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중력을 이기고 공중에 떠있는 성!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
다음은 한국일보 서윤경 온라인뉴스부 차장(y27k@kmib.co.kr)님이 대한민국 내 부동산 가격으로 본 '피레네 성'이다.
미세먼지 따위 걱정할 필요 없어 보이는 파란 하늘이다. 하얀 뭉게구름은 맑은 하늘을 극대화시킨다. 그런 하늘에 육중한 바위 하나가 떠 있다. 육중하다는 이 표현은 아마도 바위가 준 이미지 때문일 거다. 오히려 가벼워 보인다. 아니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은 듯 둥둥 떠 있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어떤 물리적 힘을 가해도 땅 아래로 추락할 것 같지 않은, 황토빛 바위 위를 거슬러 올라가면 비슷한 질감의 성곽이 있다.
르네 마그리트의 1959년 작품인 ‘피레네의 성’이다.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인 마그리트는 상식을 뛰어넘는 창의력을 시각예술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마그리트의 그 성은 예측 가능한 일반적 시공의 관점을 뒤집어 시공간의 상대성을 색다르게 시각화한 대표적 작품이다. 덕분에 마그리트의 그 성은 영화와 광고 속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물론 그대로 베끼지는 않았다. 상상력과 시대적 의미를 새롭게 덧입혔다. 그 성을 모티브로 한 대표적인 영화가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다. 저주를 받아 90세 할머니로 바뀐 18살 소녀 소피가 자신의 저주를 풀기 위해 찾아간 곳이 젊은 여자의 심장만을 훔친다는 하울이란 남자애의 성이다. 철제와 목재를 적절히 배합해 만든 이 성은 친환경을 표방하듯 곳곳에 나무도 심어져 있다. 덩치는 산만한데 이동 수단으로 쓰이는 다리는 새 다리처럼 가늘다.
이처럼 피레네나 하울의 ‘성’은 성이라는 형태에 은유적 표현을 담았다. 가령 중세 양식의 요새처럼 지어진 피레네의 성은 20세기 산업화의 격랑 속에서 고립돼가는 현대인의 외로움과 소외감에 대한 메타포를 그렸다. 하울의 성은 하울의 자폐적 공간인 동시에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기능적 측면만 있는 게 아니다. 하울의 내면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기계와 새의 다리라는 이질적인 종(種)을 섞어 하울의 다면적 성격을 표현한다. 내내 가녀린 다리로 이동하던 하울의 성이 하늘로 날아오를 때도 하울이 소피와 행복하게 살아갈 때다.
그럼 이쯤에서 드는 생각. ‘공중부양한 성’은 이미지나 은유에 묻힌 상징적 표상에 불과한 것일까. 최근 조금은 실체적인 ‘그 성’을 만났다. 설 당일 개봉한 영화 ‘알리타: 베틀엔젤’에서다. 사실 공상과학(SF) 영화라는 장르부터 실체와는 거리가 멀다. 배경 역시 그냥 미래도 아닌 26세기라는 아주 먼 미래다. 주인공은 기억을 잃은 사이보그 소녀다. 여기서 하늘에 붕 떠 있는 그 성의 이름은 ‘자렘’이다. 물론 성보다는 범위가 조금 더 넓다. 도시다. 지상 위 고철도시에 사는 (사이보그) 사람들이 꼭 가서 살고 싶어 하는 곳, 공중도시다. 도시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물자와 자원은 고철도시 사람들이 생산한다. 고철도시 사람들은 ‘자렘’ 입성을 위해 불법을 저지르며 돈을 모으거나 자렘 입주를 허락하는 권력자의 눈에 들기 위해 공적을 쌓는다. 하지만 쉽지 않다.
현실과는 다분히 거리가 먼 이 영화에서 ‘자렘’은 21세기, 불편한 현재를 마주하도록 했다. 강남 4구(강남구·서초구·송파구·강동구)나 임거(임대아파트 거지)·빌거(빌라 거지)라는 신조어처럼 주거 형태에 따라 계급을 만드는 대한민국 부동산 현실 말이다. 강남 4구의 막강한 힘은 어느새 마·용·성(마포구·용산구·성동구)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상승하는 아파트 가격 곡선에 맞춰 강남 4구와 마용성은 공중 부양했다.
이 상황에서 뒤늦게 양해의 말씀 드린다. 영화 알리타의 스포일러가 아니라는 것 말이다. SF 영화를 보면서도 스토리와 상관없는 한국의 부동산 시장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불편한 현실을 이야기하려는 것뿐이다.
다만 영화 말미 사이보그 여주인공의 대사만큼은 욕먹을 각오를 하며 남긴다. ‘자렘’을 향해 죽음을 불사하며 달려가는 연인에게 손을 내밀며 건네는 그 한마디는 마치 강남4구 입성을 꿈꾸는 21세기 우리에게 던지는 말 같아서다.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서로의 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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