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가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는 1999년에 국내 최초로 복제 소 ‘영롱이’를 탄생시켰고, 생명체 복제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고 하는 개를 복제하는 데에도 성공하여 ‘스너피’를 선보였다. 또한 세계 최초로 인간의 배아를 복제해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에 성공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그는 ‘환자 맞춤형 배아복제 줄기세포’를 만들어 세계를 놀라게 했고 수많은 난치병 환자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그러던 그가 지금 커다란 곤경에 처해있다. 맞춤형 줄기세포 연구에 중대한 결함이 발견된 것이다. 아니 결함이라기보다 연구 결과를 의도적으로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몇 차례의 기자회견을 통하여 일부 자신의 과오를 시인하기도 했지만 과학자로서의 그의 위상은 이미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국가의 파격적인 지원을 받으며 노벨상 후보로까지 거명되던 그가 “과학역사상 최대의 사기사건”의 주인공으로 추락한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조급함을 버리고 연구에만 매진했더라면
너무나 평범한 말이지만 조급함과 성급함이 재앙을 불러들였다. 황교수는 저 유명한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에서 교훈을 얻었어야 했다. 나이 90이 된 우공이 아들 손자들과 함께 사방 7백리, 높이 1만 길이나 되는 산을 깎아 길을 내겠다고 하자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비웃었다. 이에 우공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과 같이 소견이 좁은 사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내가 죽는다 할지라도 아이들은 남으며, 그 아이들에게 손자가 생기고 손자는 또 어린애를 낳고 그 손자는 또 어린애를 낳아 자자손손 끝나는 일이 없을 것이오. 그러므로 산은 반드시 편편해질 것이오.” 결국은 우공의 노력에 감동한 천제(天帝)가 산을 옮겨주었다는 이야기인데, 성실하게 쉬지 않고 노력하면 반드시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말해준다.
황교수도 묵묵히 연구에만 매진했더라면 오늘의 불행을 자초하지 않았을 것이고 또 세계적인 업적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황교수는 연구해야 할 시간에 분주히 다니면서 연구 아닌 정치에 더 많은 정력을 쏟은 것 같다. “복사꽃과 오얏꽃은 말이 없어도 그 밑에 저절로 길이 생긴다”(桃李不言 下自成蹊)는 말이 있다. 복사꽃과 오얏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으면 꽃이 오라고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저절로 모여들어 그 밑에 길이 생긴다는 것이다. 황교수가 하나하나 업적을 쌓아나갔더라면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저절로 모여들었을 터인데 그는 앞장서서 사람을 불러 모았다. 아무리 자기 PR의 시대라지만 정확성과 엄밀성을 생명으로 하는 자연과학의 세계에서 부정확한 결과물로 사람 끌어들이는 데에만 급급했으니 탈이 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명예란 얼마나 무거운 짐인가
황교수의 몰락은 조급함이 불러온 불행이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지나친 명예욕도 한 몫을 담당했을 것이다. 명예란, 그것을 얻는 것도 어렵거니와 얻은 명예를 생전에 지키는 것이 더 어렵고 죽은 후에까지 보유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죽은 후에도 보유할 수 있어야 참다운 명예라 할 수 있을 것인데, 황교수는 어렵게 얻은 명예를 너무 일찍 잃어버렸다. 그러니 참다운 명예라 할 수 없다.
“너무나 유명해진 이름은, 얼마나 무거운 짐이 되는가”라는 볼테에르의 말은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한 말인 듯하다. 황교수는 스스로 얻은 명예의 짐에 짓눌려 압사당한 것이다. 황교수를 거울삼아 앞으로는 이 땅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글쓴이 / 송재소
·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