也 : 里仁)라는 대목에서 출발합니다.
좋은 옷에 좋은 음식만 원하면서 어떻게 구도자(求道者)가 될 수 있겠느냐라는 공자의 뜻은 높은데, 세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논어고금주』에서 다산은 이런 부분을 참으로 명쾌하게 해석합니다. “도에 뜻을 둔 선비란 앞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성품을 보완(治心繕性)하려는 사람인데 심성의 문제인 대체에 걱정은 하지 않고 감각적인 신체의 일에 해당하는 입고 먹는 것만 좋아지는데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과 무슨 도를 논의하겠는가?”라고 해석하여 의복이나 음식의 좋고 나쁨을 따지는 사람이야 선비의 대열에 낄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호화찬란한 의복, 달고 맛있는 음식에만 온통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쏠리는 것을 공자가 경계했는데, 다산도 마찬가지로 의복이나 음식의 사치에 마음을 기울이는 조무래기 선비들의 태도에 불쾌한 마음을 드러냈다고 보입니다.
심성(心性)공부에 온 정력을 바쳐 감성적인 인간의 욕구를 절제하여 높은 경지의 이성(理性)에 이르려는 선비라면 의복이나 음식의 사치를 멀리하고 대체를 근심하면서 소체의 욕구는 이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조금 살기가 넉넉해지고 소득이 늘어난다고 갈수록 사치풍조만 만연되는 요즘, 도에 뜻을 두라는 공자의 말씀과 다산의 해석에 마음을 기울여 사치추방의 일에 앞장서야 할 것 같습니다.
사치는 귀신도 미워하고 검소한 삶은 귀신이 도와준다고 했으니 도에 뜻을 두고 어떤 의복이나 어떤 음식에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을 부러워해야 하겠습니다.
다산연구소
박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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