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적으로 죄를 짓는 일도 많긴 하지만, 대체로 죄를 짓는 일임을 알고서 비밀스럽게 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원리는 묘한 것이어서 아무리 비밀스럽게 행한 일이라도 대부분은 탄로되어 온 세상에 알려지고, 지은 죄대로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가 증명한다.
그래서 오래 전에 다산 정약용은 그의 대저 ‘목민심서’에서 “아무리 한 밤중에 주고받은 뇌물이라도 아침만 되면 세상에 소문이 퍼지고 만다”는 경고를 했었고, “누가 뇌물을 주면서 비밀로 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하겠느냐”면서도 비밀은 탄로되고 마는 것이 세상의 원리라는 귀신같은 명언을 남겼다.
요즘 세상이 야단이고 시끄럽다. 이번 ‘X파일’은 그야말로 대형사고이다. 그 후폭풍까지 어마어마하리라는 예측이 가능해서 '이런 게 바로 X파일이구나'라는 실감을 준다. ‘X’라는 글자가 암시하듯이 매우 비밀스러운 사실이었지만, 그것도 결국은 비밀로 남지 못하고 온 천하에 대대적으로 공개되고 말았다. ‘비밀’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힘을 못 쓰고 맥을 못 추는 것인가 여실히 보여주고 말았다.
과연 ‘비밀’이란 무엇인가? 다산은 애초에 비밀의 존재를 명확하게 부인하였다. 이른바 ‘사지(四知)’라고 하여 “내가 알고(我知), 네가 알며(汝知), 하늘이 알고(天知), 귀신이 안다(鬼知)”라고 설명하여 세상에는 알지 못하는 비밀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아무도 모르게 비밀스럽게 주는 뇌물이니 받으라는 권유를 물리쳐야 하는 이유로 나열했던 이야기였다.
그러나 요즘 위법한 도청으로 알게 된 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거나, 밝혀진 비밀이 죄가 된다면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등의 법적 논전이 전개되고 있다. 毒樹毒果 논리를 전재하면서 말이다.
비밀을 도청했다면 그것은 분명히 큰 죄다. 사생활의 침해요,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행위이다. 특히 국가기관에 의해서 자행됐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통신관련 법률에서 그것을 엄금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존재할 수 없는 비밀, 마침내는 밝혀질 일인데, 그것이 알려지면 큰 벌을 받을 죄임을 알고도 비밀스럽게 말하고 행한 사람들은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것인가.
불법적인 정치자금의 수수행위, 대가가 있는 뇌물을 비밀스럽게 주고받았지만, 그것이 도청으로 알려졌으니 수사하고 처벌할 수 없다고 한다면 도대체 법정신에 합당한 것이겠는가.
여기에서 또 다산의 주장을 들어보자.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거든 그 일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欲人勿知 莫如勿爲), 남이 듣지 못하게 하려면 그 말을 하지 않은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欲人勿聞 莫如勿言)”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어서, “온 세상의 재화(災禍), 우환(憂患), 하늘을 흔들고 땅을 움직이는 일이나 한 집안을 뒤엎는 죄악은 모두가 비밀로 하는 일에서 생겨나기 마련이다”라는 진리를 설파하기도 했다. 그래서 “남이 알지 못하게, 듣지 못하게 하는 일과 말만 없다면 위로는 하늘을 섬길 수 있고, 아래로는 한 가정을 보전할 수 있다”라고 아들에게 보낸 경계의 글에서 자세히 써놓았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