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호에 대한 우리의 의견

한국어와 국가 경쟁력

지성유인식 2009. 7. 1. 04:43

 

지난 6월 24일(수) 청와대 세종홀에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위원장 강만수)가 대통령에게 ‘한글의 보편성과 경쟁력 제고 방안’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추진 정책으로 ‘세종 사업 추진 방안’을 보고했다. 국가경쟁력강회위원회는 경제 살리기 정책에 사활을 건 이명박 정부가 ‘국가 경쟁력 강화를 통한 지속적인 성장과 삶의 질 향상’을 이룩하기 위해서 ‘규제 개혁, 공공부문 개혁, 투자 유치, 법과 제도 선진화’의 네 가지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 청와대 안에 설치한 기구이다.


이 위원회가 ‘한글의 보편성과 경쟁력 제고 방안’ 일명 ‘세종 사업 추진 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우선 권력의 핵심부가 언어와 국가의 경쟁력이 상관관계가 있다고 본 것이 기쁘고, 이 인식을 바탕으로 해서 구체적인 정책을 입안하여 추진하겠다는 뜻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것이 기쁘다. 특히 이 보고서에 나타난 내용이 피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담고 있어서 이 계획을 추진한 주체가 오래 고민하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이 보고서의 제목만 보면 ‘한글’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담은 것으로 보이지만 흔히 일반인들이 혼동하는 것처럼 한글과 한국어를 혼동하여 만들어진 보고서이기 때문에 그 내용은 글자로서 한글뿐 아니라 한국어의 경쟁력까지 두루 높이는 방안이 적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보고서대로 원만하게 추진되기를 기대하면서 이 보고서가 놓친 한 가지 의견을 덧붙이고자 한다.


어떤 언어가 경제 발전에 더 유용하다거나 덜 유용하다고 말하는 것은 부질없다. 영어를 쓰는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더 발전했다고 해서 영어를 써야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미 나타난 성과를 보고 그에 맞추어 성공 요인을 만들어 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수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 나라가 지속적으로 경제 성장을 하고 발전을 하는 데는 자국어를 잘 관리하여 경제 발전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노력이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일본이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영어를 자국어로 만들자는 급진적인 주장을 버리고 번역을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하여 일본어의 어휘량을 현저히 늘림으로써 자국민이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활용할 수 있는 계기를 넓혀 준 것이 일본 사회의 근대화에 결정적인 기능을 한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번역을 통한 일본어의 발전이 단순히 일본의 근대화만 촉진한 것이 아니다. 당시 아시아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일본어를 배우면 선진 문물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된다는 점 때문에 일본으로 유학을 하였고 이들이 귀국하여 각국의 지도자가 됨으로써 오늘날 일본이 아시아의 중심 국가 기능을 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주었다. 언어는 이런 방식으로 국가 경쟁력에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이 지속 가능한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려면 여러 조건 가운데에 한국어를 관리하는 문제도 포함해야 하는데 앞에서 말한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세종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이 이런 맥락에서 매우 의미 있는 정책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것이 있다. 언어가 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는 조건을 생각할 때에는 그 언어가 우수하다거나, 그 글자가 우수하다는 식의 언어 자체의 문제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만일 그 점에 얽매이게 된다면 자기 언어를 선전하고 홍보하는 일에 시간과 돈을 소비할 우려가 큰데, 그런 노력은 심리적인 만족감을 줄지는 몰라도 경제 발전에는 그리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언어를 경제 발전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고민하여 그에 맞는 좋은 방안을 찾아서 그에 맞춰 언어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의 보고서에는 바로 이런 부분이 소홀히 다루어진 것 같아 아쉽다.

남 영 신(국어문화운동본부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