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훈

달빛 길어 올리기

나는 새 2011. 3. 18. 09:18

임권택의 우리 것 길어 올리기

김민환(고려대 명예교수)

6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은 하나같이 할리우드 키드였다. 입으로는 늘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쏟아내면서도 영화라면 무조건 할리우드 것을 보았다. 우리 영화는 촌스럽고 시시해서 아예 외면하고 살았다.

나이가 들어 극장 출입이 뜸해질 무렵에 이 세대가 발길을 되돌리게 한 이가 바로 임권택 감독이다. 나는 1981년에 개봉한 <만다라>를 보고 느낀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우리 영화에 대한 그 동안의 홀대를 스스로 부끄럽게 만든 그런 영화였다. 영화의 질도 뛰어났지만 주제 자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을 파고든 것이어서 두고두고 되새김질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 영화는 시시하다고 외면했었는데

90년대 들어 임 감독은 집요하게 <우리 것>에 집착했다. <서편제>가 그 대표적인 예다. 판소리는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소멸해가고 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우리의 우리 것에 대한 무관심을 통렬하게 꾸짖었다.

분명 그의 지적은 매우 시의적절(時宜適切)한 것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국제화 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국제화라는 개념은 곧 세계화라는 개념으로 대치되었다. 국제화가 무엇이고 세계화가 무엇일까? 당시 유행한 ‘대통령 개그’로는 국제화를 ‘세게’ 하는 것이 세계화라고 했다. 세계화 바람은 센 정도가 아니고 그야말로 드세고 거셌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바로 우리 것이 세계화의 출발점이 되어야 함을 환기시켰다. 임 감독의 작업은 그 뒤로도 <축제> <츈향뎐> <취화선> <천년학> 등으로 이어졌다.

이들 영화 사이에 그가 연출한 <태백산맥>은 임 감독의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의 성격을 잘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가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으면 우리나라에서 좌와 우는 숙명적으로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좌파가 우파에 대항해 싸우는 것은 역사적 정당성을 지닌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파는 임 감독이 <태백산맥>을 영화로 찍는다고 하자 거세게 반발했다.

그러나 영화가 나오고 나서 그 우파는 물론 좌파까지도 입을 다물었다. 임 감독의 눈에 비친 이데올로기는 한 마디로 외래적인 것이었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우리 방식, 공존하며 상생을 추구하는 정의적(情誼的)인 방식으로도 해소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외래적인 이데올로기에 의존할 필요가 있었을까? 임 감독이 던진 이 물음 앞에서 우도 좌도 머쓱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것이 세계화의 출발점이며 요체

임 감독이 그의 표현대로라면 백 편의 연습을 거쳐 첫 작품으로 내놓은 <달빛 길어 올리기> 역시 그의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의 산물이다. 동양 종이가 있지만 중국 종이와 일본 종이 및 한국 종이는 그 특질이 서로 다르다. 일본 종이는 일본 종이다움으로 발전하여 오늘날 세계적으로 한지를 대표하고 있다. 그들이 만든 한지는 명품종이로 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있다. 최근 들어 중국은 중국 종이를 중국 종이답게 재현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가장 우수한 우리 종이는 우리나라에서 명맥이 끊길 처지에 놓여 있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 세계적인 상품을 꽤 만들어내면서도 정작 우리 것은 외면하는 풍토 탓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 것을 우리 것 답게 되살려야 한다. 이런 명제를 임 감독은 다큐멘터리 형식을 통해 <달빛 길어 올리기>에서 설득력 있게 개진한다.

우리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이건 임 감독이 늘 강조하는 역설 아닌 역설이다. 이미 패러다임 자체가 세계화한 우리 젊은이들은 이 시점에서 임 감독의 역설을 재음미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세계화에 성공할 수 있다. 젊은이들에게, 젊은이를 둔 부모들에게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를 권하고 싶다.

 

 

달빛 길어 올리기(임권택 감독 101번째 작품) 

- 물속의 달빛을 취해 만든 ‘한지’  종이 위에 인생을 펼치다.


만년 7급 공무원 필용(박중훈)은 3년 전 아내 효경(예지원)이 자기 때문에 뇌경색으로 쓰러지자 아들을 큰 집에 맡겨놓고 거동이 불편한 아내의 수발을 들며 비루한 인생을 살고 있다.

 


퇴직 전에 5급 사무관이라도 돼보려던 그는 새로 부임한 상사가 한지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걸 알고 마지막 기회란 생각에 시청 한지과로 전과한다.

 


한편 2년 동안 전국을 돌며 한지에 관한 다큐를 찍고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 지원(강수연)은 우연히 필용과 부딪히며 티격 댄다.

 


그러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조선왕조실록'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전주사고 보관본을 전통 한지로 복원하는 필용의 계획을 알게 되고 여기에 동참한다.

 


하지만 필용은 일을 시작했을 때의 마음은 온데 없이 집념인지 집착인지 이 일에 매달리고 지원과의 사이에는 미묘한 기류까지 흘러 아내 효경이 남편의 변화를 눈치챈다. 게다가 한지 복원화사업이 무산위기까지 놓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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