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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유인식 2008. 11. 30. 04:35

이한호 前 空參총장 “서울공항 중요성 너무 몰라, 지금은 No 해야 충성”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서울공항 인근에 제2롯데월드를 짓게 하라는 이명박 정부의 압력이 대단하다. 공군은 대통령을 의식해 입이 있어도 전혀 의견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한호(61·사진) 전 공군참모총장이 이 문제에 대해 입을 열었다. 공군의 속내일 수도 있는 그의 의견을 정리한다.



- 전시(戰時)에 서울공항은 어떤 구실을 하나.


“첫째, 양륙(揚陸)공항으로서의 구실이다. 전시에는 많은 물자가 소모된다. 군은 도로를 통제하겠지만 혼란 때문에 도로를 통한 물자 수송이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서울 이북지역에 대한 물자 보급은 수송기를 이용한 서울공항으로의양륙작전이 가장 좋은 방법이 된다. 둘째, 작전 지원 기지로서의 구실이다. 서울공항에는 기본 훈련기 KT-1을 개조한 저속통제기 KA-1이 배치돼 있다. KA-1은 서울 이북지역에서 격전을 벌이는 지상군을 지원할 공격기와 전투기의 폭격 지점을 잡아주는 통제기의 임무를 지닌다. 셋째, 최전방에 자리한 만큼 피격되거나 파손된 항공기, 연료가 떨어진 항공기가 비상 착륙할 수 있는 장소로서의 구실이다.”


-KA-1은 후방에 배치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전방에는 느린 항공기를 배치하고 후방에는 빠른 항공기를 배치하는 것이 원칙이다. KA-1의 후방 배치는 전투기 기지에 함께 있으라는 의미인데, 그럼 전투기 작전에 큰 지장이 온다. 저속통제기는 전투기보다 이착륙 시간이 훨씬 길다. 유사시 전투기는 두 대가 한 조를 이뤄 10초 간격으로 한 조씩 이륙한다. 그런데 작전상 필요에 따라 중간에 이륙시간이 긴 저속통제기를 이륙시키면, 전투기의 긴급 발진 속도는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전투기는 속도가 빨라 순식간에 전투 공역에 도달하지만 저속통제기는 그렇지 못하다. 후방의 저속통제기는 훨씬 먼 거리를 날아와 짧게 작전하고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운영 효율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저속통제기는 서울공항처럼 전선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


-저속통제기는 속도가 느리니 초고층 빌딩을 충분히 피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전시와 평화시를 막론하고 항공기는 안전 운항이 가장 중요하다. 안전 운항에 문제가 있으면 항공 작전에도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저속통제기도 전시에 이륙하면 다른 항공기의 이륙을 위해 신속히 항로를 이탈해줘야 하는데, 이때 근처에 초고층 빌딩이 있으면 조종사들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은 유럽만큼은 아니지만 흐린 날이 많은 나라다. 흐린 날 초고층 빌딩이 있는 곳에서 이륙 후 신속히 항로를 이탈해야 하는 일은 큰 부담이다.”


-서울공항의 기존 활주로 방향을 바꾸면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겠는가?


“제2롯데월드 건설 문제는 해결될 수 있겠지만 다른 문제가 생긴다. 제2롯데월드를 짓게 해주기 위해 만드는 새 활주로의 끝은 탄천에 접하는데, 이때 하천에 접한 활주로를 보강해야 한다. 새 활주로 건설에는 수천억에서 수조원의 돈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투자를 많이 하고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활주로 방향을 바꾸면 기존 활주로에 의해 고도제한을 받던 지역에서는 회심의 미소를 짓겠지만, 새 활주로 때문에 고도제한을 받는 지역에서는 원성이 터져나올 것이다. 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누구를 위해 예산을 썼느냐는 시비가 나올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건설 허가 내주면 주변에 초고층 빌딩 즐비해질 것” “



-그러나 군용항공기지법만으로 보면 제2롯데월드는 이 법이 정한 제한구역의 밖에 있다. 공군과 국방부가 동의하면 건설에는 법적 문제가 전혀 없다.


“한국의 군용항공기지법이 정해놓은 비행안전구역은 다른 나라의 유사 법률이 정한 구역보다 결코 넓지 않다. 그런데도 미국 연방항공청(FAA)과 국제 민간항공기구(ICAO)는 별도의 안전장치를 추가해놓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는 제2롯데월드가 비행안전구역 바로 바깥에 자리해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 답답하다. 그들은 법이 사고를 막아준다고 진정으로 믿는 것인가.”


-제2롯데월드가 준공돼 입주를 시작하면 사람들은 수km 앞에서 제2롯데월드보다 낮은 높이로 날아가는 항공기를 보게 될 것이다. 미국의 9·11테러를 의식한 이들은 위험을 느껴 서울공항 이전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거꾸로 말하면 9·11과 유사한 테러의 공포 때문에 어쩌면 제2롯데월드를 지은 롯데는 제대로 사무실 분양도 못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롯데 측 사정이고, 공군은 공군대로 큰 고통을 받게 된다. 공군과 국방부가 제2롯데월드 건설에 동의한다면 누군가 서울공항 주변에 또 다른 초고층 빌딩을 짓겠다고 할 때도 동의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 해주느냐는 시비가 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초고층 빌딩이 즐비해지면 서울공항을 폐쇄하라는 압력이 높아질 것이다. 서울공항 주변에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면 수원과 대구 등에 있는 전투기 기지 주변에도 고층 빌딩이 들어설 테고, 그럼 공군기지를 옮기거나 폐쇄하라는 요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좁은 나라이기에 새로 공항을 만들 곳이 없다. 평화가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10여 년 전 우리는 외환위기를 겪었지만 지금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또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은가. 지금 평화로우니 미래에도 평화가 보장되리라고 누가 자신하겠는가. 서울공항이 무너지면 평화도 무너진다.”


-얼마 전 정부는 공군참모총장을 교체했지만 신임 총장은 국정감사에서 제2롯데월드 건설에 동의한 바 없다고 밝혔다. 공군총장들이 매우 힘들겠다. 만일 국방부 장관이 공군의 의견을 무시한 채 제2롯데월드 건설에 동의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제2롯데월드는 내가 작전참모부장, 참모차장, 참모총장을 지낼 때도 다뤘던 문제인데, 그때의 결론도 ‘안 된다’였다. 그런데도 최고지도자까지 나서서 ‘다시 검토하라’고 했다니 총장들은 괴로울 수밖에 없다. 상명하복하는 군 특성을 살려 ‘예’라고 대답하라는 것인데, 이 답을 내놓은 순간 공군 지휘부는 내부로부터 권위를 잃게 된다. 국방부 장관이 단독으로 동의한다 해도 역시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지금 공군은 말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처지다. 언론은 우리의 처지를 바로 알려야 한다. 그래야 최고지도자가 바른 결정을 내리고 국정 지도력을 유지할 수 있다. 지금은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이 최고지도자를 향한 충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