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6 호
노 관 범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부교수)
오래전 대학에서 수업했던, 지금은 사라진 〈조선시대 지성사〉라는 교양 과목은 그리운 추억이다. 매학기 강의계획을 세울 때마다 나는 조선시대 지성인의 낡은 언어가 나와 만나는 학생들의 젊은 삶으로 번역되기를 소망했다.
그래서 지성인에 관한 평전을 읽기 전에 학생들이 스스로 어떻게 정신적으로 성장해 왔는지 ‘나의 지성사’를 작성하는 과제를 제출하게 했다. ‘나의 지성사’에서 발견한 자기 삶의 어떤 키워드를 갖고 조선시대 지성인을 절실하게 번역(또는 해석)해 달라는 뜻이었다. 이를테면 정도전과 김시습에 걸려 있는 옛날[古]이라는 주술을 풀어낼 마법은 다름 아닌 여러분의 오늘날[今]이다! 나는 진심으로 고금의 만남을 원했다.
그런데 ‘나의 지성사’에는 한가지 규칙이 있었으니 자신의 성장 과정을 반드시 몇 개의 역사적 시대로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이 미쓰였다.
여러 과제물은 ‘나의 지성사’를 ‘고대 지성사’, ‘중세 지성사’, ‘근대 지성사’ 등으로 구분했는데, 대개 ‘고대 지성사’는 초등학교 시절의 밝음을, ‘중세 지성사’는 중고교 시절의 어두움을, ‘근대 지성사’는 대학 입학 후의 새로움을 가리켰다.
밝은 고대,
암흑의 중세,
새로운 근대.
이런 식으로 학생들의 인생은 절묘하게 역사의 시대 감각에 맞추어져 있었다.
아! 처음부터 ‘역사’라는 형식을 부과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인가?
생각해 보니 우리는 언젠가부터 오랜 세월의 흐름을 고대, 중세, 근대와 같은 시대의 패턴으로 인식하는 역사적인 사고에 점점 길들여져 왔다. 여기에는 이 땅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의 오랜 세월을 세계사(실은 서양사)와 합치하는 ‘정상 역사’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대한민국 사회의 치열한 한국사 교육이 주효했던 것 같다. 이 점은 해방 이후 발행된 국사 교과서의 추이를 보면 잘 나타난다. 예를 들어 1차 교육과정의 한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1957년 발행)는 모두 9단원을 두고 있는데, 〈1. 선사 시대의 문화〉·〈2. 부족 사회의 문화〉·〈3. 삼국 시대 문화〉·〈4. 통일 신라와 발해의 문화〉·〈5. 고려의 문화〉·〈6. 조선 문화 전기(1392~1592)〉·〈7. 조선 문화 중기(1593~1863)〉·〈8. 조선 문화 후기(1864~1910)〉·〈9. 현대 문화와 우리의 사명〉 등이다. 아직 역사적인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반면 6차 교육과정의 한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1996년 발행)는 모두 9단원을 두고 있는데, 상권〈1. 한국사의 바른 이해〉·〈2. 선사 문화와 국가의 형성〉·〈3. 고대 사회의 발전〉·〈4. 중세 사회의 발전〉·〈5. 근세 사회의 발달〉, 그리고 하권 〈1. 근대 사회의 태동〉·〈2. 근대 사회의 전개〉·〈3. 민족의 독립운동〉·〈4. 현대 사회의 발전〉 등이다. 고대, 중세, 근세, 근대, 현대가 빠짐없이 부과되었다. 7차 교육과정의 한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2011년 발행)를 보면 시대별 단원 구성이 주제별 단원 구성으로 바뀌었지만, 그렇다 해도 예를 들어 〈3. 통치 구조와 정치 활동〉이 ‘고대의 정치’, ‘중세의 정치’, ‘근세의 정치’, ‘근대 태동기의 정치’, ‘근·현대의 정치’ 등으로 구성되어 있음에서 보듯, 그야말로 고대에서 근․현대까지 각 시대들의 행진이 순차적으로 펼쳐져 있다. (기묘하게도 ‘근대 태동기’나 ‘근·현대’는 있어도 정작 ‘근대’는 없다!)
위의 두 교과서는 모두 한국사의 각 시대를 시작하는 도입부에 세계사의 시대를 배치하여, 반드시 세계사의 시대로부터 한국사의 시대를 응시하도록 만드는, 그리하여 한국사의 시대가 세계사의 시대에 비추어 정상인지 생각하도록 만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세계사에 비추어 한국사를 검증하는 한 방향만을 강요할 뿐, 역으로 한국사에 비추어 세계사를 성찰하는 새로운 사유는 결코 꿈꾸지도 못한다. 한국사가 세계사의 시대에 따라 규격화된 보편적인 역사 상품을 생산하고 있고 또 소비하고 있다는 자기만족으로 그칠 뿐이다.
아마도 역사적인 시대 중에서 한국사에서 가장 소유하고 싶어했고 지금도 소유의 열망이 으뜸가는 시대는 단연 근대일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1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의 세 단원, 〈6. 조선 문화 전기(1392~1592)〉·〈7. 조선 문화 중기(1593~1863)〉·〈8. 조선 문화 후기(1864~1910)〉는 역시 위에서 살펴본 6차 교육과정의 그것에 이르러 상권 〈5. 근세 사회의 발달〉, 그리고 하권 〈1. 근대 사회의 태동〉·그리고〈2. 근대 사회의 전개〉의 일부로 바뀌어 버렸다. 조선시대 세 파트에서 무려 두 파트에 근대의 이름이 부여된 것이다. 2차 교육 과정과 3차 교육 과정이 조선 말기(19c 후반)를 근대에 흡수한 데 이어 4차 교육 과정 이후는 조선 후기(17c~19c 중반)까지 근대로 포박한 결과이다. 위에서 본 7차 교육 과정은 조선 후기에 대해 아예 ‘근대 태동기’라고 쐐기를 박았다.
국사 교과서는 국정이냐 검인정이냐 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교과서의 역사가 여전히 시대라는 장벽에 갇혀 있는 한, 특히 지금처럼 지나치게 자민족의 근대화 이야기에 집착하는 한, 그것은 역사보다는 교리에 가깝게 될 것이다. 현재적인 문제 탐구보다는 이념적인 교리 문답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문제 탐구의 새로움은 문제 설정의 새로움에 있다. 그 지혜를 얻기 위해 어쩌면 시대를 괄호 치는 탈시대화, 근대를 괄호 치는 탈근대화라는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대의 장벽을 넘어 고금의 만남을 다시 이룩하는 과업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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