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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와 보수 그리고 개혁

지성유인식 2005. 6. 21. 10:17

 

수구세력은 변화를 싫어한다. 기득권을 방패삼아 변화의 요구를 억누르고 짓밟는다. 이미 많은 것을 갖고 있는 데다 앞으로 더 많은 것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득권층은 한번 움켜쥐면 결코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영원히 ‘이대로’가 좋은 것이다.
 
수구세력은 어디에나 있다. 사회 모든 분야에 도사리고 있다. 수구세력의 먹이는 무엇인가. 기득권이다. 부정부패와 탈법비리가 그들을 키워온 자양분이다. 그들은 쉽게 눈에 띄지 않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기득권 고수에 여념이 없다. 철통같은 커넥션이 그들의 연대를 상징한다. 그들은 잘못된 현상에 칼을 대려면 교묘한 언변으로 방어논리를 편다.
               
<개념조차 혼란스러운 보수와 수구>
정치권은 몇 년 전부터 개혁과 보수와 수구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개념의 혼동이 심해 가닥을 잡지 못하고 헷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기에 제논에 물대기 식의 이해관계가 얽혀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용어의 혼란은 개념의 혼란을 가져오고 개념의 혼란은 판단의 혼란을 가져온다. 또 판단의 혼란은 행동의 혼란으로 이어진다.
 
보수와 수구가 그러한 혼란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흔히들 보수와 수구는 동의어로 쓰인다. 내용상 큰 차이가 없는 비슷한 뜻으로 사용된다. 과연 그럴까.
 
수구(守舊)는 말 그대로 낡은 것, 옛것을 지키는 것이다. 무엇이 낡은 것인가. 쿠데타, 군부독재, 군사문화, 양민 학살, 부정선거, 인권탄압, 고문, 의문사, 냉전논리, 지역할거주의, 정경유착, 권언(權言)유착, 부정부패, 관치경제, 족벌경영, 빈익빈 부익부의 경제구조, 20대80의 사회, 고비용 저효율의 정치구조, 권력남용, 지역감정, 지역차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재산 해외도피, 탈세, 분식회계, 병역기피, 뇌물수수 등도 낡고 병든 것이다. 우리 국민은 이 같은 낡은 가치와 병든 전통을 고수하는 데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보수(保守)는 무엇인가. 보전하고 지키자는 것이다. 무엇을 보전하고 지킬 것인가. 이 용어에는 목적어가 보이지 않는다. 수구와는 달리 목적어가 없는 보수라는 용어에 숨겨진 목적어는 무엇인가.
 
그것은 평화적인 정권교체, 의회민주주의, 노동3권, 인권보장, 경제정의, 복지국가, 지역화합, 지역 균형개발, 산업평화, 소유와 경영의 분리, 남북화해와 교류협력, 남북통일, 선진한국 등이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은 대부분 아직 실현되지 않았거나 실현을 위해 애쓰고 있을 뿐이다. 우리 국민이 지향하고 추구하는 가치이자 목표이다.
 
개혁은 바로 `보수'해야 할 가치와 전통을 만들어내는 수단이다. 따라서 개혁은 구시대의 낡은 법과 제도와 관행과 인물을 대상으로 삼는다. 보전해야 할 가치가 창출되고 계승해야 할 전통이 형성되면 당연히 이를 보전하고 지켜야 한다. 따라서 개혁은 구시대의 낡은 가치, 잘못된 전통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지 ‘보수’해야 할 가치와 전통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낡고 병든 것을 지키는 것은 보수가 아니고 수구다. 개혁과 보수를 동태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까닭이다. 개혁과 보수는 서로 보완관계에 있는 역사발전의 두 수레바퀴와 같다.

 

<개혁 없는 보수는 ‘참보수’ 아니다>
따라서 철저한 개혁주의자만이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개혁이 완성된 뒤에 이를 보전하고 지키지 못하면 헛일이 되기 때문이다. 수구세력은 틈만 나면 개혁을 무산시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개혁의 성과물을 소중히 지키고 보전하는 것이 ‘보수’다. 낡고 병든 제도나 관행에 매달리는 ‘수구’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개혁 없는 보수’는 절름발이와 같고 ‘보수 없는 개혁’은 모래성이나 마찬가지다.
 
수구와 보수의 혼동은 정치판을 읽는 데 혼란스럽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개혁과 진보의 혼용도 정치인의 본색에 대한 착각을 가져오게 한다. 수구분자들이 보수주의자임을 자처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또한 개혁주의자가 반드시 진보주의자는 아니다.
 
좀 더 논의를 진척시키면 보수는 수구적 보수와 개혁적 보수로 구분할 수 있다. 수구적 보수는 ‘꼴통보수’이며 개혁적 보수는 ‘참보수’이다. 이를 정치권에 대입하면 한나라당은 수구적 보수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열린우리당은 개혁적 보수가 중심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은 진보주의세력을 대변한다.

수구적 보수는 역사를 후퇴시키지만 개혁적 보수는 역사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한다. 따라서 보수를 가장한 수구적 보수는 경계함이 마땅하다.

 

글쓴이 / 선경식