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成

주객전도

나는 새 2008. 10. 27. 03:04

세상에 불쌍한 사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농사짓는 농부들입니다. 농업이 경제의 주축이고 농업만이 산업의 중심이던 시대를 살았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눈만 뜨면 농사짓는 농부들의 가난과 고통을 어떻게 해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토지소유가 균등하지 못하고, 소수의 부자들만 토지를 겸병하여 온갖 부를 누리고,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대다수 농부들이 당하는 고통과 가난에 한없는 비애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경자유전(耕者有田)이라는 대원칙을 세우고 균등한 토지소유를 위해 공전(公田)제도나 공유제(共有制)같은 좋은 제도의 정착에 온 생애를 바쳤습니다.

특히 호남지역의 농사짓는 농부들이 다른 지역에 비교하여 곱절이나 더 많은 지대(地貸)를 내야하는 불평등한 제도에 대하여 한없는 분노를 느끼며, 그런 못된 제도를 당장 개혁해야 한다고 임금에게 올린 차자(箚子), 「호남지역 여러 고을의 농부가 조세 바치는 풍속을 엄금하기를 청하는 글(擬嚴禁湖南諸邑佃夫輸租之俗箚子)」에 땅 없이 농사짓는 호남농민의 억울함이 얼마나 컸는가를 명확하게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땅을 소유한 주인은 농사도 짓지 않으면서 수확량의 절반을 받아가고, 농사를 실제로 경작하는 농부는 수확의 절반으로 종자도 사고 국가에 세금도 내야 함으로 실제로는 농사를 지어봐야 먹을 것이 없는 불쌍한 처지에 이르고 만다는 것입니다. 더 큰 변혁을 못하더라도 경기지역의 풍속대로 절반을 지주에게 바치더라도 지주가 곡식의 종자값이나 나라에 바치는 세금은 감당하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본디 농부는 10분 1의 세금을 무는 것입니다. 그런 원칙에서 벗어나 10분의 5를 바치고도 세금과 종자값까지 감당해야 한다니 어떻게 농부들이 견딜 수 있겠느냐는 다산의 주장은 너무나 정당했습니다. 다산은 『주역』의 무망(无妄)궤를 인용해, “경작하거나 수확하지 않으면서 1년 된 밭과 3년의 밭을 만들지 않는다”(不耕穫 不 )라고 하여 그래야 하는 일이 이롭다라고 했습니다. 공자(孔子)는 그 궤의 상(象)에서 “갈지도 수확하지도 않으며 부자인 체 해서는 안된다”(不耕穫 未富也)라고 했습니다. 몇 년간 경작했다고 이유를 들며 세금을 감면받기 위해 짓지 않은 농사를 지었다고 직불금을 타먹은 얌체들을 그렇게 멋지게 야유할 수 있겠습니까.

요즘 직불금 타먹는 비행을 다산이 보았다면 얼마나 분노할까요. “부자들이야 어떠랴만 외로운 사람만 애처롭구나”( )라는 『시경』의 싯구를 외우던 다산의 마음을 알 것만 같습니다.

박석무 드림(다산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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