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이창동 감독 "'버닝' 칸 수상 불발 아쉬워..영화로 질문할 뿐"
양소영 입력 2018.05.31. 07:03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양소영 기자]
감독 이창동(64)은 ’칸이 사랑하는 감독’으로 불리는 한국 영화계 거장이다. 그는 “거장이라는 말을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호칭은 중요하지 않다”고 손을 내저었다. 다만 이창동 감독은 언제나 영화로 질문을 던지길 바랐다.
이창동 감독이 8년 만에 내놓은 신작 ‘버닝’은 제 71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며 한국 영화의 위상을 세웠다. 현지에서 공개 후 호평이 쏟아지며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유력 후보로 언급됐다. 특히 ‘밀양’으로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시’로 각본상을 받은 바 있어 이번 수상에 대한 기대감이 컸으나 무관에 그쳤다.
대신 비평가들이 선정하는 국제비평가협회상과 미술·음악·촬영 등 뛰어난 기술적 성취를 보여준 작품의 아티스트에게 수여하는 벌칸상(신점희 미술감독)을 받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이창동 감독은 칸 현지에서 호평이 쏟아진 것에 대해 “예상보다 반응이 훨씬 좋았다”며 “왜 이러지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고 고백했다.
이어 “보통 칸에 나오는 영화가 예술영화만 들어가는 건 아니다. 경쟁 부문이라고 할지라도 개성이 강한 영화가 들어간다. 개성이 강하다보니까 호불호가 나뉘게 된다. 무난하게 좋아할만한 영화들이 가끔 있긴 하다. 그런 영화들이 상을 받기도 하지만 개성 강한 영화들이 대체로 많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모두가 좋다고 말하는 영화는 보통 없다. ‘버닝’은 호불호가 갈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다들 좋다고 하니까 이게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고 읽히는 건가 그런 느낌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칸 황금종려상 수상 불발에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 이창동 감독은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라고 답했다. 그는 “‘버닝’이라는 영화가 이상하게 칸 결과에 올인하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여러 정황이 겹쳐져서 그렇게 됐다. 그 결과 자체가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보니 “영화에 대해 낯설다는 평가가 있다고 해도 수상을 하면 그게 인정받는 것이 돼서 좋게 해석해주는, 감상에 이점을 제공해주게 되는데 그게 사라져버렸다”며 “그 기대를 높여서 실망감이 더 큰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영화 전체를 봐도 이번에 남들이 이야기 했던 식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았으면 한국 영화계에 큰 자극이나 활력을 줄 수도 있었는데 그게 아쉽다”고 덧붙였다.
<사진은 칸 영화제에서 포즈를 취한 영화 `버닝`의 전종서, 스티븐 연, 유아인, 이창동 감독> 칸에서는 호평이 쏟아진 반면 국내에서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칸 영화제 수상 불발로 훙행에 대한 탄력도 받지 못했다.
이 감독은 “국내 반응은 들었다. 국내는 예상외로 온도차를 느꼈다”며 “그건 또 뭔지 생각해봐야겠다는 느낌이었다. 지금도 숙제다. 대충은 알겠고 예상도 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생각을 더해봐야 할 것 같다”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어렵다’는 평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메타포가 가득한 ‘버닝’의 경우도 지금까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 만들 때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모니터링을 받는다. 일차적으로 투자자다. 그들이 그린라이트를 켜느냐 아니냐의 문제다. 당연히 거치는 과정이다. 저도 (‘버닝’의) 위험성을 예상했고 그걸 어떻게 극복하느냐 신경을 썼다. 제 나름대로 어느 정도는 대중과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는 “사실 흥행이라는 건 다른 많은 상황과 연결되어 있다. 그것이 영화라는 매체가 뜨거운 매체라는 것”이라며 “어떤 분위기에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 평론 기자들은 왜 그렇게 좋아할까 생각해보면 분위기나 다른 요인도 작용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이 감독은 ‘버닝’ 역시 다른 분위기로 받아들여졌으면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하지만 이내 “그게 다 가정”이라며 “흥행이라는 걸 성공 모델로만 따라가면 어떤 작품이든 성공하겠지만 크게 보면 꼭 발전적인 거라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누군가는 저지르고 모험을 해야만 한다. 오늘 낯설게 봐도 다음에는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게 우리 영화 산업을 선순환하는, 자극하는 요인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작품에 한 번도 ‘메시지’를 넣은 적이 없다는 이창동 감독. 그는 “제 영화에 대한 오해랄까 그런 게 있다”고 지적했다.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를 만들어보지 않았다. 메시지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밝힌 그는 “그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그냥 질문할 뿐”이었다.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건 오롯이 관객의 몫이다. 오히려 그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하는 영화는 할리우드 오락 영화”라고 언급했다. “정의는 승리한다”는 당연한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하고 있다는 것.
이 감독은 “그런 당연한 메시지가 관객에게, 우리 삶에 얼마만큼 영향을 줄까는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저는 질문하는 영화를 만들었고 항상 질문했다. 그게 불편할 수 있다. 그 질문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분들에게는 다른 방식의 감동이 됐든 뭐가 됐든 반응을 한다”며 “이 영화 역시 질문한다”고 강조했다.
"(’버닝’은)세상의 미스터리에 대한 질문도 있지만 서사에 대한 질문이랄까. 항상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게 그 이야기가 얼마만큼 진실에 가까운가. 그런 서사에 대한 질문이라든가 더 나아가서 눈으로 보고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없고 그런 문제에 대한 미스터리라든지 이 세상이 뭐가 잘못됐는지 알 수 없는, 영화 매체가 대체 뭔가. 매체에 대한 질문도 들어가 있다.”
이창동 감독은 “그래서 더 어려워하는 것 같다”며 “질문 자체는 안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질문은 누군가의 가슴에 남는다.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성공한 영화들이 흥행해도 시간이 지나면 흔적이 없어진다. 어떤 불편한 영화는 시간이 지나도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인터뷰②에서 계속)
양소영 입력 2018.05.31. 07:03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양소영 기자]
(인터뷰①에서 이어) ‘버닝’은 유통회사 아르바이트생 종수(유아인 분)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 분)를 만나고, 그녀에게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 분)을 소개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안에는 다양한 메타포가 나타난다. 해석도 다양하다. 무엇을 어떻게 봤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영화가 된다.
칸 영화제에 다녀온 뒤 만난 이창동 감독은 “영화 자체의 구조가 갖고 있는 해석의 가능성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다. 그런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며 “이 영화의 미스터리 특징이고, 성격이다. 영화에 어떤 겹들이 있는가. 영화 매체 특성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해지느냐가 영화를 만드는 하나의 목표다. 그런 해석의 다양함은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어떤 해석이 옳고 그르다기 보다는 “각자가 자기 나름의 해석으로 자기 나름의 서사를 만들어서 영화를 본다. 그 점은 당연하다. 영화 구조 자체가 그렇다”면서 “자기만의 서사가 옳은 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서사도 귀 기울이고 이야기해보면 좋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영화 속에는 많은 힌트들이 등장한다. 해미의 집에서 보이는 남산타워의 반사된 빛부터 영화 구조의 수수께끼는 시작된다. 결국 그 다양한 코드와 힌트들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는 오롯이 관객의 몫이라는 것.
영화로 질문을 던진 이창동 감독도 삶의 미스터리에 대해서는 해답을 찾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해답을 갖고 있으면 이런 질문을 안 한다”고 말한 그는 “이 영화를 만들고 대중에게 공개하고 영화제도 가고 이런 과정에서 미스터리가 더 깊어졌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옛날에는 세상이 뭔가 잘못됐는데 그 이유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계급의 문제든 정치적인 문제든 사회 모순을 쉽게 이야기했다. 그게 해결책이라고 믿지 않아도 싸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도 “지금은 싸워도 소용이 없을 것 같고 뭐가 잘못됐다고 이야기하기도 설명하기도 어렵고 이게 요즘 세상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한 젊은 세대에겐 미래의 희망이 보이지 않고, 혼자서는 어떻게 해볼 수 없고, 힘을 합쳐도 될 것 같지 않은 세상이 있다. 이창동 감독도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분노하라’고 하지만 분노해도 해결되지 않는다. 여전히 분노를 품고 있지만 분노의 뿌리를 알 수 없다는 것이 미스터리라는 것. 이 감독은 “사람들이 어떤 서사를 원하는지도 미스터리”라고 했다. 그는 “이 영화 자체가 되게 운명적이다. 제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라면서도 “아이러니한 걸 느낀다. 말하자면 종수와 해미 같은 그런 처지에 놓인 청년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게 공개되는 자리는 칸의 붉은 카펫이다. 되게 미스 매칭”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영화를 찍고 칸에 갈 때마다 그러한 아이러니를 느낀다며 “이 영화가 공개되고 극장에서는 서사로 이야기 하자면 마블 영화와 싸운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나 ‘데드풀2’는 슈퍼 히어로다. 세상을 슈퍼히어로가 구원해준다는 이야기다. 슈퍼히어로가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하필 이런 영화와 세상의 미스터리에 어떤 분노를 가지는지 이야기하는 ‘버닝’이 맞부딪쳐서 처절하게 깨진다. 그게 운명이라면 운명”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감독은 “우리 같은 서사는 대중에게 별로 환영받지 못할 수 있는데 환영 받는 서사는 뭔지, 그게 우리에게 필요한 건지 그런 생각도 든다”며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그런 생각도 든다”고 고백했다.
과거 청년들의 분노와 지금 청년들의 분노가 다르다고 했다. 과거엔 분노하지만 “희망”이 있었다. 정치적인 자유와 민주주의, 혹은 물질적으로 열심히 하면 미래가 좋아질 거라는 것에 대한 의심은 없었다. 그러다 지금의 청년들은 분노해도 분노하지 않아도 희망이 없다. 세상이 더 잘될 거라는 믿음도 없다.
이 감독은 “우리가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그런 걸 이루었다는 생각은 있다. 어느 정도 해소는 시켜줬다. 저도 충분히 그런 걸 느꼈다”면서도 “삶의 근본이랄까 구조가 바뀌는 건 훨씬 오래 걸리고 훨씬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게 너무 멀어 보인다”고 밝혔다.
사랑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종수가 해미를 사랑하게 되는 것에 대해 “사랑이란 낭만적이고 대단하지 않아도 아주 작은 계기로 누군가의 유일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가하면 마지막 신에 대해서는 “어떤 상징이나 관념보다는 관객에게 느낌으로 전달되기 바란다”며 “벌거벗은 이미지 자체다. 감정도 두려움인지 통쾌함인지 모르는 원초적인 막 태어난 생명체 같은 그것 자체가 아닐까 싶다. 무슨 의미인지 어떤 느낌인지 각자가 다르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창동 감독은 소설가이기도 하다. 그는 소설 집필 계획을 묻는 질문에 “생각은 있다”면서도 “능력이 안 된다. 시간이 안 된다”고 털어놨다.
8년 만에 돌아온 그는 “그동안 놀면서 8년을 보낸 건 아니다. 여러 프로젝트를 고민하고 시나리오도 쓰고 준비도 하다가 결국 보류한 것도 있다”고 했다. 이어 “하고 싶은 프로젝트는 많이 있다. 그래서 짧은 기간에 다시 할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더 있어 봐야겠다 싶다. 영화 만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까 싶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인터뷰③에서 계속)
'Book·Music'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목격자 (0) | 2018.09.08 |
---|---|
제8회 떡목음악회 (0) | 2018.08.13 |
"생각의 깊이" 필요 (0) | 2018.04.27 |
Black Panther(흑표범) (0) | 2018.03.01 |
2018 무술년 홍경민, 차지연 신년콘써트 (0) | 2018.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