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훈

조선시대 말 단발령의 가치는?

나는 새 2011. 10. 1. 14:06
김문식(단국대 사학과 교수)
청나라가 건국된 이후 조선인들은 자신들의 머리모양과 복식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북경을 방문한 조선인들은 변발(辮髮)에 좁은 소매의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면서, 중국이 마침내 오랑캐의 나라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그들은 전통적인 머리모양과 복식을 유지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다행이라 생각하고, 이를 문명국의 표상이라 여겼다. 그런 조선인에게 1895년에 내려진 단발령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문명국의 표상인 상투를 자르고 머리모양을 서양 오랑캐처럼 하라는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인 최초로 단발을 한 사람은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된 박영효라 생각된다. 최근 이경미 교수가 고증한 바에 따르면, 박영효가 1882년 9월 15일(양력 10월 26일) 도쿄의 스즈키(鈴木)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상투를 자르고 양복을 입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무렵 유길준은 게이오의숙(慶應義塾)에 다니고 있었지만, 머리에는 사방관을 쓰고 한복을 입은 모습이었다.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사절이던 박영효가 일본을 방문하는 길에 상투를 자르고 양복을 입은 사건은 역사적 의미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단발령은 힘 없는 나라의 설움인가, 개혁인가
고종은 1895년 11월 15일에 단발령을 내렸다. 단발하는 자신의 뜻을 본받아 만국(萬國)의 대열에 나란히 서라는 취지의 명령이었다. 이를 요청한 사람은 내부대신 유길준인데, 그는 왕세자 순종의 머리를 직접 잘라주었다고 한다. 11월 27일에 고종은 단발을 재촉하는 조칙을 다시 내렸다. 만국이 교류하며 서로 맹약을 하는 시대이므로 정치를 경장(更張)시킬 방도를 생각해야 한다. 자신이 음력을 양력으로 바꾸고, 연호를 사용하며, 복식 제도를 바꾸고, 단발을 하는 것은 사람들의 안목을 일신시켜 옛 것을 버리고 유신정치(維新政治)를 따르게 하기 위해서라는 조칙이었다. 여기에는 유길준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단발령은 조야에 엄청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얼마 전 명성왕후가 일본인의 칼에 시해되어 울분에 쌓여있던 국민들에게 오랫동안 문명국의 상징으로 간주했던 머리모양까지 바꾸라고 하니,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전국에서 왕비의 원수를 갚고 단발령에 반대하는 의병이 일어났고, 이들은 상투를 자른 관리들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내 머리는 잘라도 내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
최익현은 단발령을 강하게 저항한 인물이었다. 그는 김홍집이나 유길준이 국왕을 위협하여 단발령을 내린 것으로 보았고, 향교의 대성전에 나가 통곡한 후 단발령을 거부했다. 이 소식을 들은 유길준은 최익현을 체포하여 서울로 압송시킨 후 단발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당시의 형세는 경장하고 개혁하지 않을 수 없으며, 신하가 국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불충이다. 만국이 모두 머리를 깎았으므로, 공자가 살아있다면 반드시 머리를 깎았을 것이란 논리였다. 이에 대해 최익현은 삼강오륜을 지키고 중화(中華)를 높이는 일은 줄기이고 부국강병은 가지에 해당하는데, 가지를 위해 줄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단발령은 유길준 같은 사람들이 국왕을 위협하여 부득이 내린 명령이라고 답변했다.
 
유길준은 조선인 최초로 일본과 미국에 유학하고 유럽의 나라들을 방문한 경험을 가진 신지식인이었다. 그에게 있어 조선인의 머리모양과 복식은 반드시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었고, 서양의 좋은 제도를 수용하여 외국의 침략을 막을 국력을 갖추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최익현은 유길준에 의해 서울에 구금되어 있는 동안에도 송시열의 『송자대전』을 구해다 읽었던 유학자였다. 그에게 있어 조선인의 머리모양과 복식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할 문화적 상징이자 자존심이었다. 단발령을 둘러싼 두 사람의 논쟁은 결국 세계관의 차이가 빚은 충돌이었다.

1895년의 단발령은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중지되었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하면서 권력자였던 김홍집이 종로에서 피살되고 유길준은 일본으로 망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07년에 서울에서부터 다시 단발이 시작되었다. 공교롭게도 일본에 망명 중이던 유길준이 순종의 특명으로 귀국한 시기였다. 단발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가 되어, 근대화의 표상으로 부각되고 있었다.

지금의 인식으로 보면
과연 단발령이 목숨을 걸고 다투어야 할 대상일까?

하지만 개인적으론 모든 것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에
그럴 가치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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