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특수조림지에서 나무는 동쪽으로만 가지를 뻗는다. 태백산맥을 넘는 거센 바람, 억센 인간의 의지가 그 자연을 만들었다. / 영상미디어 허재성 기자 heophoto@chosun.com |
特林別曲 '이름값' 한다… 대관령특수조림지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숲이 대한민국에 있다. 천지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 직립(直立)한 모든 것들은 땅으로 누워야 하는 곳에 아름드리 나무들이 울울창창하게 숲을 이뤘다. 자연이? 아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인간의 위대한 의지와 땀이 만들어낸 기적이다. 묘목 한 그루 한 그루마다 방풍막과 방풍책을 세우고 둘러 아기 돌보듯 길러낸 숲이다. 이름하여 '대관령특수조림지'. 가거들랑 숲을 보고, 그리고 그 숲에 숨어 있는 인간의 위대한 노력을 느낄 일이다.
◆팍팍한 이름, 낭만적인 숲
'대관령특수조림지'라는 이름을 듣고 생각했다. 상상력 없는 기능적 명명(命名) 같으니라고. 양떼목장, 허브나라 같은 낭만적 호명은 아닐지라도 조금 부드러운 이름을 붙일 수는 없었을까.
그런데 시간이 조금 흐르자, 정반대의 신뢰가 생기는 것이었다. 이름에 홀려 찾았다가 터무니없는 과장이었음을 깨닫는 일이 많아지는 요즘, '특수'와 '조림'이라는 건조한 용어를 사용하는 배짱이라니.
대관령 현장에 도착해보니, 신뢰는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조회시간처럼 약간은 들쑥날쑥하지만 그래도 질서정연하게 간격을 맞춘 85만 그루의 전나무·잣나무·낙엽송, 어른 엄지손가락만 한 나뭇조각을 깔아 밟을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산책로, 1㎞ 정도의 야생화 숲길이 다소곳했다. 윽박지르거나 고함치는 거대한 숲이 아니라, 나긋하게 속삭이는 숲이었다.
동자꽃, 금강초롱, 산수국이 이어지는 야생화숲길. 연보라 벌개미취 위로 수십 마리의 표범나비들이 꿀을 빨아 먹느라 정신없다. 살짝 손으로 건드려도 꿈쩍 않을 만큼 대담하다. 오영숙 숲 해설사는 "얘들도 식성이 까다롭다"며 "이곳 벌개미취 꿀이 얼마나 달콤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대관령 조림지 크기는 축구장 300개 규모(311㏊)다. 영동과 영서를 가르는 대관령 정상, 옛 휴게소 자리에서 횡계 쪽으로 84만3000그루를 심었다. 1976년부터 1986년까지 11년 동안이었다.
일본의 목재 수탈로 헐벗었던 대관령은 먹고 살기 위해 풀과 나무까지 불 질러버린 1960년대 후반 화전민(火田民) 때문에 더욱 황폐해졌다. 푸른 산 가꾸기에 국운을 걸었던 1970년대, 정부는 이 불모지에도 나무를 심기로 결정했다. 1976년이다. 대역사(大役事)가 개시됐다. 심어도 심어도 묘목들은 허공으로 날아가거나 땅 위로 나뒹굴었다. 조림지가 있는 선자령 일대는 한반도에서 가장 강한 바람(초속 28.3m)과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겨울 추위로 유명하다. 그리하여 묘목 한 그루마다 지주목과 통발, 방풍막과 방풍책을 동원해 뿌리를 내리게 했다. 훗날 몽골 산림학자들이 이곳에 와서는 "몽골 사막에 당장 응용해야 할 특수 기법"이라고 했다. 30년 세월이 흐른 지금, 아무것도 없던 텅 빈 땅이 꿈 같은 숲으로 자라났다. 외국의 산림학자들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조림 성공 사례"라고 평가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대관령특수조림지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풍경들이 몇 있다. 하나는 나무가 강릉 쪽으로만 가지와 잎을 뻗고, 횡계 쪽으로는 앙상하다는 사실. 마치 한쪽을 잘라낸 크리스마스트리 같다. 이런 반쪽짜리 낙엽송들이 선자령 등산로 입구, KT 송신탑 근처에 줄지어 서 있다.
또 하나는 대부분의 나무가 3~4m 높이에서 성장을 멈춘 것. 국립산림과학원 조재형 박사는 "센 바람이 서쪽에서 부니까 영서가 아니라 영동 쪽 방면으로만 가지를 뻗은 것"이라며 "나무들이 살아남기 위해 성장을 스스로 제한한 풍경"이라고 설명했다.
26일 대관령특수조림지는 500여명의 외국손님을 맞는다. 전 세계 산림·환경전문가가 참여하는 23차 세계산림과학대회 서울총회에서 이곳을 한국 산림녹화사업의 대표적 장소로 선정했다.
우리나라 모든 국민에게는 진작 개방돼 있었지만, 영동고속도로 횡계IC에서 이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관령을 찾는 여행객들이 자주 찾는 양떼 목장이 바로 뒤에 있다. 피톤치드 발산량으로 1·2등을 다툰다는 전나무·잣나무 숲길이 청량하다. 무료다. 자, 숲에서 나와 이번에는 전설 속으로!
◆음기(陰氣) 가득한 국사성황당
대관령특수조림지에 왔다면 이 두 곳을 추가로 둘러볼 일이다. 하나는 선자령 정상 가는 길의 국사성황당이고, 또 하나는 용평리조트 정상인 드래곤피크다. 국사성황당은 옛 대관령휴게소 자리로부터 선자령 정상 쪽으로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릉단오제 제사(음력 4월 15일)를 치르는 곳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음기(陰氣)가 강하고 영험하다고 알려져 무속인들의 굿이 끊이질 않는다.
◆보너스, 구름 위를 걷는 발왕산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는 용평리조트 꼭대기는 발왕산 정상이다. 시속 18㎞로 15분 동안 올라간 뒤 해발 1458m에 도착하는 쾌속 수직 여행이다. 1만2000원. 정상에서는 주목(朱木)도 볼 수 있다. 날씨가 좋으면 동해, 강릉, 정선, 오대산, 가리왕산이 모두 발 아래 내려다보인다.
■ 영동고속도로 횡계IC에서 빠져나와 456번 지방도를 타고 강릉 방향으로 10분 안쪽. 지금은 신재생에너지전시관(033-336-5008)으로 바뀐 옛 대관령휴게소 자리에서 대관령특수조림지가 시작된다. 입구는 따로 없지만 나무로 만든 산책로가 1㎞ 정도 초입에 마련돼 있다.
숲 해설가:평창국유림관리소 경영계획팀에 미리 예약하면 원하는 날짜에 숲 해설가에게 설명을 들으며 숲을 '감상'할 수 있다. 등산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면 되도록 숲 해설가의 도움을 청할 것. 대관령특수조림지의 역사와 기적, 미래를 입체적으로 들을 수 있다. (033)330-4030~3.
■ 용평리조트는 스키 탈 때만 간다고? 오해다. 마침 지난 23일부터 비수기 선언으로 요금도 확 내렸다. 호텔은 스탠더드 디럭스 타입이 8만원(66% 할인), 빌라콘도는 각각 평수에 따라 10만원, 8만원. 동해바다의 요트세일링(2시간)과 빌라콘도 1박, 그리고 조식을 포함한 특별 패키지는 2인 기준 21만2000원. 모두 부가세 10% 별도. 1588-0009.
■ 대관령 토박이인 평창국유림관리소 진부경영팀 직원들 선택은 '대관령감자옹심이'. 옹심이는 새알심의 강원도 사투리다. 감자를 갈아 물기를 꼭 짜낸 뒤 가라앉은 녹말가루와 섞어 반죽을 만들고, 새알처럼 작고 둥글둥글하게 빚는다. 그 옹심이를 육수에 넣어 끓이면 완성된다. 대관령감자옹심이<사진>는 황태 육수를 쓴다. 국물이 구수하고 담백해 반복적으로 입맛을 다시게 만든다. 절반 정도 분량은 칼국수고 나머지 절반이 옹심이다. 반드시 국수만을 먹어야겠다면 모르지만, 감자옹심이만 시켜도 메밀칼국수를 즐길 수 있다. 생각보다 쫄깃해 씹는 맛이 있다. 샛노란 달걀지단과 검은 김가루, 초콜릿빛 양념장이 시각적으로도 어울린다. 일요일은 쉰다. 감자옹심이, 감자전, 메밀칼국수, 떡만둣국, 냉콩국수 감자송편 등 모두 5000원. 횡계 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다. (033)335-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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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어수웅 기자 jan10@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