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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

지성유인식 2005. 12. 29. 09:18

나는 십대 중반에 고향을 떠난 뒤 이제 예순을 훌쩍 넘었다. 고향집을 떠올리면 그간의 각박한 객지 생활을 보상받는 듯한 활력을 얻곤 한다. 하지만 이제는 남의 손에 넘어간 데다 무너져, 붉은 녹물 든 철제 대문만 눈에 잡힌다. 장성한 아들이 이런 내 아쉬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이 집을 다시 사들였는데, 손을 봐 주기로 한 집안의 형님 성조 씨는 이상하게 지하실 복원을 꺼린다.

이 지하실은 일제 말기에 방공호와 함께 몰래 만들었던 부엌 옆 지하 밀실이었는데, 참 사연이 많았다.

 

좌우 갈등이 격심했던 시절의 어느 저녁, 마을에서 살림이 가장 넉넉했던 종가 어른이 (좌익을 피해) 이곳에 숨어들었다. 우리 식구는 들킬까봐 조마조마했는데, 마을 머슴살이를 하던 병삼이 죽창 든 일행을 끌고 와 수색에 나섰다. 병삼은 곧장 지하실을 지목하고는 직접 살펴보다가 “없어. 없는 것 같어” 하고 외치며 철수하고 만다.

 

그 후 전쟁이 나고 세상은 바뀌었다. 좌익이 득세했던 때에 ‘인민위원장’을 맡았던 내 친구 윤호의 아버지는 마을이 수복된 뒤 우익에 쫓기다가 우리 지하실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곧 “여기 숨어 있자니, 차마 못할 노릇 같아 그냥 간다”며 동네 회의장에 스스로 나가 총살당한다.

 

그리고 그날 밤 마을 사람들이 윤호의 집을 찾아갔었다는 이야기도 이제야 듣게 된다. 성조 씨는 이렇게 말했다. “어쨌든 그 집은 사람을 잃은 상가(喪家)였으니께. 상가에는 이웃이 밤을 새워 주는 게 도리고. 상가 사람들은 그 사람들을 따뜻이 대접하는 게 인사니께. 우린 그렇게 살아왔어!”

성조 씨는 또 놀라운 일을 털어놓는다. “왜 병삼 씨가 앞장을 섰겄어? 자기가 먼저 은신처를 아는 척 바로 지하실 입구를 가로막고…사람이 있는 줄 분명히 알면서도 허드레 물건들을 이리저리 밀쳐서 통로를 가려 버린 것이었어.”

 

하지만 내 어머니는 병삼 씨가 그런 줄도 모르고 평생 데면데면한 채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병삼 씨도 끝내 자신에 대한 오해를 풀지 못한 채 몇 해 전 숨지고 말았다.

 

성조 씨는 윤호 아버지가 우리 지하실에 숨어 있다가 ‘제 발로 나와 죽음의 길을 걸어간’ 이유에 대해 마을 사람들이 억측을 품어 왔다는 사실도 말해 준다. 마을 사람들의 의심은 만약 나나 식구들이 들었다면 ‘억울해서 말문을 제대로 열지 못할 것’(밀고·密告)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굳이 그 문제를 들춰내기보다 같이 살아남은 이웃으로 한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